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Ⅰ. 임진왜란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2) 해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1. 왜란 전의 정세
          • 1) 교린정책과 왜변
          • 2) 일본의 국내정세
          • 3) 조선의 국내정세와 군사준비 실태
        • 2. 왜란의 발발과 경과
          • 1) 왜란의 발발
          • 2) 의병의 봉기
          • 3) 수군의 승첩
            • (1) 임란 전의 해방체제와 전라좌수군
            • (2) 초기 해전의 승첩과 전과
            • (3)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
          • 4) 명군의 참전과 전세의 변화
            • (1) 참전의 배경
            • (2) 제1차 평양성전투와 그 영향
          • 5) 조·명군의 반격과 전국의 추이
            • (1) 조선 관·의병의 활약
            • (2) 명군의 평양승첩과 전후의 행동
        • 3. 강화회담의 결렬과 일본의 재침
          • 1) 강화회담의 진행과 결렬
            • (1) 평양수복 전 조·명과 일본의 교섭
            • (2) 평양수복 후 명과 일본의 교섭
          • 3) 정유재란의 발발
            • (1) 조선의 일본재침에 대한 대비
            • (2) 일본의 재침
          • 3) 조·명군의 활약
            • (1) 조·명군의 활동상
            • (2) 조선 수군의 활약
            • (3) 조·명군의 추격전
          • 4) 일본군의 패퇴
            • (1) 조·명연합군의 반격전
            • (2) 조·명연합군의 4로 총공격
            • (3) 일본군의 패퇴
          • 5) 일본의 통교요청과 기유약조
            • (1) 일본의 통교요청
            • (2) 기유약조
        • 4. 왜란중의 사회상
          • 1) 군량미 조달과 농민의 실상
            • (1) 난초의 양식실태
            • (2) 명군 내원 이후의 군량조달
            • (3) 민중의 실상
          • 2) 송유진·이몽학 등의 난
            • (1) 송유진의 난
            • (2) 이몽학의 난
            • (3) 기타 민간반란
            • (4) 반란의 성격
          • 3) 항왜와 부왜·부로
            • (1) 항왜
            • (2) 부왜·부로
        • 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
          • 1) 육전
            • (1) 관군의 군령·군사지휘권
            • (2) 전란초의 방어체제
            • (3) 관방설치와 청야책
            • (4) 의병의 지휘권과 전략·전술
            • (5) 훈련도감의 신설과 신병법
          • 2) 해전
            • (1) 해전의 전개
            • (2) 수군의 전승요인
      • Ⅱ. 정묘·병자호란
        • 1. 호란 전의 정세
          • 1) 후금의 흥기와 조선의 대응
          • 2) 숭명정책과 중립 양단외교
        • 2. 정묘호란
          • 1) 후금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2) 강화 성립
          • 3) 의병의 활약
        • 3. 병자호란
          • 1) 재침 전의 조·만관계
            • (1) 정묘화약에 대한 양국의 시각
            • (2) 모문룡과 동강진문제
            • (3) 범월쇄환의 시비
            • (4) 개시와 양국간의 마찰
            • (5) 후금의 압력과 조선의 태도
          • 2) 청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3) 남한산성 수어와 화전양론
          • 4) 의병의 봉기
            • (1) 호남의병
            • (2) 다른 지역의 의병
          • 5) 강화 실함과 남한산성
            • (1) 강화 실함
            • (2) 인조의 남한출성
          • 6) 전후처리와 조·청관계
            • (1) 전후처리문제
            • (2) 반청의식의 고조
            • (3) 피로인 쇄환문제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수군의 전승요인

 제반 전비태세, 군선과 전투요원, 군수지원체제, 그리고 전투요원의 정예도 등 왜군에 비해 전투력이 열세했던 조선 수군이 해전에서 연전 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에 의해서였다.

 첫째는 조선 군선이 왜군에 비해 장대하고 견고하였다. 전쟁 종반기에 조정에서 해전을 논의할 때, 대신 중의 한 사람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왜적이 해전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의 배가 멀리서 왔고 선체가 견고하고 장대하지 못하여 그 위에 대포를 안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배에 제압된 것입니다(≪宣祖實錄≫권 61, 선조 28년 3월 신유).

