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인들의 비밀집단
落魄한 선비들과 가문이 비천한 지식인들이 도술의 수련을 빙자하여 산수 사이를 遨遊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그러한 사람들이 회동하여 師生關係를 맺으면서 갖가지 도술을 논하기도 하고 세속에서 초연한 생활을 하면서 기이한 설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선조 때 사람 趙汝籍이 찬술한 것으로 전해지는≪靑鶴集≫은 일단의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생관계와 행적을 엮은 만록류의 책이다. 조여적이 선조 21년(1588) 과거에 낙방하고 극도의 실의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楮灘에서 초면부지의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오는 데 놀란 나머지 그 사람을 사사하여 60년이 되었고, 그 동안에 견문한 사적을 전하기 위해≪청학집≫을 엮어냈다는 것이다.
조여적이 사사한 사람은 李思淵(일명 挺元, 承祖)으로 자는 胤夫, 호는 雲鴻, 雲鶴, 片雲이다. 강원도 인제 사람으로 16세 때부터 이미 雲林高趣가 있었는데, 선조 6년(1575)에 한 優婆塞(출가하지 않은 불제자)를 만나 道書 1권을 얻은 것이 인연이 되어 五臺山 麒麟臺에서 7인의 신선 같은 道人을 만나게 되었다. 金蟬子·彩霞子·翠窟子·鵝蕊子·桂葉子·花塢子·碧落子가 그 일곱 도인의 道號이다. 이들은 다 뛰어난 재지를 지니고도 때를 만나지 못해 강호에 숨은 인물들이다. 편운 이사연은 이들과 함께 甲山 사람 靑鶴山人 魏漢祚를 사사하였다. 위한조는 중국인 楊雲客을 만나 그와 함께 異術을 배웠다. 위한조는 앞 일을 잘 알아서 예언을 하기도 하고 그 예언이 적중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선조 36년에 자기가 세상을 사절하게 되었음을 제자들에게 일러 주고 그해 정월 15일 새벽에 일어나 大蘭山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위한조를 사사하던 이사연을 포함한 여덟 사람은 다 흩어져 가버리고, 이사연은 금선자 李彦休(자는 弘道) 및 曺玄志(자는 通遠, 호는 五竹居士·梅窓)와 함께 한라산을 향해 떠났는데 茂州 德裕山에 당도하자 그 곳이 살만함을 알고 그 곳에 집을 짓고 동거하면서 약초를 채집하고 신을 삼고 하여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에 앞서 이사연은 채하자와 함께 중국의 燕京에 가서 중국인 조현지를 만났다. 조현지는 바로 양운객의 문인이었다. 조현지는 앞 일을 잘 알아서 중원이 장차 만주족의 땅이 될 것이므로 안심하고 살 곳을 찾던 중에 조선에서 온 이사연과 채하자 두 사람을 만나게 되어, 조선의 한라산이 옛날로부터 병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 하여, 그곳으로 같이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들은 다 한시를 지을 줄 알아서 도처에서 吟詠한 시들이≪청학집≫에 전해진다.
이들은 다 현실사회를 도피한 은둔자들로 자기 자신들도 遁자를 써서 터득한 도의 성격을 나타냈다. 양운객은 도가 가장 높아 通神變化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하여 天遁이라고 불렀고, 위한조는 그 다음으로 知人知鬼한다 해서 地遁이라고 불렀고, 그 나머지는 그만그만해서 이사연은 神遁, 조현지는 人遁, 그 밖에 仙遁, 佛遁 등 적당한 칭호로 불렀다. 용모가 寒玉 같고 눈이 새벽별 같은 자칭 西蕃僧이라는 자도 호를 能浩 또는 洞里堂이라 하여 이들과 역시 의기투합하여 심오한 이치를 자세히 토론하였다. 이들은 당시 유가 계통의 지식인들과는 판이한 史觀 내지 시국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명의 멸망과 만주의 발흥을 예언하였고, 중국에 대해서는 뚜렷한 항거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장래 어느 때에는 조선에 천운이 돌아와 일본을 굴종시키고 중국을 제압하며 천하를 통제하는 지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였다.≪청학집≫의 기사를 보면 당시 일부 지식인들의 도교를 빙자한 은둔생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