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2) 항쟁의 과정(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가. 지도부의 결집과 봉기 준비

 524)홍경래 난은 10년여의 오랜 기간 동안 준비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봉기의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洪景來였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같이 그는 家産을 돌보지 않고 집을 떠난 후 10년 만인 봉기 직전에야 돌아와 봉기지역으로 가족을 데리고 갔다. 이 10년이 곧 봉기가 구체적으로 준비되는 기간이었다. 홍경래와 禹君則이 처음 만나 친교를 맺은 것은 정조 24년(1800)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봉기 10년 전에는 이미 兵亂을 함께 논의하였다. 봉기군으로 정주목사가 되었던 최이륜도 홍경래를 안 것이 7, 8년 전이었다고 진술하였다. 이와 같이 그 기간에 홍경래는 주도자들을 규합하는 한편, 중간 지휘층도 평안도 및 황해도를 중심으로 널리 포섭하였다. 진압군 左硝官 方禹鼎은 정주성 농성 중에 성 밖에 나와 싸운 신체 장건한 무리에 대해서 홍경래를 10여 년 동안 따른 善騎輩라고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주위에 널리 알려졌 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어느 시점에선가 홍경래·우군칙 등의 주도자와 嘉山의 부호로서 가장 중요한 자금원이 되는 李禧著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이희저를 끌어들인 인물은 우군칙이었다. 이희저는 봉기 수년 전에 多福洞에 기와집을 짓고 우군칙과 서로 어울리면서 준비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홍경래와 우군칙이 몰래 광산을 채굴하고 잠상을 했다는 진압군측 기록은 그들이 이희저의 자금을 기반으로 봉기를 준비하던 때의 행적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봉기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때는 순조 10년(1810) 11월 무렵이었다. 우군칙의 공초에 의하면, 이 때에 홍경래를 다시 만나 그의 봉기 준비와 鄭眞人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화를 피하고자 이희저와 함께 영변 묘향산 아래 百寧村에 가서 피할 곳을 찾았다고 하였다. 이는 말을 바꾸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 영변에 가서 봉기군의 새로운 기지를 물색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듬해인 순조 11년 정월에 곽산의 진사 金昌始가 나서면서 청북지역의 유력가와 부민들에 대한 우군칙과 김창시의 포섭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우군칙은 4월에 이르러 다복동에 30칸의 瓦家를 마련하였고 이희저의 사촌 李明云도 새로 집을 구입하여 중수하였다. 이리하여 가산 大定江邊의 요지인 다복동의 군사기지는 한층 강화되어 봉기의 본부가 되었다.

 홍경래는 그 해 7월 이후로 평소 포섭해 둔 각지의 장사들과 함께 다복동 우군칙의 집에 머물렀다. 8월에 황해도 船商을 칭하는 무리가 津頭 상인 김혜철의 집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주야로 상종하였다는 것은 각처의 장사들이 모여들고 있었음을 뜻한다. 한편, 부원수가 되는 金士用이 봉기군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었다. 김사용이 언제 봉기 세력에 가담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순조 11년(1811) 11월에 영변 김우학의 집에 가서 그의 참여를 끌어내었던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다복동 우군칙의 집에서 봉기의 군사력을 다듬는 작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홍경래가 모은 여러 인물들은 다복동 밖에서도 청천강 이북의 넓은 지역을 무대로 회합하면서 봉기에 대비하였던 듯하다. 朴三玉은 洪二八·金昌始 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薪島 모의에 참여하였다고 하였다. 그 신도가 봉기군의 비밀 기지 중의 하나였다면, 그것은 용천 해상에 있던 섬이었을 것이다. 또 대동찰방 朴鳴和가 수집한 첩보에는 9월부터 홍경래·崔天杓 등이 선천의 劒山城에서 회합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김창시가 이미 9월에 곽산의 金大薰(金大勛)에게 가서 봉기의 준비 상황을 선전하고 12월에 기병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못박은 일이 있었음을 볼 때,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12월에 기병하리라는 계획이 확립되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는 남진군 선봉장으로 활동한 洪總角도 확실한 주도자로 활동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도 9월에 집을 떠나 한 번도 돌아가지 않으면서, 다복동의 우군칙 집에서 각 읍 용사들을 모아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10월에는 주요 참여자들이 모두 다복동에 모이면서 준비가 더욱 활발하여졌다. 11월 이후에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진두 대정강의 추도에서 그곳에 거주하던 康守興 父子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鑄錢 작업을 벌여 자금을 마련하였다. 이희저는 虎皮·鉛鐵 등의 軍需를 사들이고, 선천의 劉文濟·崔鳳寬이나 정주의 鄭振喬, 철산의 鄭復一도 무기와 軍旗 등을 다복동에 수송하였다. 김창시는 임신년에 기병이 있을 것이라는 妖言을 유포하여 민심을 교란하기도 하였다.

