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1. 강화도조약과 개항3) 개항 이후 조선정부의 대내외정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1) 한·중·일의 정세
            • (1) 화이사상과 중국의 조공제도
            • (2) 조선왕조와 청조:청한 종속관계
            • (3) 조선왕조와 일본:‘교린’관계
            • (4) 화이질서하의 한국과 일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1) 서방제국의 동방진출
            • (2)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방진출
            • (3) 일항 무역:전통적 동서무역 제도
            •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 3) 동서 신국제관계의 성립:불평등조약 체제
            • (1) 중영 아편무역 분쟁
            • (2) 중영 개전과 남경조약의 체결
            • (3) 애로우전쟁과 천진조약 및 북경협정
          • 4) 일본의 개항과 미국
        • 2.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
          • 1) 러시아의 통상요구
          • 2) 프랑스의 통상요구
          • 3) 영국의 통상요구
          • 4) 미국의 통상요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1. 개화사상의 형성
          • 1) 개화사상의 형성과 배경
          • 2) 개화사상의 형성
          • 3) 1866년 개화사상 비조들의 활동
          • 4) 최초의 개화사상
        • 2. 동학의 창도와 동학사상
          • 1) 동학 창도의 배경
          • 2) 동학의 창도 과정
          • 3) 동학사상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1. 흥선대원군의 집권
        • 2. 대원군의 내정 개혁
          • 1) 대원군의 인재등용
          • 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 4) 민란 대책
        • 3. 대원군의 대외정책
          • 1) 러시아의 남하 방어책
          • 2) 천주교 탄압:병인사옥
          • 3) 병인양요와 대응책
          • 4) 신미양요와 대응책
          • 5) 대일 강경책
        • 4. 대원군 정치의 성격과 의의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1. 강화도조약과 개항
          • 1) 조약체결 전의 국내외정세
            • (1) 메이지유신과 일본의 조선정책
            • (2) 고종친정과 대외정책
          • 2) 강화도조약의 체결
            • (1) 운요호사건과 조선정부의 대응
            • (2) 조일수호조규의 내용과 성격
          • 3) 개항 이후 조선정부의 대내외정책
            • (1) 수신사파견과 개화정책의 모색
            •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 2. 개항 초기의 조청관계
          • 1)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서양 각국과의 수교권고
          • 2) 제2차 수신사의 파견과 주일청국사절의 연미론
        • 3. 조미조약의 체결
          • 1) 조·청·미 3국의 조미조약 체결 교섭과 속방조관
          • 2) 조미조약의 성립과 속방조회
        • 4. 유럽 각국과의 조약체결
          • 1) 한·영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2) 한·독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3) 한·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4) 한·불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5) 기타 유럽국가들과의 조약체결
        • 5. 개항의 역사적 의의
          • 1) 강화도조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 2) 불평등조약체제의 수립과 그 영향
          • 3) 초기 개화정책의 추진배경과 그 성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김기수는 수신사일행이 귀국할 때 일본정부로부터 예조판서 앞으로 보내는 공한을 받아 갖고 왔다. 그 내용은 修好條規 第11款에 의거하여 通商章程의 협상을 위해 外務省의 미야모토 등을 理事官으로 하여 서울에 파견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행이 귀국한 후 며칠 안된 6월 10일 미야모토 이사관은 서울에 나타났다. 이에 조선정부에서는 刑曹判書 趙寅熙를 講修官으로 임명하여 일본측과 접촉케 하였다. 12일에는 국왕이 미야모토를 접견하고, 賜饌도 베풀었다.

