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Ⅳ. 학문과 종교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예수교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서양과학과 기술 가운데서 중국 황실과 사대부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서양천문학과 그 관측기술이었다. 유교전통사회에서 황제는 천문을 정확히 관측하여 曆書를 작성하여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것이 ‘敬授民時’라는 堯典의 말과 같이 역서는 제왕의 책임이었던 것이다.0624) 농업국가에 있어 계절의 변화와 그에 따른 농업생활에 도움을 줄 기본 정보를 실은 역서의 편찬을 뒷받침하는 曆算推步의 학문은 ‘帝王之學’이었던 것이다. 유교전통사회에서는 ‘天人感應思想’의 영향으로 천문의 이변을 君德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믿음이 있었다. 군왕이 有德할 때 天象과 자연은 순조로우나 정치적 과실을 저지르는 부덕한 군주에 대해서는 하늘의 경고와 징벌이 천지현상의 이변으로 나타난다는 믿음이 확고하였다. 정확한 역서의 제작, 반포가 제왕의 책무였기에 그 정확한 역서제작의 기초학·기초기술인 천문학·천문관측이 문제되는 것이며, 관측기록에 의해 정확한 역서를 제작할 수 있는 기초학문인 曆算學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회 東洋巡察使 바리니아노(Valingiano;范禮安)가 시달한 補儒論的 문화주의의 전교방침을 준수하던 마테오 릿치는 북경주재의 허가를 받은 후 전교의 전제적 방법으로 서양의 천문·역산술을 전할 수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漢譯하여 간행, 유포시켰다. 마테오 릿치가 중국사회에 전파하고자 하는 크리스트교 신앙과 그 가치를 담은 윤리사상체계는 유교사회의 군주로는 반가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머리 속에 담긴 서양의 천문역산학과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천문·역산술은 당시 전통적인 중국 역법의 오차 때문에 고민하던 중국으로는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 ‘奉敎士人’이며 禮部右侍郞이었던 徐光啓의 노력으로 명나라는 1629년 북경에 西洋曆局을 개설하고 적극적으로 서양 역산법을 도입,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마테오 릿치를 위시한 예수회 전교자들과 그들을 적극 보좌한 봉교사인 李之藻의 합동 노력으로 방대한 양의 漢譯西洋曆算書의 집대성인≪崇禎曆書≫가 이루어져 5차에 걸쳐 황제에게 進呈되었던 것이다.0625)≪숭정역서≫에 포함된 각종의 한역서양역산서가 赴京使行員들에 의해 조선사회로 재래되었다.≪숭정역서≫는 명나라가 후세에 남긴 가장 위대한 과학유산일 뿐만 아니라, 청나라 초기에 이루어지는 時憲曆의 기초 자료로 주목되는 방대한 한역역산서로 집성되었다.

 중국에서 명·청 교체가 진행되는 와중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는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아담 샬의 적절한 시국 대응과 서양 역산기술의 유용성을 인식한 청국의 호의적 조치로 예수회는 서양 신법에 의한 역서 작성의 업무를 계속 담당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시헌력을 이루어 중국사회에 실용시킬 수 있었다. 1600년의 ‘欽天監敎案’으로 중국전통 역산학세력의 반격을 받아 한때 북경에서 예수회선교사들이 체포, 추방되는 일도 겪었으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취향이 대단했던 康熙帝가 친정케 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 다시 연경에 들어와 역산의 책무를 담당할 수 있었다.0626)

 마테오 릿치의 북경 입성부터 약 반세기 후인 17세기 전반에 조선으로 도입된 漢譯西學天文曆算書에 대한 조선지식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한역서학서를 통해 가장 먼저 서양 天體論을 언급한 사람은 이미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김만중이다. 그는 ‘天圓地方’의 설을 주제로 하는 동양사회의 전통적 우주관인 ‘蓋天說’ 내지는 ‘渾天說’ 등 동양 고래의 우주관에 대해 ‘地圓說’을 수용하였고, 그 지구설을 의심함은 ‘井蛾夏虫之見’이라고 규정하였다.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서양의 지구설을 평가하였다.

명나라 만력년간에 서양의 지구설이 나옴으로써 渾天·蓋天의 두 설은 비로소 서로 통하게 된 것이 하나의 큰 일이었다. 생각건대 고금의 天을 논하는 자들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면 코끼리를 쓸어보고 그 일부분만을 알고 있음과 같은 것이었으나 서양의 역법에 의해 비로소 그 전체를 알게 되었다(金萬重,≪西浦漫筆≫下).

 김만중은 그에 앞서 정두원이 도입한≪利瑪竇天文書≫일부를 접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가 열람한 천문서란 李之藻가 筆述하여 1607년에 북경에서 간행한≪渾蓋通憲圖說≫일 것이다.0627) 이 한역서양천문서는 마테오 릿치가 로마의 대학에서 배웠던 유명한 수학자이며 역사가이던 크라비우스(Cravius)가 지은 천문교과서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엮어낸 것이었다. 한편 연행사 정두원이 조선으로 도입한 한역서학천문서로≪天問略≫이 있었다.≪천문략≫은 조선 유학자들의 전통적 천체관을 근본으로부터 뒤흔들게 하는 한역서학천문서였다. 비록≪천문략≫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地動說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서양에서 수용되어 온 크리스트교적 천체관에 입각한 것이며, 지구 중심의 天動說에 터전한 천체관을 담은 것이었으나 천원지방의 개천설·혼천설 등 동양 고래의 천체관에 변화를 촉구하게 된 한역서학천문서였던 것이다.0628)

