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Ⅳ. 학문과 종교7. 불교계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산중승단

 조선시대의 불교는 그 시기적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3기로 구분되기도 한다. 개국에서부터 명종 20년(1565)까지의 종파 및 僧科 존립기, 명종 21년부터 淸虛休靜(1520∼1604)의 시대를 포함한 山僧家風확립기, 그리고 이 시기 이후 조선 말까지 禪·敎·念佛이 통합적으로 행해지던 三門修業 존속기가 그것이다.0751)

 이상의 3기를 통해서 볼 때 정확하게는 제2기와 3기가 산중승단의 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 일대의 불교를 전반적으로 산중승단의 불교로 특징짓기도 한다. 초기 억불정책의 방향이 결과적으로 산중불교화를 재촉하였고, 마침내 명종 21년 이후로는 오직 산 속에 들어가 승단을 이룩하고 불교의 명맥을 유지해 갔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산중승단의 형성과정을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기간 중의 억불정책을 통해 간략하게 살펴 보려고 한다.

 태종대의 대불교정책은 조선왕조에 있어서 최초로 단행된 본격적인 억불정책이었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된다. 그러나, 그 광범한 대상이나 파급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국가의 경제적 현실 타개책으로서의 성격이 더 짙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대대적인 사원토지의 감축 및 노비의 屬公 등 억불의 내용이 주로 불교에 대한 경제적 제재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최초 단계의 억불정책은 국가의 종교적 이념 문제로서 보다는 오히려 태종 초의 증대된 軍國的 수요를0752) 충당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11宗에 달하던 종파가 7종으로 폐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종파의 폐합, 축소와 같은 일은 이후 산중불교의 출현 문제와도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불교 각 종파의 특성이 무시되고 그 활동 또한 제약 봉쇄당함으로써, 결국 불교교단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이다.

 7종으로 폐합된 종파를 다시 禪·敎 양종으로 대폭 축소시켜버린 세종대의 억불정책 또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사원·승려·토지 및 노비의 대폭적인 감축으로부터 시작된 세종대의 억불정책은 이와 표리의 관계를 이루는 종파의 파격적인 축소로 이어져 갔다. 이로 인해 불교의 경제적, 인적 기반의 상당 부분이 해체되고,0753) 교학사상 및 그 활동의 다양성도 거의 사라지게 된다. 국가의 현실적 요구와 행정편의에 따라 강행된 이 같은 종파폐합의 정책은 이후 불교계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케 해준다. 그 연장선에서 이미 산중불교의 출현이 예견되는 것이다. 한편 이 시기의 억불정책 가운데 승려의 入城禁令 또한 산중승단 형성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조치는 원래 無度牒僧의 단속을 위해 내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의 확대 실시로 산중불교화의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태종, 세종대의 억불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던 산중승단의 출현은, 성종대의 억불정책을 거치는 동안 거듭 확인된다. 유학진흥과 유교의 이상정치 구현에 진력했던 성종은 본래 숭유배불적 성향이 강한 군주였다. 여기에다 과격한 배불론자들이었던 당시의 新進士類들까지 가세하여, 이 시기의 억불정책은 더욱 강경하게 추진되어 갔다. 그것은 특히 성종 7년(1476) 왕의 친정 이후, 여러 방면에 걸쳐 불교계에 대한 핍박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대규모의 僧尼축출과≪經國大典≫에 명시되어 있던 度僧法의 정지는0754) 성종대 억불정책의 핵심을 이룬다.