 6월 16일(8월 5일)부터 미야모토가 숙소로 정하고 있는 京畿中營(淸水館)에서 양측간의 회담이 개시되었다. 일본측은 이번에도 미리 준비해 온 修好條規附錄案과 通商章程案을 제출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안을 놓고 逐條審議하게 되었다. 일본측에서 제출한 수호조규부록은 모두 13관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중 논의의 초점이 되었던 것은 제1, 제2, 제5조관이었다. 제1관은 “일본국 공사의 조선국 수도상주”, 제2관은 “일본 외교관 및 그 동반자의 조선내지 여행의 자유”, 제5관은 “개항장의 유보지역 설치”였다. 조선측에서는 이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러므로 회담은 난항을 거듭하였다. 제1관은 앞서 강화도에서 체결한 수호조규 제2관에 제시된 “該當 使臣의 駐留期間의 長短은(원문은 該臣駐留久暫이라고 되어 있다) 그때의 사정에 맡긴다”는 내용과 관련을 갖고 있었다. 조선측은 이 조관을 잠시 동안의 체류를 말한 것이고, 공사관을 설치하여 ‘영주’함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였다. 제1관을 반대하게 되자 제2관, 즉 공사의 내지여행과 가족동반과 같은 문제도 도저히 용납될 여지가 없었다. 제5관의 개항장의 유보지역에 대해서는 일본측이 자기들 里程으로 10리, 즉 조선의 100리를 요구한 데에 대해 조선측은 이를 반대하여 부산항에 국한하되 조선里程의 10리를 주장하였다.

 회담은 6월 16일부터 20일 동안에 13회나 열렸다. 그리하여 간신히 타결을 보게 되어 7월 6일(8월 24일) 조인을 하게 되었다. 제1관, 즉 일본국공사의 조선국 수도 상주관 설치 문제는 완전히 삭제되고, 제2관은 약간 수정되어 일본관리(관)에 한해서 조선내지의 여행을 인정하였으며, 제5관의 유보지역은 조선이정 10리로 축소하였다. 그러나 그 밖의 조관은 일본측이 제시한 원안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채택하였다.

 이때 조인된 수호조규부록은 수호조규를 보충하는 성질의 것이어서 일본으로 하여금 정치적·경제적으로 조선에 침투할 수 있는 기반을 더욱 튼튼히 마련해 주게 되었다. 특히, 제7관의 “일본국 인민은 본국에서 현행되는 貨幣들로 조선국 인민이 보유하고 있는 물자와 교환할 수 있으며, 조선국 인민은 그 교환된 일본의 화폐들로써 일본국 토산의 貨物들을 買得할 수 있으며, 이로써 조선국이 지정한 항구들에서 인민들은 상호 통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일본화폐의 조선내 유통을 의미한 것이었다.

 강수관 조인희와 이사관 미야모토 사이에는 이상의 수호조규부록 외에 통상장정이 또한 체결되었다. 6월 16일 제1차 회담이 열렸을 때 미야모토는 조인희에게 수호조규부록에 대한 설명을 끝낸 직후, 통상장정안 10칙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축조 설명을 하면서 이 안은 종전의 관례를 성문화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청취한 조인희는 정부에 請訓하겠다고 답할 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8일 제2차 회담이 열렸을 때 조인희는 그 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각서를 발표함으로써 극히 간단하게 처리하였던 것이다.

 ‘무역규칙’으로 이름이 붙은 통상장정은 일본측이 내놓은 원안에 1개조가 더 추가되어 11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합법적으로 승인한 조약이었다. 11칙 중에서 특히 제6칙과 제7칙은 조선의 경제에 크나 큰 타격을 주었던 조목이었다. 제6칙은 “사후 조선국 항구들에 주류하는 일본인은 粮米 및 잡곡을 수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제7칙은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港稅를 납부치 않음”으로 되어 있다.

