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1. 동학농민군의 봉기1) 고부민란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고부민란과 제1차 농민전쟁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고부민란이 소강상태로 들어간 이후 신임군수의 설득으로 민란 중민이 해산하는 동안 전봉준을 위시한 지도부가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군현 단위의 민란은 고립적으로 전개되다가 안핵사가 파견되어 민중을 기만적으로 설득하여 해산하면, 주모자를 색출하여 처벌함으로써 실패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전쟁 지도부는 바로 이러한 실패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성찰했을 것이다. 한 고을의 문제는 전국적인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군의 민란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여러 고을을 묶는 조직세력이 없이 농민들의 단순한 집합만으로는 봉건정부가 기만책을 쓰는 경우에는 쉽게 해체되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전봉준은 군현 단위의 산발적인 민란을 묶어낼 조직으로 동학조직에 주목했고 이러한 조직에 기초한 봉기만이 그 시대의 폐정을 개혁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봉준은 소강상태에 빠진 민란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인근 고을의 동지들을 설득, 규합하는 노력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 것이다.≪오하기문≫에서는 “그리하여 그 일당 金箕範·孫化中·崔景善 등과 함께 화를 복으로 바꾸어 준다는 꾀로 백성들을 유혹하고 선동하여 그들을 끼고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0685)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전봉준은 민란 중민이 해산하자 무장으로 잠행하여 전라도의 동학지도자 손화중·金開南·金德明·최경선 등과 모의하여 南接都所를 차려 농민전쟁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부민란이 소강상태에 빠진 2월부터 전라도 각지의 농민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음력 2월에 이르러서는 ‘保國安民倡大義’라는 큰 깃발을 펄럭이며 완전히 반항의 결심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방 이웃이 이 기세에 휩쓸려 찾아와 가담하는 자가 많았고 칭하기를 동학당이라 하였다(그 수효가 1천 2, 3백 명이라고도 하고 8, 9백 명이라고도 한다).”0686) 이러한 소식이 들리자 2월 22일 전라감사 김문현은 “다섯 개 진영과 금구·정읍·부안·김제·담양·무장·태인·흥덕 등 11개 고을에 군대를 점검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토록 하라”0687)고 할 정도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때 전봉준이 전라도 각지에 봉기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격문을 띄운 점이다. 민중의 규모가 천 여명 정도의 세력으로 불어나자 전봉준은 그 여세를 몰아 민란을 전라도 전역으로 확산하여 거사계획을 실천에 옮기고자 2월 20일경 ‘倡義檄文’을 날린 것이다.

백성을 지키고 길러야 할 지방관은 治民의 도를 모르고 돈벌이를 본원으로 삼는다. 여기에 더하여 전운영이 창설됨으로써 폐단이 煩劇하여 민인들이 도탄에 빠졌고 나라가 위태롭다. 우리는 비록 초야의 遺民이지만 차마 나라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다. 원컨대 각 읍의 여러 군자들은 한 목소리로 의를 떨쳐 일어나 나라를 해치는 적을 제거하여 위로는 宗社를 보전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케 하자.0688)

 이것은 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반란’을 선동하는 격문으로 볼 수 있다. 이 격문에서 전봉준은 전운영이라는, 일개 고을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를 제기하여 민란의 확산을 꾀하고 있으며, ‘나라를 해치는 적’을 제거할 것과 ‘宗社를 보전’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과거의 민란과는 차원이 다른 전국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봉준은 ‘사발통문’ 거사계획에서 제4항 ‘전주성을 함락하고, 京師로 직향할 사’라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사실상의 농민전쟁을 기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핵심적 내용이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나아가 중앙의 권신 제거를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제시된 근본 취지는 제1차 농민전쟁 기간 중의 각종 창의문이나 통문 등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 격문이 날아간 열흘 정도 뒤인 2월 말부터 고부 인근 고을에서 농민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월 29일 김제의 죽산으로부터 동쪽으로 40여리 떨어진 곳(금구 원평 일대)에 동학이 둔집하였다는 소문이 있었다.0689) 3월 11, 12일경 동학당 약 3천여 명이 금구로부터 태인을 거쳐 부안으로 가는 것이 태인에서 목격되기도 했다.0690) 3월 16일 농민군 수천 명이 무장 당산에 집결하기 시작하였고, 3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사방에서 농민군 천여 명이 몰려들어 영광·법성 경계에 모였는데, 이들 가운데 수백 명이 법성 진량면 황현리 대밭에서 죽창을 만들고 민가에서 총포 등을 마련했다.0691)≪오하기문≫에도 “우도 일대 10여 읍이 일시에 봉기하여 열흘 정도에 수만 명이 모여 들었고 동학과 ‘난민’이 함께 어우러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봉준 등은 무장에서 큰 집회를 열고 그들의 생각을 민간에 알렸는데…”0692)라고 하여 고부 인근 고을의 농민군들이 3월 초부터 집결하기 시작하여 무장에서 기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2월 20일 격문을 발한 이후 열흘 정도가 지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라도 각지의 농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소강상태에 있던 고부민란은 전국적인 농민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고부민란의 수습과정에서 안핵사 이용태가 저지른 만행도 작용했겠지만,0693) 그보다도 전봉준이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인근 고을의 농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고부민란의 처음 시작은 조선 후기의 여느 민란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나라를 건지려는 뜻을 가진 전봉준 등과 같은 지도자가 결합하여 고부민란은 한 차원 높은 농민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0685)≪오하기문≫, 72쪽.
0686)≪주한일본공사관기록≫(번역본)1, 15쪽.
0687)≪오하기문≫, 70∼71쪽.
0688)≪南遊隨錄≫, 甲午 2월 20일.
0689)≪주한일본공사관기록≫1, 38쪽.
0690)위의 책, 43쪽.
0691)≪南遊隨錄≫, 甲午 3월 18일.
0692)≪오하기문≫, 72쪽.
0693)<전봉준공초>, 초초문목, 31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