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Ⅴ. 갑신정변3. 갑신정변의 전개3) 개화정권의 수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1.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 1) 개화파의 형성
          • 2) 개화파의 분화
          • 3) 개화파의 활동
            • (1) 통리기무아문의 설치(1880)
            • (2) 일본국정시찰단(신사유람단)의 파견(1881)
            • (3) 영선사(병기학습 유학생사절단)파견(1881)
            • (4) 신식 육군(별기군)의 창설(1881)
            • (5) 기무처의 설치(1882)
            • (6) 감생청의 설치(1882)
            • (7) 대외적 균세정책의 실시(1882)
            • (8) 해관의 설치(1882∼1883)
            • (9) 근대학교의 설립(1883)
            • (10) 근대신문의 발간(1883)
            • (11) 근대적 산업시설의 대두와 고취
        • 2. 개화사상의 발전
          • 1) 동도서기론의 대두
          • 2) 온건개화파의 개화사상
          • 3) 급진개화파의 개화사상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1. 개화정책의 추진세력
          • 1) 고종의 개화의지
          • 2)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 3) 개화추진세력의 분화
        • 2. 신문명의 도입
          • 1) 일본시찰단의 파견
            • (1) 파견계획의 수립
            • (2) 고종의 밀명
            • (3) 어떤 인물들인가
            • (4) 일본시찰 활동
            • (5) 일본견문 보고서
            • (6) 일본을 보는 두 개의 눈-엇갈리는 진단과 평가
          • 2) 청국유학생(영선사)의 파견
            • (1) 사행의 교섭
            • (2) 사행준비와 출발
            • (3) 학습상황
            • (4) 유학생의 철수
          • 3) 미국시찰단의 파견
            • (1) 조미조약의 체결
            • (2) 조선보빙사의 미국파견 및 일정
            • (3) 조선보빙사 파견의 성과
        • 3. 제도의 개혁
          • 1) 정치·군사부문
            • (1) 정부기구의 개편
            • (2) 군사제도의 개혁
          • 2) 경제부문
            • (1) 농업기술의 도입과 상업적 농업의 진흥
            • (2) 상업의 보호와 수세정책
            • (3) 전환국의 설립과 신식 화폐주조
          • 3) 문화·교육·사회부문
            • (1) 박문국의 설치와≪한성순보≫·≪한성주보≫의 간행
            • (2) 서구식 근대교육의 수용
            • (3) 근대적 우정·전신·전기시설
            • (4) 근대 의료시설
      • Ⅲ. 위정척사운동
        • 1. 위정척사사상의 대두
          • 1) 위정척사사상의 대두
          • 2) 위정척사사상의 보급
            • (1) 위정척사사상의 정립
            • (2) 위정척사사상의 심화와 확산
        • 2. 위정척사운동의 전개
          • 1) 병자년의 위정척사운동
          • 2) 신사년의 위정척사운동과 척사·개화논쟁
        • 3. 위정척사운동의 영향과 의의
          • 1) 위정척사운동의 영향
          • 2) 위정척사운동의 의미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1. 임오군란
          • 1) 임오군란의 배경
            • (1) 서울의 사회경제 구조와 하층민
            • (2) 하급 군병의 성격과 군제개편
            • (3) 하층민의 저항운동
          • 2) 임오군란의 전개과정
            • (1) 운동의 발생과 확산
            • (2) 정치적 차원에서의 운동의 실현
            • (3) 외세의 개입과 운동의 좌절
          • 3) 임오군란의 영향
            • (1) 일본의 국내 사정과 대조선정책의 변화
            • (2) 청의 대조선정책의 변화와 영향력 확대
            • (3) 국내 상황의 변화
          • 4) 임오군란의 구조와 성격
            • (1) 참가층의 구성과 동원조직
            • (2) 공격 목표와 요구의 한계
            • (3) 정부 및 지배층의 대응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과 조·청관계의 변질
          • 1) 조선정부의 대청통상정책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 (1) 조·청통상협의
            • (2)<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 Ⅴ. 갑신정변
        • 1. 갑신정변의 배경
          • 1) 구미열강과의 외교
          • 2) 차관교섭
          • 3) 집권파와의 대립과 위기의식
        • 2. 갑신정변의 주도세력
          • 1) 정변의 핵심세력
          • 2) 정변의 행동대원
        • 3. 갑신정변의 전개
          • 1) 정변 주도세력의 목표
          • 2) 갑신정변의 준비
            • (1) 개화당의 정변 무력문제
            • (2) 정변 단행의 결정
            • (3) 북청군대의 상경과 일부 유경
            • (4) 일본공사관 호위용 일본군의 차병
            • (5) 국왕의 밀칙 획득
            • (6) 행동계획의 최종 정리
          • 3) 개화정권의 수립
            • (1) 1884년 10월 17일 밤의 거사
            • (2) 신정부의 수립
            • (3) 개화파 신정부의 혁신정강 공포
          • 4) 청국 및 일본의 개입과 정변의 실패
          • 5) 갑신정변 실패의 요인
        • 4. 갑신정변의 영향과 의의
          • 1) 갑신정변의 영향
            • (1) 수구파정권의 재수립
            • (2) 개화당의 몰락과 숙청
            • (3) 조선·일본의 교섭과<한성조약>의 체결
            • (4) 청국·일본의 교섭과<천진조약>의 체결
          • 2)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개화정권의 수립