 제6칙으로 조선의 미곡이 대량 일본으로 유출하게 되었고, 제7칙으로 일본선박이 항세, 즉 관세를 납부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수호조규부록과 통상장정이 조인된 7월 6일에 강수관 조인희는 일본국 이사관 미야모토의 조회에 대한 회답 공한 속에서 “화물출입에도 특별히 수년간은 면세를 허용한다”고 함으로써, 일본은 선박의 항세뿐만 아니라, 상품의 수출입세까지 면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측이 통상조약 관례에 대한 조선측의 무지를 이용하여 관세조항을 제외하고, 협상을 임했던 사실은 미야모토가 단독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미야모토가 본국을 떠나기 앞서 太政大臣으로부터 받은 훈령 중에 조선측이 관세징수를 주장하게 되면 수출입세를 從價 5分으로 정하고, 수세에 관한 1조항을 통상장정 속에 첨가토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측에서 강경히 관세 징수를 주장할 때에 제시하려는 안이었고, 일본정부는 처음부터 무관세를 관철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강화도에서 수호조약이 체결된 뒤 일본정부의 태정대신 산죠 사네토미는 외무성에게 지시하여 무역규칙의 초안을 조속히 작성토록 하였다. 그런데 수호조약 체결을 직접 담당했던 쿠로타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이 사실을 알고 자기들의 견문과 지식을 토대로 하여, ‘日鮮修好條規의 이행운영에 관한 上申의 件’이란 의견서 속에서 수호조규 체결 때와 마찬가지로 협상장소를 강화도로 정하고 군함을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또 앞으로의 조일무역에 있어서는 관세를 징수하지 않는 것이 무역촉진을 위한 상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의견은 받아들여져 외무성에서는 무관세 강요의 원칙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10개조로 된 무역규칙안이 작성되게 되었고, 그것을 미야모토에게 부과하였다. 미야모토가 서울에 이르러 조선측과 회담할 때에 조선측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관세조항이 빠진 무역규칙이 성립된 것이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측의 무지와 일본측의 기만 외교에 농락되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관세무역규칙이 조·일간에 체결되었다. 무관세조항은 1883년 7월에 수정될 때까지 7년간이나 실시되었는데 수호조규 속에 들어 있는 치외법권과 수호조규부록 속에 들어 있는 일본화폐유통권과 아울러 개항 직후 일본 세력의 조선 침투를 방조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263)

【부록 1】朝日修好條規

大日本國, 與大朝鮮國素敦友誼, 歷有年所, 今因視兩國情意未洽, 欲重修舊好, 以固親睦, 是以日本國政府簡特命全權辨理大臣陸軍中將兼參議開拓長官黑田淸隆·特命副全權辨理大臣議官井上馨, 詣朝鮮國江華府, 朝鮮國政府簡判中樞府事申櫶·副摠管尹滋承, 各遵所奉諭旨, 議立條款, 開列于左.

 

第1款 朝鮮國自主之邦, 保有與日本國平等之權, 嗣後兩國欲表和親之實, 須以彼此同等之禮相待, 不可毫有侵越猜嫌, 宜先將從前爲交情阻塞之患諸例規, 一切革除, 務開擴寬裕弘通之法, 以期永遠相安.

第2款 日本國政府, 自今十五個月後, 隨時派使臣, 到朝鮮國京城, 得親接禮曹判書, 商議交際事務, 該使臣駐留久暫, 共任時宜, 朝鮮國政府亦隨時派使臣, 到日本國東京, 得親接外務卿, 商議交際事務, 該使臣駐留久暫, 亦任時宜.

第3款 嗣後兩國往來公文, 日本用其國文, 自今十年間, 別具譯漢文日本, 朝鮮用眞文.

第4款 朝鮮國釜山草梁項, 立有日本公館, 久已爲兩國人民通商之區, 今應革除從前慣例及歲遣船等事, 憑準新立條款, 措辨貿易事務, 且朝鮮國政府, 須別開第五款所載之二口, 准聽日本國人民往來通商, 就該地賃借地基, 造營家屋, 或僑寓所在人民屋宅, 各隨其便.

第5款 京畿(圻)·忠淸·全羅·慶尙·咸鏡五道中沿海, 擇便通商之港口二處, 指定地名, 開口之期, 日本曆自明治九年[1876]二月, 朝鮮曆自丙子年二月起算, 共爲二十個月.