 이 두 가지 조치는 기존 승려에 대한 강제 축출과 병행하여 새로 승려가 되는 길까지 법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불교의 자멸을 유도하고 있는 그런 정책들은 신진사류들의 강경한 요구와 정책 입안에 따라 결행된 것으로, 이 점은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사림세력의 성장이 불교계의 수난으로 직결되고, 또 그것이 산중승단의 출현에도 무시할 수 없는 한 배경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억불의 단계를 넘어선 이같은 배불정책으로 피폐해진 불교계가 다시 연산군대에 이르러서는 그 존립 자체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연산군 10여 년 간에 걸친 폭정하에서의 불교박해는 가히 ‘破佛’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선교 양종의 都會所(本寺)인 興天寺를 폐하여 公廨로 삼은 일은 불교계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불교교단의 근거지인 양종의 본사가 없어진 상태에서 僧科 또한 실시되었을 리가 없다. 연산군대에는 이 외에도 祖宗의 願刹이던 大圓覺寺를 폐하여 掌樂院으로 삼고, 승니를 환속시켜 官奴나 官房의 婢로 삼는 등 철저한 파불이 계속되었다. 물론 이러한 박해가 일정한 대불교 정책의 틀 안에서 수행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연산군의 무도함과 횡포로 인한 불교의 수난이라 해야겠지만, 어쨌든 그 결과는 마침내 불교교단을 산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도성 안에서 근거지를 잃은 선교 양종은 廣州 淸溪寺로 물러나, 다만 이름 뿐인 양종을 扶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산중승단의 시대는 사실상 연산군 말경부터 개막되고, 그것은 다시 중종대의 억불정책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고정되어 갔다. 사림세력의 정계진출과 그 영향력이 막대했던 중종대에는 연산군대의 억불에 비해 진일보한 경향을 보여준다. 연산군대의 억불이 원칙 없는 파불의 형태였다면, 중종대의 그것은 철저한 폐불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미 폐사된 흥천·흥덕 양사의 大鐘과 경주의 銅佛로 統筒을 주조케 하고 있는 일이나,≪경국대전≫에서 아예 度僧條를 삭제하고 있는 데서도 그런 의지가 느껴진다. 이보다 앞서 중종 2년(1507) 기묘 式年에 승과를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그 폐지를 공식화하고 있음은 이를 더욱 뒷받침 해준다.

 승과의 폐지는 국가와 불교와의 공적인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선교 양종이 국가로부터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0755) 이로써 이후 불교교단은 자연히 무종파의 산중승단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중종대에 산중승단이 현실로 고정됨으로써, 조선 전기의 억불정책은 일단의 결론에 이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중종의 승과 폐지 이후 40여 년이 지난 명종 5년(1550)에 文定大妃의 흥불 노력에 힘입어 선교 양종이 복구되고 이듬해에는 승과가 부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존속기간은 15년에 불과한 것이었다. 명종 20년 대비의 死去와 함께 불교는 다시 산중승단의 형태로 되돌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이는 중종대에 이미 내려진 결론에로의 복귀인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중승단은 태종·세종대의 억불정책에서부터 그 출현이 예견되고, 이 후 그것은 다시 성종대의 배불과 연산조의 파불을 거쳐, 중종대의 폐불정책에 이르러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나 있다. 이같은 산중승단의 형성은 국가정책에 의한 타율적 결과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런 山間叢林의 불교에도 그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조선불교는 순수한 수행승단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에 바로 이 점 때문에 불교의 은둔화 경향이 더욱 심화되어간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었다.

0751)金煐泰,≪韓國佛敎史槪說≫(經書院, 1986), 165∼166쪽.
0752)韓永愚,≪朝鮮前期 社會經濟硏究≫(乙酉文化社, 1983), 190∼191쪽.
0753)寺院토지의 경우, 合宗 전에 11,100결이던 것이 종파 축소에 따라 선·교 양종에 도합 7,950결만 분급되었다. 전국 사원토지의 약 30%가 감축된 숫자이다.
0754)임시조치적 성격을 띤 度僧法의 정지는 성종 23년 2월부터 11월까지 적용되다가 그 이후로는 無度牒僧 단속에 중점을 둔 禁僧節目의 시행으로 다소 완화되었다. 이는 仁粹·仁惠 양 대비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0755)각 宗에서 주관하는 宗選에 합격한 자에 한해 국가 시행의 大選에 응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僧科는, 국가와 불교(각 종파)와의 공적인 관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