 즉 왜선은 조선 군선에 비하여 견고 장대하지 못하여 그 위에 대포를 안치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때 육군 중심의 침략군을 편성하고 수군은 수송의 임무를 주로 하였기 때문에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군선에 대포를 적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하여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黃愼은 “왜인들도 배부림을 일찌기 익혀온 것이지만 가볍고 빠른 것만이 좋은 줄 알고, 완전하고 두꺼운 것이 믿음직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선제를 배울 줄 모릅니다. 대포는 없고 항상 조총을 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285) 장대하고 견고하여 선상에 화포를 적재할 수 있었던 조선 수군의 주력군선은 板屋船과 거북선이었다.

 판옥선은 소형 경쾌선을 추구하던 조선이 三浦·蛇梁·乙卯倭亂을 겪으면서‘소형 쾌속선으로 왜선을 추격하였으나 화포를 적재하지 못하고, 전투원이 부족하여 오히려 패하고 돌아왔다’는 점이 지적되어 다시 대형 군선제로 전환되면서 출현한 신형군선이었다. 판옥선은 당시 명과 일본의 군선 중 선체에 屋을 설치하여 승조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채용하였다.286) 그 결과 적이 돌입해 들어올 수 없고 선체가 높아 적이 기어오르지 못한 반면, 조선 수군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화포를 구사하는 판옥선을 운영하였던 것이다.287) 군선이라는 측면에서 판옥선의 우수성은 선체가 커 많은 전투원과 화포 그리고 각종 군수품을 적재할 수 있다는 장점과 아울러 선체에 판옥을 설치함으로써, 주갑판에 있는 노요원과 射手의 안전을 보장하고 상갑판에서 화포의 구사를 용이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승조원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화포를 구사케 하여 전투효율을 높였다는 것이 바로 전승 요인이 되었다. 판옥선의 단점으로‘속도가 느리고 선체가 무겁다’는 지적이 있긴 하였으나‘우리 군선은 순풍·횡풍·역풍을 구사할 수 있는데 왜선은 순풍만 사용한다’는 황신의 평가가 예시하듯 돛을 사용하여 속력을 보완하였던 것이다.288) 즉 판옥선은 명과 일본의 군선을 모방하였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군선으로 개량하여 선체가 높아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며 화포를 구사함으로써 적을 제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군선이었다.

 거북선은 돌격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임란 직전에 제작된 군선이다.289) 해 전 상황에서 이순신이 염려한 것은 숫적으로 우세한 적 선단의 진형을 어떻게 혼란·와해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투국면에서 승조원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과감히 적진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 있는 군선이어야만 적의 진형을 혼란·와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고안해 낸 것이 거북선이었다. 거북선은 판옥선의 장점을 유지 발전시키고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한 군선이었다. 판옥선의 장점이란 선체가 높아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고 포좌를 상갑판에 설치하여 화력의 효율을 높였다는 점이다. 거북선은 이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주갑판 위에 상갑판을 설치하고 노요원과 사수를 주갑판에, 포요원을 상갑판에 위치케 하고, 상갑판 위를 덮개로 씌워 전투요원까지 안전을 보장하려 하였다.290) 그리고 판옥선의 단점인 선체가 무겁고 속력이 느린 점을 보완키 위해 선체를 판옥선보다 작게 만들었다. 해전 상황에서 항해 요원과 전투원의 안전을 보장한 군선은 임란 당시 조선 군선인 거북선이 유일한 것이었다. 거북선의 활약은 두드러져 임란 당시 거북선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이 호의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水戰은 우리 나라가 보유한 장점이요, 거북선 제도는 더욱 승첩에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이 꺼리는 바가 바로 이 거북선에 있습니다 … 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불랑기·화전 등을 싣고 바닷길을 막아 끊는 계책이 곧 위급함을 막는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宣祖實錄≫권 68, 선조 28년 10월 병인).

 거북선이 전승의 한 요인이라는 평가는 바로 돌격선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승조원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승조원의 용감성을 유도해낸 船制의 장점에 있었던 것이다. 판옥선과 거북선 이외에 조선의 군선으로 포작선과 사후선 등이 있었는데 승조원이 5명에서 15명이 되는 선박으로 첩보와 보급선의 역할을 하였다.