 진주사 정두원 일행이던 역관 李榮俊은 서양천문역산학에 관한≪천문략≫·≪治曆緣起≫등을 정두원으로부터 넘겨받아 큰 놀라움을 가지고 통독한 후 그것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던 로드리케즈에게 서양 천문관에 대해 질문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중국을 중심으로 작성된<坤與萬國全圖>를 보고 천하의 渾元淸淑의 氣가 응집되어 많은 성인이 배출되고 仁義禮樂之敎가 성하며 그 기가 이어 내려오고 있는 중국과 비견할 수 있는 나라가 ‘中國之外’에도 있음을 알게됨으로써 대단히 놀랐으며, 자기가 지금까지 믿어오던 화이론적 세계관에 큰 충격을 받았음을 전하고, 서양역법의 정밀한 推算術을 검토하고 중국역서의 잘못을 알게 되었음을 전했다. 그러나 다만 동양의 전통적인 개천설이나 혼천설과 전혀 다른 우주관으로서의 十二葱頭論(十二重天說)에 대하여는 이해하기 어려움이 많으니 뒷날 가르침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0629)

 이영준의 솔직한 서한에 접한 로드리케즈는 중국을 중심으로 제작한 세계지도는 중국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며, 지구론에 의하면 세계의 모든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밝혀 화이론적 세계관이 잘못임을 지적하였다. 한편 중국인들이 이 지도 때문에 세계를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조선도 그렇게 될 것을 희망하며, 동방의 모든 성인의 가르침을 자기들도 이해하고 있으며 삼강오행이나 오륜치국의 가르침은 서양에서도 알고 있는 일임을 지적하면서 서양의 ‘天學’을 내세웠다. 끝으로 중국에서 한·당 이래로 정확한 역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아직 완전을 기하지 못하여 황제의 칙명으로 자기들이 역법 개수에 힘쓰고 있으나 그 ‘天文綱理’ 즉 자세한 점은 몇 마디의 글로 플이할 수 없으니 뒷날 만날 기회를 얻어 그 일에 대해 논의하자고 답신하였다.0630) 이 두 사람의 면담이 이루어졌다면 매우 흥미있고 유익한 천문·역법 토론이 있었을 것이나 서간이 두 사람 사이에 교환된 다음 해인 1632년에 화북에서 전란이 일어나게 됨으로써 무위에 끝났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이 17세기 초부터 부연사행원에 의해 조선으로 도입된 서양천문도, 중국한자로 작성된 이른바 한역서양천문·曆象 관계의 서학서가 기회있을 때마다 조선사회에 도입되었다. 17세기 초부터 여러 종류의 한역세계지도가 조선의 선각적인 지식인이나 천문·역상 기술관직자들에 의해 검토되고 논평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접하고 검토하게 됨으로써 17세기 종래의 세계관·우주론이 동요할 수 있는 소지가 조성되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근대적 깨우침으로까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그 이해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0624)≪書經≫권 1, 虞書 堯典.
0625)≪崇禎曆書≫는 崇禎 2년(1629) 역법개정을 목적으로 서양역법서의 번역과 改曆 편찬을 목적으로 개설된 曆局의 督領 徐光啓와 그의 後任 李天經 등이 Adam Shall(湯若望), Giacomo Rho(羅雅谷) 등 예수회선교사의 협조로 1634년까지 5차에 걸쳐 明帝에 進呈된 漢譯西洋曆算書로서 집성된 叢書, 新法曆書, 新法算書로도 불린다.≪숭정역서≫는 명이 후세에 남긴 가장 위대한 科學遺書이며 조선의 時憲曆의 기초가 되었다(姜在彦, 앞의 책, 57쪽). 5차에 걸쳐 진정된≪숭정역서≫의 총권수는 刻版에 따라 異同이 있다(103∼137권). 崇禎初版(1634) 順治 2년 補刊版本, 康熙 17년 又補刊版本(1678)의 세 가지의 판본이 있다(徐宗澤, 앞의 책, 239∼256쪽).
0626)‘欽天監敎案’은 順治帝 이래 欽天監曆局을 중심으로 예수회선교사와 奉敎士人 중심의 西洋曆法 세력에 대해 중국 전통 回曆法 세력이 康熙 초에 楊光先 등 闢邪斥西세력의 謀反告變上疏를 기회로 일어난 천주교박해 사건이며 구법세력이 흠천감을 장악하게 되고 大統曆法과 回回曆을 부활하게 된 政變이다. 이 때 북경에서 예수회선교사가 추방되고, 체포되었던 아담 샬은 겨우 사형을 면했으나 병사했다(1644). 그 후 1668 양광선이 제작한 역서의 오류가 문제되어 구법세력이 숙청되고 예수회선교사들이 북경에 복귀하여 역법사업을 주관하게 되었다(矢澤利彦 譯,≪東西曆法の對立≫, 日本, 平河出版社, 1986).
0627)姜在彦, 앞의 책, 69쪽.
0628)蓋天說에는 天·地 모두 平面이며, 천은 圓이요 지는 方이라고 생각하는 天圓地方說(一次 蓋天說)과 천지가 모두 曲面이며 북극지방이 높은 삿갓(蓋笠) 모양이라는(二次 蓋天說)의 두 가지로 나누어 지며, 渾天說은 後漢의 천문학자 張衡의≪渾天儀≫의 설이며, 천·지의 모양은 鳥卵(새알)과 같은 것으로 天이 地를 둘러쌓고 있으며, 하늘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돌아감이 渾然하다고 한다. 漢代 이후 모두 혼천설을 신봉하고 조선에서도 이 혼천설은 추종하고 있었다 한다(全相運,≪韓國科學技術史≫, 30∼34쪽).
0629)安鼎福,≪雜同散異≫, 與西洋國陸掌敎若漢書.
0630)安鼎福,≪雜同散異≫, 西洋國陸若漢 答李榮俊書.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