(1) 1884년 10월 17일 밤의 거사

마침내 1884년 10월 17일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의 거사일이 왔다. 축하연 시작 시간인 오후 7시가 가까워 오자 초청받은 축하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외국인 축하객으로는 미국공사 푸트(Lucius H. Foote), 미국공사관 서기관 스커더(Charles L. Scudder), 영국총영사 애스턴(William George Aston), 청국총판조선상무(청국영사) 陳樹棠, 봉판상무(서기관) 譚賡堯, 일본공사관 서기관 島村久, 통역관 川上立一郎, 해관 세무사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등이 참석하였다. 일본공사 竹添進一郎과 독일총영사 젬부쉬(Zembsch)는 병으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알려왔다.

내국인 참석자로는 초청자인 홍영식을 비롯하여, 錦陵尉 박영효, 독판 김홍집, 친군영 전영사 한규직, 우영사 민영익, 좌영사 이조연, 김옥균, 승지 서광범·민병석, 주사 윤치호, 司事 申樂均 등이 참석하였다. 후영사 윤태준은 이 날 밤 궁중 숙직이었기 때문에 빠져서 참석자가 모두 18명이었다.858)

김옥균은 이 날 오후 4시에 우정국으로 가서 홍영식과 함께 연회준비를 점검하였다. 김옥균이 집에 돌아오니 국왕을 항상 가까이 모시고 있는 邊樹가 와서 국왕께서는 날이 밝은 뒤부터 공사를 재결하기 위해 계속 침실로 가지 않았고 承候官은 2시에 入對했는데 일찍 물러가게 해서 공무를 끝내었다고 국왕의 동태를 보고하였다. 김옥균은 변수에게 계속 국왕과 궁궐의 정황을 관찰하다가 오늘밤 김옥균 자신이 대궐로 들어가는 즉시 상세히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다. 김옥균이 바로 이웃하고 있는 서재필의 집으로 가서 모여 대기하고 있는 개화당 장사들에게 행동지침을 거듭 결정하여 지시하고 나니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다. 김옥균이 급히 우정국으로 달려가니 조금 늦게 도착되어서 이미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김옥균은 일본공사관 서기관 시마무라(島村久)의 옆 좌석에 앉아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사 직전임을 알리기 위해 암호로 ‘그대는 天을 아는가’ 하고 물으니, 시마무라는 일본말로 ‘요로시’ 하고 대답하였다.

