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3권 조선 후기의 경제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4. 임노동의 발생1) 농민층의 분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1) 인구의 증감
          • 2) 인구의 분포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1) 수전농업의 생산력
            • (1) 이앙법의 보급
            • (2) 새로운 품종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1) 품종의 증가와 새로운 작물의 보급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윤작의 실시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 (2) 수리시설의 확대
            • (3) 상품작물의 재배
        • 3. 광작과 지주제
          • 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1) 광작과 광작농
            • (2) 광작론과 반광작론
          • 2) 지주제의 변동
            • (1) 농촌사회 분해와 토지의 상품화
            • (2) 지주제의 변동과 그 대책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 임노동의 발생
          • 1) 농민층의 분화
            • (1) 부역제의 한계
            •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 (3) 노동예비군의 형성
          • 2) 임노동자의 출현
            •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 (2) 고용관계의 수립
          • 3) 임노동의 양상
            • (1) 임노동의 종류
            • (2) 임노동의 조건
        • 5. 수공업의 발달
          • 1) 자영수공업체제의 형성과 발전
          • 2) 상업자본의 생산적 전회와 선대제의 발생
          • 3) 매뉴팩처의 발생
            • (1) 유기산업부문
            • (2) 야철산업부문
            • (3) 직물산업부문
            • (4) 광업부문
        • 6. 광업의 발달
          • 1) 18세기「별장」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성립과 군수광업의 몰락
            • (2)「별장」제하 은점의 경영 실태
          • 2) 18세기말 19세기 전반「물주」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폐지와「수령수세」제의 성립
            • (2) 물주제하의 광산경영 실태
        • 7. 어·염업의 발달
          • 1) 어업
            • (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어업의 발달
            • (2) 수산물의 종류
            • (3) 어구·어법
            • (4) 어전·방렴류
            •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 (6) 수산양식업
            • (7) 수산제조업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 (2) 소금 생산방법
            • (3) 제염기술의 발전
            • (4) 소금의 유통구조
            • (5) 염업에 대한 정책
        • 8. 운수업의 발달
          • 1) 육상운송
            • (1) 조선 후기 역의 운영 실태
            • (2) 파발제의 성립과 발달
            • (3) 역마확보의 변화와 고립제
          • 2) 수상운송
            • (1) 관물의 운송
            • (2) 사물의 운송
          • 3) 원과 주막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상인층의 성장과 도고상업의 전개
          • 1) 관상도고의 활동
            • (1) 시전도고의 활동
            • (2) 공인의 활동과 공인자본의 성격
            • (3) 경·영주인과 영저도고의 활동
          • 2) 사상도고의 활동
            • 가. 서울지역에서의 사상의 활동과 신해통공
            • 나. 서울 주변지역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다. 상품생산지 및 집산지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3) 반도고활동의 전개와 상업계의 동향
            • 가.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나.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2. 상품의 유통
          • 1) 농촌장시의 발달
            • (1) 상업적 농업과 농촌수공업의 발달
            • (2) 육상교통의 발달과 장시의 증가
            • (3) 농촌장시의 발달과 시장권 확대
          • 2) 포구상업의 발달
            • (1) 해상교통의 발달과 포구시장권의 형성
            • (2) 경강포구의 상업발달
            • (3) 외방포구의 상업발달
            • (4) 포구상업세력의 성장과 상품유통
          • 3) 상업도시의 형성
            • (1)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 (2) 서울의 상업도시로의 성장
            • (3) 지방 상업도시의 출현
          • 4) 상업자본의 축적
            • (1) 시전상업체제의 변동과 사상의 성장
            • (2) 도고상업과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 3. 금속화폐의 보급과 조세금납화
          • 1) 금속화폐의 보급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동전유통 정착의 경제적 기반
            • (2) 17세기말∼18세기 중엽 금속화폐의 유통
            • (3)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조세금납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 (1) 조세금납의 성립조건-17세기 수취제도의 모순
            • (2) 17세기말∼19세기 중엽 조세금납의 전개
            • (3) 19세기 전반 화폐수탈의 급증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 4. 대외무역의 전개
          • 1) 청과의 무역
            • (1) 17세기 부연역관의 청·일 간 중계무역
            • (2) 17세기말 18세기 전반 무역별장의 등장과 역관·상인 간의 대립
            • (3)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연상무역의 발전과 산업부문 침투
          • 2) 일본과의 무역
            • (1) 무역의 범주
            • (2) 상인
            • (3) 상품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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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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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부역제의 한계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이후에 보편화되고 있던 임노동형태는 필연적 현상으로서 당시의 사회경제적 산물이었다. 당시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여러 부문에서 임노동이 발생하는 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첫째로, 신분적 토대 위에서 운영되던 노동력의 강제동원체제인 賦役制가 이 시기에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게끔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성리학적 지배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봉건적 사회질서를 다시 한번 재편성하면서 성립한 조선왕조는 건국 당초에 노동력 수취체제로서 부역제를 마련하였는데, 이에 의거하여 일반 백성은 身役으로서 국가가 필요한 모든 노동활동에 동원되어야 했다. 흔히 ‘役’으로도 일컬어지는 국가의 노동활동에는 노동의 성격에 따라 軍役·職役·徭役의 구별이 있고, 노동자의 신분에 따라 良役·賤役의 구별이 있었다.0256) 그런데 이와 같은 부역제는 성립 당초부터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良人皆兵制, 兵農一致制의 원칙 아래 16세에서 60세에 이르는 모든 양인 장정이 부담하던 군역제는 경제적 뒷받침이 안되는 給保制에 의존함으로써 처음부터 허구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府兵制의 정신에 의해 國役을 지는 자에게는 누구나 그 지위에 상응하는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지급한다고 하였지만, 科田法에서는 농민에게 결코 한 평의 토지도 지급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농민에게 군역을 강요하였다.0257)