第6款 嗣後日本國船隻, 在朝鮮國沿海, 或遭大風, 或薪粮窮(究)竭, 不能達指定港口, 卽得入隨處沿岸支港避嶮, 補缺修繕船具, 買求柴炭等, 其在地方供給費用, 必由船主賠償, 凡是等事, 地方官民須特別加意憐恤, 救援無不至, 補給勿敢吝惜, 倘兩國船隻, 在洋破壞, 舟人漂至, 隨處(所)地方人民, 卽時救恤保全, 禀地方官, 該官護還其本國, 或交付其就近駐留本國官員.

第7款 朝鮮國沿海島嶼巖礁, 從前無經審檢(撿), 極爲危嶮, 准聽日本國航海者, 隨時測量海岸, 審其位置深淺, 編製圖志, 俾兩國船客以得避危就安.

第8款 嗣後日本政府, 於朝鮮國指定各口, 隨時設置管理日本國商民之官, 遇有兩國交涉案件, 會商所在地方長官辨理.

第9款 兩國旣經通好, 彼此人民各自任意貿易, 兩國官吏毫無干預, 又不得限制禁阻, 倘有兩國常民欺罔衒賣, 貸借不償等事, 兩國官吏嚴拏該逋商民, 令追辨債欠(缺), 但兩國政府不能代償.

第10款 日本國人民, 在朝鮮國指定各口, 如其犯罪交涉朝鮮國人民, 皆歸日本官審斷, 如朝鮮國人民犯罪, 交涉日本國人民, 均歸朝鮮官査辨, 各據其國律訊斷, 毫無回護袒庇, 務昭公平允當.

第11款 兩國旣經通好, 須另設立通商章程, 以便兩國常民, 且倂現下議立各條款中, 更應補添細目, 以便遵照條件, 自今不出六個月, 兩國另派委員, 會朝鮮國京城或江華府, 商議定立.

第12款 右十一款議定條約, 以此日爲兩國信守遵行之始, 兩國政府不得復變革之, 永遠信遵, 以敦和好矣, 爲此作約書二本, 兩國委任大臣各鈴印, 瓦相交付, 以昭憑信.

【부록 2】朝日修好條規附錄(譯文)264)

日本國政府는 前에 特命全權辨理大臣 陸軍中將 兼 參議開拓長官 黑田淸隆, 特命副全權辨理大臣議官 井上馨으로 하여금 朝鮮國 江華府에 派遣하고 朝鮮國政府는 大官判中樞府事 申 櫶, 副官都摠府摠管 尹滋承에게 委任하여 日本曆 明治 9年 2月 26日 朝鮮曆 丙子年 2月 初2日 雙方이 서로 調印하고 修好條規 第11款의 趣旨에 따라 日本國政府는 理事官 外務大丞 宮本小一에게 委任하여 朝鮮國 京城에 派遣하고 朝鮮國 政府는 講修官議政府堂上 趙寅熙에게 委任하여 相互 會同하여 議定한 條款을 左에 開列한다.

 

第1款 此後 各港口에 駐留하는 日本國人民, 管理官은 朝鮮國沿海地方에서 日本國諸船이 遭難하여 緊急을 要할 때는 地方官에게 告하고 該地에 갈 수 있는 道路를 經過할 수 있다.

第2款 此後 使臣 及 管理官이 發하는 文移書信을 郵送하게 되면 費用은 事後辨償하고 또는 朝鮮國人民을 雇用하여 專差할 수도 있으니 各從其便할 것이다.