 참여할 군사력을 준비하는 일도 활발히 행하여졌다. 勇力이 있는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자원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그것은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거사가 실행 단계에 들어갈 즈음인 10월에는 우군칙과 金惠喆이 박천 진두의 상인 姜得璜 등을 거느리고, 우군칙이 서울 물주의 자금을 받아 雲山 燭臺峰에 금광을 연다는 소문을 내어 광부들을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농민 군사력을 다복동으로 불러들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다복동에서 봉기의 주도자 79명이 서로 서명하여 약속을 맺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정부측에 압수되어 ‘賊黨都錄’이라고 일컬어진 그 문서에 오른 사람들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부원수 김사용을 從事官으로 수행한 金大勛과 같이 봉기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의 이름이 들어 있던 것으로 보아 ‘적당도록’은 봉기의 일급 주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서였음이 틀림없다. 동시에 이 ‘도록’에 이름은 올랐으나 참여한 혐의가 없거나 정도가 미미하여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는 사람들도 12명이 있다.525) 도록에 오른 79인 중에서 이 12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봉기의 전개과정에 깊이 참여하였던 사람들이었다.≪陣中日記≫의 첫머리에 봉기 주체와 ‘渠帥’, ‘善騎’ 그리고 내응자들의 이름을 적고 있는데,526) 그 사람들의 수가 모두 59명인 것으로 보아 준비단계 및 봉기 당시부터 군사지휘자와 주요 내응자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60명 내외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가 주모자 몇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계기만 주어진다면 농민들의 항쟁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홍경래 난에 몇 달 앞서 황해도 곡산에서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치열하게 저항했던 것이 바로 그 예이다.527) 실제로 홍경래의 거사는 당시 그 지역 기층민의 저항 분위기가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봉기는 12월 18에 있었지만 이미 10월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며, 적어도 11월에 이르러서는 시장에 출입하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병란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528) 이러한 사실은 그 거사가 주도자 몇몇의 내밀한 음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정세와 민의 광범위한 공감 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524)홍경래 난에 관한 주요한 연구로는 다음의 논저들이 있다. 이 중에서 전개과정의 전반부에 대해서는 오수창의 글을 주로 참고하였다.

小田省吾,≪辛未洪景來亂の硏究≫(小田先生頌壽紀念會, 1934).

홍희유,<1811∼1812년 평안도농민전쟁과 그 성격>(≪봉건지배계급을 반대한 농민들의 투쟁(이조편)≫과학원 역사연구소, 1963).

鄭奭鍾,<洪景來亂의 性格>(≪韓國史硏究≫7, 1972;≪傳統時代의 民衆運動≫하, 풀빛, 1981).

―――,<洪景來亂과 內應勢力>(≪嶠南史學≫1, 1985).

河原林靜美,<1811年平安道における農民戰爭>(≪寧樂史苑≫19, 1973;≪封建社會解體期의 社會經濟構造≫, 청아, 1982).

鄭昌烈,<조선후기 농민봉기의 정치의식>(≪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大東文化硏究叢書 I, 1984).

鶴園裕,<平安道農民戰爭における參加層>(≪朝鮮史叢≫2, 1979;≪傳統時代의 民衆運動≫하, 풀빛, 1981).

―――,<平安道農民戰爭における檄文>(≪朝鮮史硏究會論文集≫21, 1984).

高錫珪,<18세기말 19세기초 평안도지역 鄕權의 추이>(≪韓國文化≫11, 1990).

吳洙彰,<‘홍경래 난’의 주도세력과 농민>(≪1894년 농민전쟁연구 2≫, 역사비평사, 1992).

―――,<洪景來亂 봉기군의 최고지휘부>(≪國史館論叢≫46, 1993).
525)≪關西平亂錄≫(亞細亞文化社, 1979) 3, 56∼66쪽의 劉碩·金龜郁供招.

≪純祖實錄≫권 16, 순조 12년 9월 기축.
526)≪陣中日記≫(≪韓國民衆運動史資料大系≫,<1811∼1812年의 農民戰爭篇 3>, 驪江出版社) 권 1, 신미 12월 18일, 131∼134쪽.
527)한상권, 앞의 글, 192∼202쪽.
528)≪關西平亂錄≫4, 임신 2월 11일, 218쪽·≪關西平亂錄≫2, 임신 정월 29일, 524쪽 및≪關西平亂錄≫3, 임신 정월 2일 朴光有供招, 2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