 봉건국가는 군역뿐 아니라 요역도 일방적으로 강요하였다. 요역은 중앙 및 지방의 관부에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농민의 노동력을 징발·사역하는 無償의 강제노동이었다. 15세기말에 편찬된≪大典續錄≫에 의하면, 당시 농민들이 부담하던 요역은 進上·貢物 등의 생산과 운반, 사신들의 짐 운반, 성곽·도로·제방·목장·공공건물·陵墓 등에서의 토목공사, 얼음·숯·석회·광물·무기·화약의 제조 등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0258) 봉건국가는 이같은 요역에 농민을 징발하면서 나름대로 원칙을 정하였다. 즉 조선왕조의 기본법전인≪經國大典≫에서는 무릇 토지 8結에 1명의 부역을 내고, 1년에 6일 이상 노동을 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0259) 그러나 이것은 한 번도 제대로 집행된 일이 없는 허구적인 조처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요역은 부담량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관의 자의적인 수탈이 처음부터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잡다한 요역의 노동량은 부역군을 사역할 수 있는 기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工役을 원만히 진행시킬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일의 책임을 맡은 관리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부역에 응하는 농민들의 거주지와 노동현장과의 거리도 고려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왕래와 복무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예컨대 皂隷·羅將의 근무처는 서울이었지만, 그것에 동원되는 사람들은 경기·충청·강원·황해도 등 지방의 농민들이었다. 게다가 그들 부역군들은 대개 식량·기구 등을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부담이 과중하였다.0260)

