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Ⅰ. 임진왜란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2) 해전(1) 해전의 전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1. 왜란 전의 정세
          • 1) 교린정책과 왜변
          • 2) 일본의 국내정세
          • 3) 조선의 국내정세와 군사준비 실태
        • 2. 왜란의 발발과 경과
          • 1) 왜란의 발발
          • 2) 의병의 봉기
          • 3) 수군의 승첩
            • (1) 임란 전의 해방체제와 전라좌수군
            • (2) 초기 해전의 승첩과 전과
            • (3)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
          • 4) 명군의 참전과 전세의 변화
            • (1) 참전의 배경
            • (2) 제1차 평양성전투와 그 영향
          • 5) 조·명군의 반격과 전국의 추이
            • (1) 조선 관·의병의 활약
            • (2) 명군의 평양승첩과 전후의 행동
        • 3. 강화회담의 결렬과 일본의 재침
          • 1) 강화회담의 진행과 결렬
            • (1) 평양수복 전 조·명과 일본의 교섭
            • (2) 평양수복 후 명과 일본의 교섭
          • 3) 정유재란의 발발
            • (1) 조선의 일본재침에 대한 대비
            • (2) 일본의 재침
          • 3) 조·명군의 활약
            • (1) 조·명군의 활동상
            • (2) 조선 수군의 활약
            • (3) 조·명군의 추격전
          • 4) 일본군의 패퇴
            • (1) 조·명연합군의 반격전
            • (2) 조·명연합군의 4로 총공격
            • (3) 일본군의 패퇴
          • 5) 일본의 통교요청과 기유약조
            • (1) 일본의 통교요청
            • (2) 기유약조
        • 4. 왜란중의 사회상
          • 1) 군량미 조달과 농민의 실상
            • (1) 난초의 양식실태
            • (2) 명군 내원 이후의 군량조달
            • (3) 민중의 실상
          • 2) 송유진·이몽학 등의 난
            • (1) 송유진의 난
            • (2) 이몽학의 난
            • (3) 기타 민간반란
            • (4) 반란의 성격
          • 3) 항왜와 부왜·부로
            • (1) 항왜
            • (2) 부왜·부로
        • 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
          • 1) 육전
            • (1) 관군의 군령·군사지휘권
            • (2) 전란초의 방어체제
            • (3) 관방설치와 청야책
            • (4) 의병의 지휘권과 전략·전술
            • (5) 훈련도감의 신설과 신병법
          • 2) 해전
            • (1) 해전의 전개
            • (2) 수군의 전승요인
      • Ⅱ. 정묘·병자호란
        • 1. 호란 전의 정세
          • 1) 후금의 흥기와 조선의 대응
          • 2) 숭명정책과 중립 양단외교
        • 2. 정묘호란
          • 1) 후금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2) 강화 성립
          • 3) 의병의 활약
        • 3. 병자호란
          • 1) 재침 전의 조·만관계
            • (1) 정묘화약에 대한 양국의 시각
            • (2) 모문룡과 동강진문제
            • (3) 범월쇄환의 시비
            • (4) 개시와 양국간의 마찰
            • (5) 후금의 압력과 조선의 태도
          • 2) 청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3) 남한산성 수어와 화전양론
          • 4) 의병의 봉기
            • (1) 호남의병
            • (2) 다른 지역의 의병
          • 5) 강화 실함과 남한산성
            • (1) 강화 실함
            • (2) 인조의 남한출성
          • 6) 전후처리와 조·청관계
            • (1) 전후처리문제
            • (2) 반청의식의 고조
            • (3) 피로인 쇄환문제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다. 2차 침입기의 해전

 이순신이 투옥되자 조선 수군의 세력과 사기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 때 왜장 小西行長(고니시 유키나가)이 要時羅를 경상우병사 金應瑞에게 보내어 왜군의 후속 부대가 곧 바다를 건너오니 조선 수군이 그들을 기습하면 틀림 없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하였다.278) 이것은 왜군이 그들의 유일한 대항세력인 조선 수군을 괴멸시키기 위한 정보였으나 조정은 이에 대한 대비책 없이 수군에게 출전 명령을 하달하였다. 당시 원균을 위시한 수사들은 지상군의 협조 없이 수군 단독작전을 할 경우 패전이 확실하다고 하여 출전 거부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선조와 조정대신 그리고 지상군의 장수들은‘수군이 바다로 나가 군의 위용을 보이면서 적을 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수군을 힐난하였다.279)

 조정의 명령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자 조선 수군은 3도군선 200여 척에 분승하여 한산도를 출발, 부산으로 향했다.280) 조선 수군은 다대포에서 왜선 8척을 격침시킨 후 절영도 해역에 이르렀을 때 왜선 1천 척과 만나게 되었다. 세력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왜선과 격전을 벌렸던 조선 수군의 함선 일부가 서생포로 표류되어 왜군에게 나포되었고, 풍랑이 점차 강해져 격전을 포기하고 가덕도로 회항하였다. 종일 풍랑과 전투에 시달린 수군들은 휴식을 취하려고 섬에 오르던 중 왜군 복병의 기습을 받아 4백여 명이 희생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잔여병력이 함선을 이끌고 칠천량으로 퇴주하여 전열을 정비하던 중 왜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회피하고 도주한 裵楔 휘하의 12척 군선을 제외한 조선 군선은 모두 격침되었다. 조선 수군이 완전히 와해된 이 해전을 칠천량해전이라 부른다. 조선 수군이 패전하게 된 것은 조정의 무리한 출전 강요가 주 원인이었으나 원균의 전술에도 문제가 있었다. 즉 이순신이 조선 군선을 집중시켜 적선이 분산되었을 때 공격하여 승리했던 것과는 달리 원균은 열세한 군선으로 다수의 적선을 분산 공격케 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열세한 군사력으로 우세한 적군을 공격하는 모양이 되어 그 결과는 패배로 나타났던 것이다.