第3款 議定한 朝鮮國 通商各港에 있어서 日本國 人民이 地基를 租賃하여 住居함은 各其 地主와 相議하여 그 價格을 定한다. 朝鮮國政府에 屬하는 地는 朝鮮國人民으로부터 官에 納租함과 同一한 租額을 納付하고 居住한다. 釜山草梁項公使館에는 從前에 同國政府로부터 守門·設門을 設定하였으나 今後 이를 撤廢하고 新定의 程限에 依하여 標識을 境界上에 設立하되 他의 二港도 역시 此例에 準한다.

第4款 今後 釜山港에 있어서는 日本國人民이 通行할 수 있는 道路의 里程은 防波堤로부터 起算하여 東西南北 各 直徑 10里(朝鮮里法에 依한다)로 定한다. 東萊府中에 있어서는 里程外라 할지라도 特別히 往來할 수 있다. 이 里程內에 있어서 日本國 人民은 自由로 通行하고 其他의 産物 및 日本國産物을 賣買할 수 있다.

第5款 議定한 朝鮮國 各港에 있어서 日本國人民은 朝鮮國人民을 賃雇할 수 있으며 朝鮮國人民은 그 政府의 許可를 받으면 日本國에 往來함도 無妨하다.

第6款 議定한 朝鮮國 各港에 있어서 日本國人民이 萬若 死亡할 때는 適宜의 地處를 選拔하여 埋葬할 수 있다. 但 他의 二港의 埋葬地는 釜山埋葬地의 遠近의 例에 依한다.

第7款 日本國人民은 日本國의 諸貨幣로서 朝鮮國人民의 所有物과 交換할 수 있고 朝鮮國人民은 그 交換한 日本國의 諸貨幣로 日本國所産의 諸貨物을 買得할 수 있으니 以是로 朝鮮國의 指定한 諸港에 있어서는 人民相互間에 通用할 수 있다. 日本國人民은 朝鮮國의 銅貨幣를 使用運輸할 수 있다. 兩國人民으로 敢히 錢貨를 私鑄하는 者가 있다면 各 그 國家의 諸法律에 비추어 處斷한다.

第8款 朝鮮國民은 日本國民으로부터 買得한 貨物 或은 贈與를 받은 諸物品을 自由로 使用하여도 無妨하다.

第9款 修好條規 第7款에 記載된 趣旨에 따라 日本國의 測量船이 小船을 내어 朝鮮國沿海를 測量하다가 風雨에 逢着하거나 或은 干潮로서 本船에 歸還할 수 없을 時는 該處里程으로부터 그 近傍의 人家에 安着시키고 萬若 需用의 物品이 있으면 官廳으로부터 辨給하고 後日 그 費用을 淸算한다.

第10款 朝鮮國은 아직 海外諸國과 通信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日本國은 修好經年하여 締盟한 諸國과 友誼를 保有하고 있는 關係上 今後 諸國의 船舶이 風波로 困境에 빠져 沿邊地方에 漂着하게 된다면 朝鮮國人民은 모름지기 이를 愛恤 않을 理가 없는지라 諸漂民이 그 本國에 還送되기를 顧望할 때에는 朝鮮國政府로부터 各港口駐留의 日本管理官에게 遞致하여 本國으로 送還한다. 該官員은 이를 應諾하여야 한다.

第11款 右10款의 里程及 이에 添附한 通商規則은 모두 修好條規와 同一한 權利를 가진다. 兩國政府는 遵行하여 違反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此各款中에 萬若 兩國人民이 交際貿易을 實踐함에 있어 障害가 있다고 認定되어 不可不 釐革하게 될 境遇에는 兩國政府는 그 議案을 速히 作成하여 一個年前에 通知하여 協議決定하여야한다.