 특히 당초부터 부역제에는 布納化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본래 역은 신역을 원칙으로 하여 개개인의 노동력을 직접 징발하는 것이었는데, 立役者가 질병이나 혼인·喪 등의 일을 당했을 때는 신분이나 직역에 따라 차이있게 역을 면해주거나 代役을 허용해주었다. 이를 악용하여 대역의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15세기에 이미 대역을 공인하게 되고 대역의 값이 정해지고 있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身役制의 원칙이 무너지고 布役制가 법제화되었다. 비록 모든 역에 적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보병에 적용된 軍籍收布法은 역제 전반의 동요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0261) 신역이 포납화하는 속에서 봉건국가는 역의 근본 의미를 잊어 갔고, 그리하여 身布를 일반재정에 충당하는 데 급급하였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탐관오리들은 수탈을 목적으로 온갖 부정과 비리를 자행하니 농민의 부담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역제의 동요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賦稅의 일종으로 바뀐 軍布의 부담은 그 부담액이 과중할 뿐 아니라 역의 종류에 따라 고되고 무거움과 헐하고 가벼움에 차이가 있어, 농민들이 과중한 양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였고, 이 때문에 그 운용이 매우 어려웠다.0262) 그리고 漕軍과 같이 신역이 아직 징발되는 곳에서도 苦役을 불가피하게 하는 제도적 불합리성에 더하여 탐관오리들의 핍박이 가중되어 그 입역조건은 17세기에 이르면 극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부역꾼들은 소극적으로는 대립을, 적극적으로는 流亡을 꾀하여 應役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조선 전기에도 유망현상이 보이기는 했지만, 17세기에 이르러 그 현상은 한층 두드러졌다. 稅穀을 운송하는 노동인 漕役의 경우, 인조 27년(1649) 사헌부 집의 金弘郁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고된 조역 때문에 流移逃散하는 조군이 10 중 8, 9이요, 가산을 겨우 지탱할 수 있는 조군이 10 중 2, 3뿐이었다고 한다.0263) 조군의 유망은 응역자의 부족현상을 가져왔다. 숙종 21년(1695) 참찬관 崔奎瑞의 보고에 의하면, 한 사람의 조군을 확보하고자 하여 조사에 나서도 열 집이 모두 빈 집이며, 끝까지 추쇄하고자 하니 온 고을이 소연하여 마치 난리를 겪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0264)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부역노동에서도 그 양상이 같지는 않더라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부역노동 가운데서도 부정기적이고 일시적인 노동력 징발은 민호의 田結數를 기준으로 하는 요역이었다. 요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공물의 생산과 운송에서의 노동이었다. 그런데 17세기에 大同法이 시행되면서 공물과 관련된 노동력 징발은 원칙적으로 배제되었다.0265) 아울러 지방 군현의 일부 요역도 布納化되어 갔다. 그러나 신역으로서의 노동력을 징발하는 요역은 아직도 여러 종류가 남아 있었다. 山陵·궁궐·관아·성곽·제언·도로 등의 토목공사에 부역노동이 강행되고 있었다. 17세기초의 山陵役에는 대체로 8천∼9천 명의 인부들이 징발되는 것이 관례가 되고 있었다.0266) 그런데 이와 같은 요역노동에서도 조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노동 부담과 열악한 작업조건 아래서 동원된 농민들은 가급적 이를 기피하고자 하였고, 대립·投託하던 농민들은 마침내 유망의 길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것은 응역자의 감소현상을 초래하였으니, 영조 11년(1735) 경기감사 趙明翼의 보고에 의하면, 楊州牧의 전체 民戶 9천여 호 가운데 응역할 수 있는 민호는 5백여 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0267)

 위정자들은 피역자가 날로 증가하고 그리하여 응역자의 감소현상이 심해지자 그들이 계획했던 공사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궁궐이나 각 관청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差備軍노동이나, 지방관청에서 주관한 축성·도로공사 등 요역뿐 아니라 기술노동을 행사하고 있던 관청수공업장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위정자들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우선 役弊를 일으키고 있던 탐관오리들의 탐학을 제거하고자 하였고, 응역자의 피역을 법규로써 엄히 규제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番次規定을 완화하여 그 부담을 경감해주는 듯하였다. 잡역에는 가급적 동원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일련의 대책은 부역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피역과 유망이 날로 심화되고 있던 상황 속에서 그것은 부역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고식적 의도에서 제안된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요역에서 응역인원이 부족하자 승도를 대신 입역시키고 있었는데 이것도 임기응변적 조처였을 뿐 본질적 대책은 아니었다.0268) 피역의 물결은 이제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역을 담당할 사람이 없는 속에서 부역제는 의미가 없었다. 부역제는 이제 원형대로 돌이킬 수가 없었다.

0256) 劉元東,<國家財政>(≪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 1974), 522쪽.
0257) 車文燮,<壬亂 以後의 良役과 均役法의 成立(上·下)>(≪史學硏究≫10·11, 1961), 120쪽.
0258)≪大典續錄≫권 2, 戶典 徭賦.
0259)≪經國大典≫권 2, 戶典 徭賦.
0260)≪中宗實錄≫권 31, 중종 12년 12월 무오.
0261)≪中宗實錄≫권 94, 중종 36년 12월 임신.
0262) 鄭演植,<17·18세기 良役均一化政策의 推移>(≪韓國史論≫13, 서울大, 1985), 123∼137쪽.
0263)≪備邊司謄錄≫13책, 인조 27년 3월 19일.
0264)≪備邊司謄錄≫49책, 숙종 21년 2월 24일.
0265) 韓榮國,<湖西에 實施된 大同法-大同法硏究의 一齣-(下)>(≪歷史學報≫14, 1961), 124쪽.

―――,<湖南에 實施된 大同法-湖西大同法과의 比較 및 添補-(完)>(≪歷史學報≫24, 1964), 112쪽.
0266)≪宣祖實錄≫권 130, 선조 33년 10월 정해.

≪仁祖實錄≫권 22, 인조 8년 4월 병인.
0267)≪各陵修改謄錄≫을묘년 윤4월 24일.
0268)≪備邊司謄錄≫27책, 현종 9년 11월 6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