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4권 조선 후기의 사회Ⅱ. 향촌사회의 변동2. 지방행정체제의 변화2) 면리제의 발전과 촌락운영질서의 변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1. 양반층의 증가와 분화
          • 1) 양반인구의 증가
          • 2) 면역인구의 증가
          • 3) 양반계층의 분화
        • 2. 양반서얼의 통청운동
          • 1) 서얼인구의 증가와 사회참여
            • (1) 서얼의 개념과 신분계층상의 지위
            • (2) 서얼인구의 양적 증가와 질적 변화
            • (3) 서얼의 정치·경제적 지위향상과 사회참여
          • 2) 서얼통청운동의 확대
            • (1) 18세기의 서얼통청운동
            • (2) 19세기의 서얼통청운동
        • 3. 중간신분층의 향상과 분화
          • 1) 중인층의 지위상승과 분화
            • (1) 중인의 특성과 성장배경
            • (2) 전문직 중인층의 지방관진출
            • (3) 부민층의 신분변화
          • 2) 중인의 통청운동
            • (1) 통청운동의 발기
            • (2) 통청운동의 전개
          • 3) 향리층의 지위상승과 분화
            • (1) 향리층의 분화
            • (2) 향리층의 신분지위 상승운동
        • 4. 서민층의 성장
          • 1) 서민의 경제적 성장
            • (1) 농민의 경제적 성장
            • (2) 공장의 경제적 성장
            • (3) 상인의 경제적 성장
          • 2) 서민의 신분상승운동
          • 3) 서민의 문예활동
            • (1) 문학에서의 활동
            • (2) 미술에서의 활동
        • 5. 노비신분층의 동향과 변화
          • 1) 노비 존재양태의 변화
          • 2) 노비정책의 전환
            • (1) 선상·입역의 폐지와 고립제의 실시
            • (2) 신공의 감액
            • (3) 추쇄정책의 전환
            • (4) 「노양처소생종모종량법」의 실시
          • 3) 노비의 신분상승운동
          • 4) 내시노비의 혁파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1. 친족과 촌락구조의 변화
          • 1) 친족·문중조직의 변화
            • (1) 「문중」의식의 형성
            • (2) 문중활동의 전개양상
          • 2) 동족마을의 발달과 촌락조직의 변화
            • (1) 동족마을의 발달
            • (2) 촌락조직의 성격변화
        • 2. 지방행정체제의 변화
          • 1) 중앙통제적 지방제도의 강화
            • (1) 감영체제의 발전
            • (2) 수령권의 강화와 사족지배질서의 약화
          • 2) 면리제의 발전과 촌락운영질서의 변화
            • (1) 면리제의 발전
            • (2) 촌락운영질서의 변화
        • 3. 호구정책의 강화
          • 1) 누적·탈역호구의 증가
          • 2) 오가작통법의 시행
          • 3) 호패법의 강화
        • 4. 향촌자치체계의 변화
          • 1) 조선 중기 사족중심 향촌자치체계의 구조와 붕괴
            • (1) 조선 중기 사족중심 향촌자치체계의 구조
            • (2) 조선 후기 사족중심 향촌자치체계의 붕괴
          • 2) 관 주도 향촌지배질서의 성격
            • (1) 관 주도 향촌통제책의 강화
            • (2) 사족에 대한 견제와 향전금지
            • (3) 19세기 관 주도 향촌지배질서와 「이향」의 발호
        • 5. 계의 성행과 발전
          • 1) 조선 초·중기의 계
          • 2) 조선 후기 계의 성행
          • 3) 조선 후기 계의 제도적 발전
          • 4)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계의 변모
      • Ⅲ. 민속과 의식주
        • 1. 촌락제의와 놀이
          • 1) 촌락제의
            • (1) 제사이름과 제신
            • (2) 제사철과 제사비용
            • (3) 제장과 단당
            • (4) 제의 목적
          • 2) 연희와 놀이
            • (1) 가면극
            • (2) 인형극
            • (3) 남사당놀이
            • (4) 전승놀이
          • 3) 세시풍속
        • 2.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과 의생활
            • (2) 편복류와 양식
            • (3) 의료의 수급체제와 직조
          • 2) 식생활
            • (1) 조선 후기 식생활의 환경
            • (2) 조선 후기 식생활의 양상
            • (3) 숭유주의가 식생활에 미친 영향
            • (4) 조선조 궁중의 식생활
            • (5) 식품의 종류와 조리법의 발달
            • (6) 부엌세간과 식기
          • 3) 주생활
            • (1) 사회변동과 주거계층의 변화
            • (2) 서민주거의 발달과 지역적 특성화
            • (3) 풍수적용의 민간확산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촌락운영질서의 변화