 둘째, 선상무기의 우세였다. 왜군은 조선 침략 당시 해상전투보다는 지상전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왜군은 장창·장검·조총 등 개인 무기로 무장하였다.291) 이를 대비한 조선 수군은 銃筒과 화살을 위주로 한 선상 무기와 장창·요도·철칠려와 같은 개인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292) 즉 훈련과 실전 경험이 있는 왜군은 개인 무기를 휴대하고 조선 수군에 접근, 선내로 돌입해 들어오는 전법을 구사하였다. 이에 대응하는 조선 수군은 선체를 높게 하고 방패를 부착하여 왜군의 돌입을 막고 적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총통과 화살을 이용하여 적선을 불태워 격침시키는 전법을 구사하였다.293) 다행히도 왜선은 폭이 좁고 선체가 견고하지 못하여 선상화기를 적재하지 못하였다. 단지 조총을 이용하여 공격해 왔지만 두꺼운 판자로 건조된 조선군선을 관통하거나 파괴시킬만한 위력을 갖지 못하였다. 반면 조선의 총통은 적선을 격파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으며 화살은 화공전법을 구사하여 적선을 불태워 격침시킬 수 있었다.

 셋째 전술운용의 우수성이다. 군선의 수, 군선의 속도, 군수지원체제, 전투원의 정예도 및 전투원의 수 그리고 조선의 총통과 활을 일본의 조총과 비교할 때 포의 사정거리 및 정확도 등에 있어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에 열세하였다. 따라서 함대함 전투를 할 경우 조선 수군에게 절대 불리하였다. 이러한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순신이 주축이 된 조선 수군은 해전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기본 전략 전술을 구사하였다. 첫째 적이 진영을 갖추기 전에 기습공격을 가할 것,294) 둘째 판옥선으로 공격할 수 없는 해역에서는 포작선과 사후선을 이용하여 적선을 유인하고, 본대로 학익진을 편성하여 적선을 포위 섬멸할 것,295) 셋째 대양에서 적 선단을 만나게 되면 거북선을 이용하여 적 진영을 와해시켜 적으로 하여금 지휘체계의 혼란을 야기시킨 후 집중 공격을 가할 것,296) 넷째 아군의 군선수가 적 선단보다 적을 때는 적이 분산될 때까지 기다린 후 적 선단을 차례로 공격할 것,297) 다섯째 신속한 선단의 구성과 원활한 기동항해를 위해 사전에 지역별로 선단 위치를 부여할 것298) 등이었다.

 이순신이 주축이 된 조선 수군은 위와 같은 전략·전술을 적절히 운용함으로써 열세한 함대 세력으로 제해권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임란 전기간을 통하여 이순신의 함대가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전략·전술을 적절히 운용하였다는 점과 지형·지물에 밝은 연해민을 이용하여 주변환경을 전투에 응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명중율이 낮은 총통을 학익진을 형성하여 탄착점을 중앙에 모으게 함으로써 명중율을 높였다는 점이다.299) 이와는 반대로 용감성면에서 국왕인 선조에게 신임을 받아 통제사가 된 원균은 휘하 장병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함대함 전투를 선호하여 적세가 아군보다 강할 때 공격함으로써 적의 협공을 받아 패했던 것이다.300)

 국난의 위기에서 전국회복을 가져오게 한 동력은 수군의 승리였다. 수군의 승리를 이순신의 영웅적 활동으로 집약하는 것이 학계의 통념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영웅적 활동은 조선 군선과 화포 그리고 전술전략의 응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투요원의 책임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전승의 요인이기도 하다.

<張學根>

285)≪宣祖實錄≫권 83, 선조 29년 계미.
286)≪中宗實錄≫권 104, 중종 39년 9월 갑진.
287)≪中宗實錄≫권 42, 중종 16년 5월 무오.
288)≪宣祖實錄≫권 141, 선조 33년 정월 갑술.
289)≪李忠武公全書≫권 2, 狀啓 1, 唐浦破倭兵狀.
290) Joe Evangelsta, “The Turtle Ship Admiral,” Surveyor(뉴욕;미선박국, 1993), 2∼6쪽.
291)≪宣祖實錄≫권 25, 선조 24년 5월 을축.
292) 宋奎斌,≪風泉遺響≫配定遠近器械(奎章閣 藏書) 참조.
293)≪李忠武公全書≫권 3, 狀啓 2, 條陳水陸戰事狀.
294)≪宣祖實錄≫권 25, 선조 25년 6월 기유.
295) 海軍士官學校 博物館 所藏<鶴翼陣圖>참조.
296)≪李忠武公全書≫권 2, 狀啓 1, 釜山破倭兵狀.
297)≪宣祖實錄≫권 25, 선조 25년 6월 기유.
298) 海軍士官學敎 博物館 所藏<戰艦圖>참조.
299) 위와 같음.
300) 李舜臣,≪亂中日記≫, 정유 7월 18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