 

    大日本國紀元2536年明治9年8月24日  理事官外務大丞  宮本小一

    大朝鮮國開國485年丙子7月初日     講修官議政府堂上 趙寅熙

〔原 文〕

日本國政府曩遣特命全權辨理大臣陸軍中將兼參議開拓長官黑田淸隆特命副全權辨理大臣議官井上馨詣朝鮮國朝鮮國政府派大官判中樞府事申櫶副大官都摠府副摠管尹滋承會同于江華府日本曆明治九年二月十六日朝鮮曆丙子年二月初二日協議妥辨互相調印今照其修好條規第11款旨日本國政府委任理事官外務大丞宮本小一詣朝鮮國京城朝鮮國政府委任講修官議政府堂上趙寅熙會同擬議其所定立條款開列于左

 

第1款 各港口駐留日本國人民管理官於朝鮮國沿海地日本國諸船致敗緊急得告地方經過該地沿路

第2款 使臣及管理官所發之文移書信郵致費銀事後辨償或雇人民專差各從其便

第3款 在議定朝鮮國通商各口日本人民之租賃地基居住者須與地主商議以定其額屬地納租與朝鮮國人民同如夫釜山草梁項日本舘從前設有守門設門從今廢撤一依新定程限立標界上他二港口亦照此例

第4款 嗣後於釜山港口日本國人民可得間行道路里程自埠頭起算東西南北各直徑十里(朝鮮里法)爲定至於東萊府中一處特爲往來於此里程內日本國人民隨意間行可得賣買土宜及日本國物産

第5款 在議定朝鮮國各口日本國人民可得賃雇朝鮮國人民若朝鮮國人民得其政府之允准來於日本國亦無礙

第6款 在議定朝鮮國各口日本國人民恕病故可得撰適宜之地以埋葬一依草梁遠近爲之

第7款 日本國人民可得用本國現行諸貨幣與朝鮮國人民所有物交換朝鮮國人民用其所交換之日本國諸貨幣以得買日本國所産之諸貨物以是在朝鮮國指定諸口則可得人民互相通用朝鮮國銅貨弊日本國人民得使用運輸之事兩國人民敢有私鑄錢貨者各用國律

第8款 朝鮮國人民所買得於日本國人民貨物或其贈遺之各物隨意使用無妨

第9款 從修好條規第7款所載有日本國測量船放小船測量朝鮮國沿海或際風雨或潮退不能歸本船該處里正安接近地人家如有需用物品自官辨給追後計償.

第10款 朝鮮國未曾與海外諸國通信而日本則異于此修好經年所締盟有友誼嗣後諸國船舶爲風波所窘迫漂到沿邊地方則朝鮮國人民湏於理無不愛恤之該漂民望送還于其本國朝鮮國政府遞致各港口日本國管理官送還于本國.

第11款 右十款章程及通商規則共有與修好條規同一權利兩國政府可遵行之無敢有違然而此各款中若兩國人民於交際貿易實踐有認頓爲障碍不可不釐革則兩國政府速作議案前一年報知之以協議改立.

 

    大日本國紀元2536年明治9年8月24日  理事官外務大丞  宮本小一

    大朝鮮國開國485年丙子7月初日     講修官議政府堂上 趙寅熙

【부록 3】朝鮮國議定諸港日本人民貿易規則(譯文)

第1則 日本國商船이(日本國政府 所管의 軍艦 및 通信專用 港船을 除外함) 朝鮮國에서 許可한 諸港에 入港할 때에는 船主 또는 船長은 日本國人民貿易管理官으로부터 交付된 證書를 3日內에 朝鮮國官廳에 提出하여야 한다. 證書라 함은 船主 所持의 日本國船籍, 航海公證 等을 入港日로부터 出港日까지 管理官에게 提出하여 두고 管理官으로부터 此證書의 保管證票를 받는다. 이것을 日本國 現時 施行의 商船成規라 한다.