이 때 김옥균에게 집에서 누가 찾아왔다고 알려왔다. 김옥균이 연회장 문밖으로 나가보니 개화당의 朴齊絅이 급히 달려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아무리 애를 써도 별궁 방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김옥균은 다른 곳이라도 연소되기 쉬운 초가를 골라 불을 질러서 신호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김옥균이 연회장에 돌아와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신호 불빛은 없고 또 김옥균을 찾는다고 하여 나가 보니 이번에는 유혁로가 달려와서 별궁 방화의 실패로 순라꾼들이 사방에 퍼져 다른 곳 방화도 위험하므로 여러 장사들이 연회장을 습격하고자 한다고 보고하였다. 김옥균은 그 경우에 혼잡 속에서 외국공사를 다치게 할까 염려되니 순라꾼이 없는 곳을 아무데나 골라 불로 신호하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김옥균이 긴장하여 두 번이나 출입하는 것을 민영익 등은 자못 의심하는 빛이었고, 시마무라도 매우 불안한 기색이었다. 이 때 우정국 북쪽 창문 밖에서 ‘불이야,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고 떠들썩하므로 창문을 열어보니 우정국 바로 옆 거리에 불빛이 하늘에 뻗쳤다. 연회장 안의 사람들은 당황하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규직이 먼저 “우리들은 장수의 소임으로 급히 달려가서 불을 끄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막 나가려는데, 민영익이 칼을 맞아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연회장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민영익은 김옥균이 자주 밖을 드나드는 것을 보고 눈치 빠르게 의심을 품었다가 ‘불이야’ 소리에 재빠르게 먼저 대문을 빠져 나갔는데 대기하고 있던 개화당 장사들의 칼을 맞고 돌아온 것이었다. 개화당 장사들은 서툴러 민영익을 완전히 처치하지 못하고 중상을 입힌 데 그쳤다.859) 연회장은 완전히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은 북쪽 창문으로 뛰어넘어 곧 암호로 ‘天’·‘天’을 부르며 달리는 도중에 이인종과 서재필을 만나게 되자, 그들로 하여금 개화당 장사들을 인솔하여 경우궁 문밖에 가서 기다리도록 지시하고, 먼저 곧바로 일본공사관으로 달려갔다. 별궁 방화가 실패한 것을 보고 일본측이 변심하지 않았나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공사관에서는 시마무라가 먼저 돌아와 있다가 나오면서 “그대들은 왜 대궐로 가지 않고 이 곳으로 왔는가” 하고 물었다. 김옥균은 일본측이 변심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대궐로 가는 도중 운니동 어귀에 김봉균·이석이 등 개화당 장사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또 신복모가 장사 40여 명을 여러 곳에 매복시켜 놓은 것을 보았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은 금호문으로 김봉균·이석이를 데리고 들어가 그들에게 인정전 아래 화약을 묻은 데로 보내서 30분 후에 폭발시키도록 하였다.

김옥균 등이 앞을 막는 武監을 호령하여 물리치고 편전 앞 합문 밖으로 나아가니 윤경완이 전영 병정 50명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편전 안으로 들어가니 국왕은 이미 침실에 들었으므로 가로막는 환관 柳在賢을 시켜 국왕께서 급히 일어나시도록 청하게 되었다. 국왕이 침실로 김옥균·박영효·서광범을 부르면서 무슨 사변이 일어났는가를 물었다. 김옥균 등이 우정국의 사변을 아뢰고 잠시 다른 궁궐로 옮길 것을 청하였다. 민비가 김옥균에게 “사변이 청국측에서 나왔는가, 일본측에서 나왔는가”를 묻고, 김옥균이 미쳐 대답하기도 전에 홀연히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울리었다. 혼비백산한 국왕과 민비를 모시고 경우궁을 향해 달리는 도중에 김옥균 등은 국왕에게 “지금 이 때를 당하여 일본군사를 요청해서 폐하를 호위하도록 하면 만전을 기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진언하였다. 다급한 국왕은 그렇게 하라고 윤허하였다. 김옥균이 잇따라 “親筆勅書가 없으면 (일본군사가) 하명하신 대로 오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아뢰었다. 국왕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묻자, 김옥균은 연필을 올리고 박영효는 백지를 내놓았다. 국왕은 창황중에 曜金門 안 노상에서 친필로 “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호위하라”고 써 주었다. 김옥균은 이 친필칙서를 박영효를 시켜 다케조에에게 전하게 하였다.860)

