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인삼
人蔘은 원래 산에서 채취하는 자연생으로, 주로 왕실에 공물로서 바치거나 일본·청나라와의 무역에 사용되었다. 18세기에는 인삼이 전국의 여러 산 속에서 채취되었다. 특히 평안도의 江界지방이 유명하였고 함경도의 咸興 이북지방과 강원도의 산골에서도 인삼이 많이 채취되었다.0108)
인삼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그 가격이 급등하였고,0109) 천연생의 인삼으로는 수요를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부 농민들이 인삼을 밭 등 집에서 재배하는 방법을 모색하였고, 그 방법은 영남지방에서부터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0110)
(인삼은) 근래 수십 년 전부터 산에서 나는 것이 점차 고갈되어 집에서 재배하는 방법이 영남에서 시작되어 전국에 퍼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家蔘이라 일컫는다(徐有榘,≪林園經濟志≫灌畦志 권 4, 藥類 人蔘).
가삼 재배의 일반화는 인삼의 생산과 경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삼은 자본을 투자하여 재배한 지 4∼6년이 지난 후에야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빈농들은 인삼을 재배할 수 없었고, 부농들이 자본을 투자하여 인삼을 재배하였으며, 수확한 후에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주요한 상품작물의 하나였다. 당시 인삼의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인삼을 재배하려고 하는 자는 부농들이었고, 그들은 인삼을 재배함으로써 부를 얻고자 하였다.
인삼 재배업은 급격히 확대되어 경상도·전라도뿐만 아니라 경기도·황해도·강원도 등의 지방에서도 인삼을 재배하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많은 자본을 가진 개성상인들이 인삼의 재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개성지방이 인삼 재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국 생산량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