 조선 전기에는 대대적인 군현제 개편과 함께 수령권 강화 및 면리제 시행 등으로 중앙집권화가 진척되었다고 하지만, 철저한 중앙통제가 어려운 향촌사회 내의 여러 가지 조건이 아직은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면리제라고 하는 새로운 촌락운영질서를 시행해 나갈 수 있을 만큼 자연촌의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군현제의 정비도 아직 미비한 부분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많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향리층이 토착세력으로서 그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또한 이에 대신해서 새로운 향촌지배 질서를 구축해 나가고 있던 재지품관층, 즉 재지사족층의 중앙집권화 시책에 대한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향소의 치폐의 반복이 상징해 주듯이 정부는 중앙집권화를 지향하면서도 당시의 향촌사회의 조건상, 그리고 유교적 지배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고 그들의 계층적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이상, 재지사족층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발호를 억제하면서도 그들을 매개로 향촌질서와 집권기반을 안정시켜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 전기 면리제 운영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국가는 권농관이나 이정 등 면리임을 가급적 재지사족층에서 선임하려 했다. ‘閑良品官廉幹者를 택해서 권농관으로 삼는’546)다거나 ‘里正長을 有職有識者로 택차’547)한다는 것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그 이외에 방별감 등의 특수직임은 호별로 돌아가면서 맡는 경우도 있었고 里正長의 직임을 사족이 기피하는 예도 있었지만,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조선 전기에는 면리제 운영에 있어서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재지사족들은 이와는 별도로 새로운 향촌운영질서로서 향약을 통한 지배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었다.548) 그들은 향약실시의 하부단위라 할 수 있는 자연촌락을 여러 개 묶은 일정영역에 대한 동약·동계의 운영을 통해 촌락민의 재생산구조를 장악하고 여기에 상하 신분질서를 문란케 하는 자를 벌칙규정에 의해 다스림으로써 그들의 촌락지배를 관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와 생산력이 발전하고 상품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향촌사회내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났다. 임란 이후 벼농사의 발달, 18세기 이후 일반화되어 가는 稻麥二毛作 등으로 촌락단위로 강화되는 두레 등의 공동노동조직549)은 자연촌의 자율성을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임란을 계기로 격화되고 있던 농민층의 국가와 재지사족의 통제로부터의 이탈현상은 상품경제의 발전, 이를 바탕으로 한 일반 서민층의 부의 축적, 잇따른 정국변화 속에서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의 약화 등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에 대응해서 조정에서는 농민들의 안집과 그들로부터의 안정된 부세확보를 위한 새로운 향촌통제정책을 실시해 나감과 동시에, 부세정책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책을 세우기에 부심하였다. 17세기 이후 점차 전국적으로 널리 실시되는 대동법, 양역의 안정된 확보를 위한 숙종대 후반의 이정법, 전세에서의 비총법, 환곡의 점차적인 부세화, 일부 부세의 금납화, 지방재정의 충당을 위한 각종 잡역의 출현과 民庫 등 새로운 수탈방식의 등장 등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부세정책의 특징으로서 주목되는 점은 부세수취의 고리대적 운영방식의 확산과 함께 부세의 안정된 확보를 위한 전제로서 부세납부가 각 리별로 공동연대책임의 경향이 급격히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양역변통절목>에서 제시된 이정법이었다.