국왕과 왕비를 모시고 김옥균 일행이 경우궁 正殿 뜰에 이르렀을 때 곧 박영효와 다케조에가 일본군을 인솔하여 왔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은 국왕과 왕비를 정전에 편히 좌정케 한 후에 좌우에 시위하고, 서재필의 지휘하에 사관생도 13명과 개화당 장사들로 內衛를 시켰으며, 친군영 전영 소대장 윤경완에게 5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정전 뜰을 지키게 하고, 일본군 150명으로 하여금 대문 안팎을 경호하도록 했으며, 外衛로 친군영 전영·후영 병사를 불러 경우궁을 지키도록 하였다. 국왕을 중심점으로 3중·4중의 철통같은 호위체제가 편성되었다. 정변은 일단 성공의 안정권에 들어선 것이었다.861)

김옥균은 이에 믿을 만한 무감 10여 명을 시켜서 경우궁 대문 밖에 나가서 재상과 대신들 중에 변을 듣고 오는 자가 있으면 곧 이름을 먼저 들여보내서 허가를 받은 다음 홍영식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이조연이 우정국 축하연에서 도피했다가 국왕이 경우궁에 옮기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으므로 들어오게 했더니, 이미 와 있는 한규직·윤태준 및 환관 유재현과 자주 쑥덕거렸다. 박영효가 이를 보고 3영의 영사들이 국왕 호위의 임무는 하지 않고 궁궐 안에서 왜 머뭇거리는가 하고 힐문하니, 먼저 윤태준이 나가겠다고 하였다.

윤태준이 손중문을 나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이규완·윤경순이 처단해 버렸다. 한규직과 이조연은 경우궁 후문을 나섰다가 기다리고 있던 황용택·윤경순·이규완·고영석에 의해 처단되었다. 이에 친군영의 전·후·좌의 3영사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우영사 민영익은 중상을 당하여 모두 처단된 것이었다.

민영목·조영하·민태호가 각각 차례로 경우궁 정전 밖에 찾아와 명찰을 들이므로 들어오게 하여 이규완·고영석 등이 처단하였다. 수구파 영수들도 역시 처단된 것이었다.

김옥균은 사람을 시켜 輔國 李載元(국왕의 4촌형)을 입시케 하여 정변과 대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더니 기꺼이 따르겠다고 하였다.

김옥균은 변수를 각국 공사관에 보내어 정변을 알리고 우정국 축하연 참석자들을 위문케 하였다. 이에 미국공사는 해군사관 버너드와 윤치호를 경우궁으로 보냈으므로 정변의 대강을 설명해 보냈더니, 미국공사로부터 “사세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오직 내정을 잘 개혁하시오”라는 회보가 왔다.

김옥균 등이 우선 급히 시행해야 할 政令을 국왕께 품하려 하는데, 민비는 대궐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환관과 궁녀 수백명이 한 방에 뒤섞여서 정변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떠들어대었다. 김옥균은 서재필을 시켜 장사들로 하여금 환관 유재현을 경우궁 정전 위에 묶어 오게 한 다음, 궁 안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유재현의 죄목(북청군대 환송 책동과 모함 등…)을 낱낱이 드러내고 칼로 목을 베어 참살하였다. 이를 바로 눈에서 보게 된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여 이 때부터 개화당의 영을 한결같이 따랐다. 환관 유재현은 개화당에 속했었는데 후에 변절해서 개화당의 북청군대의 정변 투입을 방해하고, 수구파에 가담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862)

858)<甲申日錄>, 1884년 12월 4일(全集, 77∼78쪽).
859) Fred H. Harrington, God, Mammon and the Japanese, pp. 23∼25 참조.
860)≪甲申日錄≫, 1884년 12월 4일(全集, 82∼85쪽).
861)≪日本外交文書≫17권, 문서번호 125, 附記 明治 17年 甲申 朝鮮京城事變始末書, 352∼362쪽 참조.
862)≪尹致昊日記≫, 1884년 9월 11일(양력 10월 29일)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