船主가 本港에 碩泊하여 此證票를 朝鮮國官廳에 提出하고 日本國의 商船임을 證明한다. 이때 船主는 또한 其記錄簿를 提出하여야 한다. 卽 記錄簿라 함은 船名 및 本船의 出發한 地名, 積荷의 噸數 石數(모두 船舶의 容積을 算定하는 이름) 船長의 姓名, 乘務員數, 船客의 姓名을 詳記하여 船主가 鈴印하여야 한다. 이때 船主는 또 本船 積荷의 報單 및 船內所用雜物의 簿記를 提出하여야 한다. 卽 報單이라는 것은 荷物의 名, 或은 其物質의 實名, 荷主의 姓名, 貨物의 斤量, 丈尺, 記號 番號를 詳記하여(記號, 番號없는 荷物은 이 例에 따르지 않는다) 通知한다. 이 報單 및 其他 書類는 그 어느 것이나 日本文을 사용하고 漢譯文은 要치 않는다.

第2則 日本商船 進港의 積荷를 揚陸코자 할 때에는 船主 或은 荷主로부터, 새로 積荷의 物名, 元價, 斤量, 個數를 詳記하여 朝鮮國官廳에 屆出하여야 하며 官廳은 屆出書를 받으면 急速히 下船免狀을 交付하여야 한다.

第3則 船主 或은 荷主는 第2則의 免狀을 받은 後 그 荷物을 揚陸한다. 朝鮮國條約官吏가 萬若 그 貨物을 檢査코자 할 경우에는 荷主는 감히 이를 拒否하지 못한다. 역시 注意하여 檢査하고 이로서 毁損하여서는 안된다.

第4則 出港荷物은 荷主가 第2則의 入港積荷屆出書의 樣式에 準하여 船名 및 荷物의 品名 및 또는 個數를 詳記하고 朝鮮國官廳에 屆出하여야 하며 官廳은 速히 이를 許可하여 出港荷物免狀을 交付하여야 한다. 荷主는 免狀을 받으면 本船에 積荷할 수 있다. 朝鮮官廳이 萬若 그 荷物을 檢査코저 할 때에는 荷主는 감히 이를 拒否하지 못한다.

第5則 日本國商船이 出港을 要할 때는 前日 正午前에 朝鮮國官廳에 通知하여야 한다. 官廳은 報告를 받으면 이미 받아 두었던 證書를 還付하고 出港免狀을 交付한다. 日本國郵便船은 成規의 時限에 不拘하고 朝鮮國官廳에 通知함으로써 隨時 出入할 수 있다.

第6則 今後 朝鮮國 諸港口에서 粮米 及 雜穀도 輸出入할 수 있다.

第7則 港稅

 連檣檣의 商船 蒸汽商船은 稅金 5圓

 單檣檣의 商船은 稅金 2圓(荷物 5百石 以上 積荷)

 單檣檣의 商船은 稅金 1圓拾錢(荷物 5百石以下 積荷) 全部 附屬脚艇을 除外함

 日本政府에 所屬하는 諸船舶은 港稅를 納付하지 않는다.

 ※(脚艇免稅의 事項은 日本文에는 末項에 있으나 朝鮮文에는 이를 第1項에 揭載한다.)

第8則 朝鮮國政府 或은 人民은 諸物品을 不開港場의 港岸에 輸送하고저 할 때에는 日本國商船을 雇用할 수 있다. 雇主가 萬若 人民이라면 朝鮮政府의 免狀에 準하여 雇役하여야 한다.

第9則 日本國船隻이 萬若 通商許可를 받을 朝鮮國의 港口에 來港하여 私的으로 賣買함을 該地方官이 發見하였을 때에는 最近處管理官에게 引渡하여야 한다. 管理官은 그 所得의 錢物一切를 沒收하여 朝鮮國官廳에 交付하여야 한다.

第10則 鴉煙片 販賣를 嚴禁한다.

第11則 兩國이 現在 定하는 規則은 今後 兩國商民의 貿易形況에 따라 各委員은 事情을 考慮하여 商議 改正增加할 수 있다. 이를 爲하여 兩國委員은 各各 調印하고 卽日부터 遵守하게 한다.

