가. 홍무30년명청동은입사향로
843)높이 39㎝, 구경 38.2㎝의 크기로, 고려시대 향로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는 조선 초기의 향로이나 爐臺가 다소 둔중한 느낌을 준다. 노대 밑에 이례적으로 큰 반원형의 1단받침과 작은 1단받침을 갖추고 그 밑으로 좁은 전과 같은 굽을 돌렸다. 1단받침이 커지고, 완만한 곡선형이었던 노대의 형태가 직선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어서 고려시대 향로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爐身에는 6군데에 두 줄의 동심원을 돌리고 그 안에 梵字 한 자씩을 배치했고 圓圈 주위로 如意頭文을 돌려 조식하였다. 여백에는 화려한 당초문을 새겼고 구연부의 넓은 전 윗편에는 연화당초가 入絲되었다. 노대 하단의 좁은 전은 무문이다. 그 위의 1단은 雷文을, 그 위의 큰 반원형 받침에는 보상당초문을 조식하였다. 높은 받침대 전면에는 대형 연판을 덮어 돌렸고 상단에는 여의두문을 배치하였다. 노신을 받고 있는 3단의 반원형 받침에는 뇌문·여의두문·仰蓮瓣文을 차례로 배치하여 노신 하부의 重葉 앙련판의 문양과 대조를 이룬다. 전반적으로 형태는 다소 둔중해졌으나 입사문양의 수법은 고려시대의 것을 계승하여 화려하고 정교하다. 향로 구연부의 뒷면에 “大明洪武三十年丁丑 朝鮮開國祖聖朝中宮神德王后” 등의 명문이 있어 조선 초기인 태조 6년(139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843) | 李浩官,<金鼓·香爐·淨甁과 佛具類>(≪韓國의 美 23:金屬工藝≫, 中央日報 季刊美術社, 1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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