 이정법은 閑丁收括의 기능을 촌락에 맡겨서 농민층 사이의 자체적인 규제에 의해 안정된 양역부과를 강제하는 조치로써 나온 것이었다. 이 제도는 그 이후한동안은 제대로 실시되지 않아 영조대에 다시 신칙되기도 하였지만 후대로 갈수록 각 군현의 자율적인 운영에 의해 점차 확산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550) 그런데 이러한 리별 연대책임제는 양역뿐만 아니라 다른 부세의 운영에도 점차 확산되어 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정에서의 面摠·里摠, 환곡에서의 里還, 각종 잡역에서의 民庫적인 운영이나 契房·除役村의 존재 등이 그것이었다.551)

 이러한 리별 연대책임제는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진행되었던 정부의 향촌통제책과 맞물려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히 그 매개체로서 면리제의 기능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면리임의 기능도 강화될 뿐만 아니라 국가나 수령으로부터 여러 가지 침책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졌다.

 원래 면임은 군현내 官司體系의 吏卒가는 구별되며 재지세력에 의해 임용되는 임장으로 분류되는 직임이었다. 이들 면임에 대해서는 조직상의 수반인 향소가 인사권을 행사했으나 후대로 내려올수록 수령권에 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아울러 면임과 동임은 「各社之官·各洞之長」 내지 「官家之輔翼·官家의 手足耳目」이라는 표현처럼 수령을 대신하는 존재이자 통치를 보좌하는 직임으로 규정되었다. 특히 향소의 직임이 官任化되어 수령의 침책을 받는 위치로 전락되고 면리제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부세수취의 행정사무에 관한 일체의 업무가 면리기구를 중심으로 수행됨으로써 향소의 면리임에 대한 장악기능은 점차 취약해졌다. 반면 각종 행정업무의 주된 실무자가 군현내 6방관속이라는 점에서 면리임의 업무는 상급기관인 향소보다 수령권과 직결된 이서들과의 결합이 보다 두드러졌다.552)

 수령이나 이서들의 감독이나 침책을 받는 위치로 전락한 면리임의 직임을재지사족층이 기피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국가는 이에 대한 대책에 부심하였다. 숙종 원년의<오가통사목>에서는 면리임을 모두 재지사족층에서 선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회피하는 자에 대한 처벌조항까지 마련하고 수령의 침책도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금 郡邑 가운데 鄕品은 진실로 선택하기가 어렵고 이른바 里正도 매양 庶孼과 賤類로서 차정하기 때문에 수령이 만일 골라서 정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피하기를 꾀하니, 앞으로 里正과 面尹은 반드시 모두 한 고을에서 명망이 있는 자로서 한다. 비록 일찍이 문과의 蔭職을 지낸 자라 하더라도 차임할 수 있으며, 만약 피하기를 꾀하는 자가 있으면 徒配의 律로 논한다(≪備邊司謄錄≫31책, 숙종 원년 9월 26일).