 

    大朝鮮國 開國 458年丙子7月6日      講修官議政府堂上  趙 寅 熙

    大日本國 紀元 2536年明治9年8月24日    理事官 外務大丞  宮 本 小 一

〔原 文〕

第1則 日本國商船(除日本國政府所管之軍艦及轉用通信之諸船)入朝鮮國, 准聽貿易諸港口之時, 船主或船長, 須呈日本國人民管理官所發給之證書於朝鮮國官廳, 不出三日. 所謂證書者, 船主所帶日本國船籍·航海公證之類, 自其進口之日至出口之日, 交付之管理官, 管理官卽付以接受各書證票, 是爲日本國現行商船成規, 船主本港碇泊中, 轉呈斯證書於朝鮮國官廳, 驗明爲日本國商船.

時船主又呈其記錄簿. 所謂記錄者, 船主詳記本船之名, 發本船之地名, 本船所積載之噸數·石數(共算定船舶容積之名)船長姓名, 船內水手之數目, 搭載旅客之姓名, 而船主鈐印者也.

此時船主又呈本船裝運貨物之報單, 及船內應用雜物之簿記. 所謂報單者, 詳細開明貨物之名, 或其物質之實名, 貨主之姓名·記號·番號(不用記號番號之貨物 不在此例)報知之也, 此報單及呈明諸書之類, 悉用日本國文, 無副譯漢文.

第2則 日本國商船起載進口船貨之時, 船主或貨主, 須更呈明其貨物之名及元價·斤量·數目於朝鮮國官廳, 官廳得呈明, 須速發給卸貨准單.

第3則 船貨主得第二則准聽之後, 須起載其貨物, 朝鮮國官吏要驗明之, 貨主無敢拒之, 官吏亦須小心驗明, 無或敢爲之致毁損.

第4則 出口之貨物, 貨主照第二則進口貨報單之式, 呈明落貨之船名及貨物之名數於朝鮮國官廳, 官廳須速准聽之, 發給出口貨准單, 貨主得准單, 卽落載于本船, 官廳如要驗査其貨物, 貨主無敢拒之.

第5則 日本國商船要出口, 須於前日午牌前, 報知朝鮮國官廳, 官廳得報, 須還付前日所收領之證書, 以發給出口准單.

日本國郵便船, 得不由成規之時, 限出口, 亦必報知官廳.

第6則 嗣後於朝鮮國港口, 米及雜穀得輸出入, 若朝鮮國歲荐凶歉, 日本國人民, 隨朝鮮國政府所望, 粮米及雜穀得輸出入, 數年後返償, 亦無妨.

第7則 港稅.

連桅檣商船, 及蒸氣商船, 稅金五圓(除附屬脚艇), 單桅檣商船, 稅金貳圓(載得五百石以上貨物), 單桅檣商船, 稅金壹圓五十錢(載得五百石以下貨物), 屬日本國政府諸船舶, 不納港稅.

第8則 朝鮮國政府或其人民, 除指定貿易口之外, 欲運輸各物件於他口岸, 得雇日本國商船, 雇主如係人民, 照朝鮮國政府准單, 而後雇役.

第9則 日本國船隻, 如到不准通商朝鮮國口岸, 私爲買賣, 該處地方官査出, 交付就近管理官, 管理官將所有錢物, 一倂沒入, 交遞朝鮮國官廳.

第10則 嚴禁鴉片烟販賣.

第11則 兩國現定規則, 嗣後從兩國商民貿易形況如何, 各委員得隨時酌量事情, 會商改正, 爲之兩國委員各鈐印, 卽日遵行.

 

    大日本國紀元二千五百三十六年明治九年八月 日  理事官 外務大丞  宮本小一

    大朝鮮國開國四百八十五年丙子 月 日      講修官 議政府堂上 趙寅熙

<崔德壽>

263)이광린, 앞의 책, 85∼88쪽.
264)번역문은 董德模,≪朝鮮朝의 國際關係≫(博英社, 1990) 부록을 참고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