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규장각의 폐지와 근대문화의 수립
갑신정변의 혁신정강 제7조 ‘奎章閣을 폐지할 것’은, ① 전근대적 양반귀족 문화의 제도인 규장각을 폐지하고, ② 일반 국민이 중심인 신교육제도를 기본으로 한 근대문화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하려 한 개화당의 정책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혁신정강의 규장각폐지의 조항은 피상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나, 이것은 규장각이 갖고 있던 민족문화 정수의 측면을 폐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규장각이 갖고 있던 다른 하나의 측면인 전근대적 양반귀족문화의 제도적 측면을 폐지하고 일반 국민·민중의 신교육에 의거한 근대문화 수립을 추구한 것이었다.
갑신정변의 주체세력의 하나였던 서재필은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김옥균은 나라의 빈약함이 전연히 일반 민중의 기술적 교육이 없는 것과 상류계급 인사의 무지와 몰각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우리 나라를 구하자면 민중을 교육시키는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그는 입버릇같이 나에게 가끔 말하던 것을 나는 이제 와서 기억한다. 이미 노후한 자는 교육시킬 도리가 없어 청년에게 실올 같은 희망을 비끄러맸던 것이다(徐載弼,<回顧甲申政變>, 앞의 책, 83쪽).
김옥균 등은 그 당시 양반귀족들의 낡은 구지식은 당시의 민족적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는 무지·몰각과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나라를 구하려면 오직 청년들과 일반 민중들에게 신교육을 시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김옥균은 백성을 교육하되 신문명의 방도로써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널리 學校를 설립하여’ 신교육을 실시해야 하며,888) 정무에 관한 일을 언문(국문)으로 번역 간행하여 백성들에게 널리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889)
개화당이 혁신정강에서 양반귀족만의 구지식기관인 규장각을 폐지하려 한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민중교육을 위한 학교를 널리 설립하여 신교육을 실시하고 근대문화를 수립하는 방향의 개혁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