 선조 30년(1597) 7월 21일 원균 함대의 패보에 접한 선조는 잔재해 있는 군선을 수습하고 결원된 통제사의 후임을 결정하여 충청·전라도에 대한 방비책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조정은 수군의 잔존 함선이 12척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 세력으로는 일본 수군을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참가하라”고 명하였다.281) 그러나 통제사에 재 부임된 이순신은 조정의 해양방위 포기론을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282)

 첫째 임진왜란 5, 6년간 왜군이 충청·전라도를 침범치 못한 것은 수군이 해안 요충지를 방어했기 때문이다.

 둘째 현존한 전선이 12척에 불과하지만 사력을 다하면 전라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해양방위를 포기하게 되면 왜군은 수륙으로 전라·충청도를 거쳐 서울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넷째 충청·전라도를 잃게 되면 실세를 회복하기 어렵다.

 이순신의 해양방위 포기 반대의견에 대하여 조정은 수군력이 잔존하고 있음을 감안 수군의 해상활동을 허용하였으며, 이순신에게 수군의 재건과 방왜전략을 일임하였다.

 조선 수군이 칠천량 패전으로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을 무렵, 왜군의 지상군은 남원을 점령한 후 전주에 입성함으로써 사실상 왜군이 전라도 전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 수군은 육군의 북진에 호응하기 위하여 藤堂高虎(도토 다카도라)·加藤嘉明·脇坂安治·來島通總 등이 지휘하는 함선 330여 척이 하동에서 서진하여 그들의 지상군이 직산에서 패전한 9월 7일에는 해남반도의 남단 어란포까지 진출하였다.

 수군통제사에 복직된 이순신은 왜군이 어란포에 이르렀다는 보고를 받고, 수습한 군선 12척을 명량수로 서쪽의 전라우수영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일본 수군이 명량수로를 경유하여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9월 16일 아침 일본군선 130여 척이 명량수로에 진입했다는 척후선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피란선을 주력군 선단으로 위장시켜 왜군의 수로 통과를 차단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왜군은 밀물을 이용하여 명량수로를 통과하려하였으나, 일본 선단의 선두가 수로를 통과할 무렵, 밀물이 썰물로 역류하기 시작하였다. 이순신은 피란선 1백여 척을 배후 주력함대로 위장시켜 왜군에게 공포심을 조성시키면서 12척의 전함으로 왜군선에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조선군이 순류를 타고 공격하자 역류를 거슬러 오르면서 공격해야 하는 왜군은 항해와 화력의 구사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은 공격이 용이한 순류를 타고 왜군이 전투대형을 갖추기 전에 총통으로 선제공격을 가하여 왜군을 혼란시켰다. 조류를 이용한 조선 수군의 공격으로 왜군의 선두 선단 31척이 격침되고 뒤따르던 선박들이 서로 부딪치며 파손되자 일본 선단은 조선 수군의 본대 공격을 받을 것을 꺼려 뱃머리를 돌려 패주하였다.283) 명량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전라도 해안의 제해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왜군의 수륙양면 작전을 좌절시켰으며, 해체 위기에 있던 조선 수군을 재건하여 왜군에 대한 공세작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조선의 지상군도 9월 7일 직산전투에서 명군과 연합하여 왜군을 패 퇴시킨 후, 퇴주하는 왜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압박하고 조선침략의 원흉 풍신수길이 병사하자 왜군 장수들은 본국으로 귀환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왜군의 철수를 예측한 조선 수군은 여수반도 일원에 주둔하고 있는 소서행장군의 해상퇴로를 막을 계획을 수립하고 군선을 나로도로 이동시켰다. 이 때 명장 陳璘이 인솔하는 명의 수군이 조선 수군과 연합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해전에 소극성을 보이고 있는 진린을 설득하여 먼저 일본의 구원군을 격멸하기로 하고, 함대를 노량해역으로 이동시켜 일본 수군이 통과할 길목을 차단하였다. 진린군은 죽도 부근에, 이순신군은 관음포에 진을 치고 일본의 함대가 통과하기를 기다렸다.284) 소서행장의 구원 요청에 따라 거제의 立花宗茂(다치바나 무네시게)軍과 부산의 高橋直次(다카하시 나오츠쿠)軍까지 가세한 일본 함선 5백여 척이 島津義弘(시마츠 요시히로)의 지휘하에 19일 노량해상에 나타났다. 왜선이 나타났다는 척후선의 보고에 조·명 연합함대는 왜군의 항로를 차단하면서 화포를 이용하여 협공하였다 조·명 연합함대의 협공을 받은 일본 수군은 2백여 척의 대소 전함과 5백여 명의 병력을 상실하고 퇴주하였다. 조·명 연합함대가 島津의 일본 함대를 협공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소서행장군은 왜교성을 탈출하여 남해의 남단을 경유하여 거제도의 도진의홍·宗義智軍과 합류, 부산으로 퇴각하였다. 왜군이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부산에서 완전 철수함으로써 7년간의 지루한 전쟁은 끝을 맺게 되었다.

278) 神靈,≪再造藩邦≫권 2.
279)≪宣祖實錄≫권 89, 선조 30년 6월 정해.
280) 柳成龍,≪懲毖錄≫권 3.
281)≪李忠武公全書≫권 9, 附錄 行錄 1.
282) 위와 같음.
283) 張學根, 앞의 글(1992), 102쪽.
284)≪壬辰倭亂史≫(國防部戰史編纂委員會, 1987), 264∼26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