 그러나 면리임의 수세행정에서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기면 笞刑을 가하거나 욕을 보이는 등 수령들의 침책이 여전하여 사족들의 기피현상이 계속 나타났다. 그래서 숙종 37년<양역변통절목>에서는 존위를 上·副尊位로 구분하여 里 단위의 閑丁望報와 관련된 실무는 부존위 이하가 담당하고 사족출신의 상존위는 단지 그것을 검찰·신칙케 함으로써 사족출신의 이임에 대한 수령의 침책을 보다 완화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553)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부존위 이하 유사 등은 中庶나 평민들로 차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면리임에 중서나 천류들이 선임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에서는 그것을 인정하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절목에서는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면임차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숙종 초만 해도 都尹·副尹을 모두 양반층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 중앙정부의 입장이었지만, 영조대에 오면 달라지고 있다. 울산을 예로 들면 상위 면임인 풍헌은 그대로 「幼學」이라 해서 양반층이 차지하고 있으나, 부면임인 약정은 「業武」라 해서 일반 서민층에서 상승해 오는 새로운 계층이나 중간계층이 담당하였다.554)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에 나오는 지방관아 문서나 민정서에서도 일반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정조대의≪목민대방≫에는 풍헌은 ‘鄕品中識文字有風力者’로 택정하고 副憲(약정)은 ‘閑散中庶中勤幹識字解事者’로, 里監은 ‘里內鄕品中庶中識文字有風力者’로, 이정은 ‘庶民中勤幹解事者’로 임명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처럼 조선 후기에 와서는 중앙정부가 향촌통제책의 강화를 통해 재지사족의 지배력을 통제하면서도 향촌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재지사족층을 제도적인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재지사족층은 이러한 통제의 틀을 벗어나려 하였다. 대신에 종래의 동약·동계를 매개로 자기 주변의 여러 촌락을 아우르는 사적 지배질서를 유지해 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농민의 저항과 관권의 침투로 그 성격이 변질되어 잡역 등 부세충당을 위한 기능에 흡수되어 버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555)

 이러한 상황을 틈타 경제력을 바탕으로 밑에서부터 상승해 오는 새로운 서민계층들이 이 면리제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서민층의 입장에서는 면리임의 직임을 수행함으로써 여러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역이 면제되는 등 여러 가지 특전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직임의 수행과정에서 다른 농민으로부터 중간수탈을 통해 더욱더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신분적 지위를 상승시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556)

 이러한 현상은 향촌사회에서 기존의 사족지배체제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나타난 것이지만, 그러한 붕괴를 더욱 촉진시키는 기능도 하게 되었다. 물론 면리기구 운영에 새롭게 참여해 오는 계층은 19세기 이후 구조화되는 「수령-이·향 수탈구조」에 편입되어 농민수탈을 가중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면리기구 참여는 재지사족층의 지배권약화 경향과는 반대로 이미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두레 등 동리별 공동노동조직의 강화를 바탕으로 해서 촌락에서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오던 농민층의 지위를 보다 높여 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동약을 매개로 사족의 지배를 지속시켜 나가려는 사족층의 의도에 반발해서 농민을 비롯한 다른 계층이 分洞을 요구한 사례는 그 현상을 잘 보여준다.557) 또한 이정법이 일반화되어가면서, 양반층은 그 부담에서 면제되었으므로 가장 봉건적인 특성이 강한 軍役稅의 동리별 부담에 재지사족층도 부분적으로나마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나, 서북지방에서의 「軍布契」와 같이 어떤 신분인가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군역세 충당을 위한 계 운영에 출자하는 경우도558) 그와 같은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金俊亨>

546)≪太祖實錄≫권 8, 태조 4년 7월 신유.
547)≪世宗實錄≫권 2, 세종 원년 9월 정해.
548)朴鎭愚,<朝鮮初期 面里制와 村落支配의 强化>(≪韓國史論≫20, 서울大 國史學科, 1986), 119∼120쪽.
549)李泰鎭,<17·8세기 香徒組織의 分化와 두레의 발생>(≪震檀學報≫67, 1989), 25∼27쪽.
550)金俊亨, 앞의 글(1984), 95쪽.
551)김선경,<조선후기의 조세수취와 面·里운영>(≪廷世大 碩士學位論文, 1984), 53쪽.
552)吳永敎, 앞의 책, 183쪽.
553)≪備邊司謄錄≫63책, 숙종 37년 12월 26일.
554)金俊亨, 앞의 글(1982), 69쪽.
555)金仁杰, 앞의 글(1985), 787∼788쪽.
556)金俊亨, 앞의 글(1982), 71쪽.
557)鄭震英,<朝鮮後期 鄕約의 一考索-夫仁洞 洞約을 중심으로>(≪民族文化論叢≫23, 1982) 참조.
558)金俊亨, 앞의 글(1984), 9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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