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1. 동학농민군의 봉기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1) 무장기포

 제1차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3월 20일(일설 3월 21일) 무장에서 창의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0694) 2월 20일 각 고을에 농민전쟁을 촉구하는 격문을 띄운지 약 한 달만에 각지에서 모인 농민군이 결집하여 농민전쟁의 봉화를 올린 것이다.

 전봉준이 무장에 잠행하여 동학의 도소를 설치한 것은 동학농민전쟁의 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동학은 이미 충청도 보은에 최시형을 대접주로 하는 대도소를 설치하고 있었다. 동학의 조직체계로서는 각지의 包, 接은 직접 이 대도소의 지휘를 받는 것이었지 따로 도소를 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봉준은 호남의 동학을 공공연히 ‘南接’이라고 부름으로써 대도소(北接)에 대해 조직의 독자성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봉준이 독자적인 남접도소를 설치한 것은 동학 내부의 헤게모니 문제라기보다는, 동학의 조직과 활동을 종교의 범주에 한정시키고 싶어 하는 北接의 제약과 간섭에서 벗어나서 동학의 조직과 활동을 종교의 범주를 벗어난 전체 국가와 사회의 개혁운동에 적극 활용하고자 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0695)

 무장 堂山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농민전쟁의 봉기를 알리는 창의문을 전국에 선포하고 통문을 전국에 발송하였는데 여기에서 농민전쟁의 목표를 천명하였다.

倡  義  文0696)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은 人倫이 있기 때문이다. 君臣父子는 인륜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들이 효도한 이후에야 집과 국가에 無彊이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임금은 仁孝慈愛하고 神明聖叡한지라, 賢良方正의 신하가 있어서 그 聰明을 도울지면 堯舜의 德化와 文景의 善治를 가히 써 바랄 수 있을지라.

 그러나 오늘날의 신하된 자는 報國은 생각지 아니하고 한갓 祿과 位만 도둑질하여 총명을 가리고 아부와 아첨만을 일삼아 忠諫하는 선비를 妖言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匪徒라 하여 안으로는 輔國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虐民의 관리만 많도다. 人民의 마음은 날로 흐트러져 들어서는 즐거운 삶의 生業이 없고 나가서는 몸을 보존할 대책이 없도다. 虐政은 날로 더해가고 怨聲은 그치지 아니하니 君臣의 義와 父子의 倫과 上下의 分이 드디어 다 무너지고 말았다. 管子가 가로되 四維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국가는 멸망한다 하였으니 오늘의 형세는 옛날의 그것보다 더 심하도다. 公卿부터 方伯守令까지 모두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한갓 자신의 살찜과 가문의 윤택의 계책만을 도둑질하며, 科擧의 문을 돈벌이의 길이라 생각하고 應試의 장소는 매매하는 저자로 변하고 말았도다. 허다한 돈과 뇌물은 國庫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私腹을 채우고 있도다. 국가에는 누적된 빚이 있으나 갚을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과 더러운 일만을 거리낌없이 일삼으니, 八路는 魚肉이 되고 萬民은 도탄에 빠졌도다.

 守宰의 貪虐에 백성이 어찌 곤궁치 아니하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는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輔國安民의 방책은 생각지 아니하고 밖으로 鄕第를 설치하여 오직 제몸 하나 온전함의 방책만을 꾀하고 오직 祿과 位만을 도둑질하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비록 草野의 遺民일지라도 君土를 먹고 君衣를 입고 사는 자이라, 어찌 국가의 危亡을 앉아서 보기만 하겠는가! 八路가 마음을 합하고 수많은 백성이 뜻을 모아 이제 의로운 깃발을 들어 輔國安民으로써 死生의 맹세를 하노니,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만한 일이기는 하나 驚動하지 말고 각자 그 業을 편안히 하여 昇平日月을 함께 빌고 임금의 덕화를 함께 입게 되기를 바라노라.

甲午  月  日

湖南倡義所   

全琫準

孫和中

金開南

 이 창의문에서는 기존의 유교적 윤리를 준거로 하여 양반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봉건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농민군 봉기의 정당성을 농민 대중에게 선포하고 있다. 이전의 민란 단계에서 고을 수령이 주요 타격목표가 되었던 것에 비해 여기서는 ‘公卿부터 方伯守令까지’의 봉건통치층 전체가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농민군이 지역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조선봉건체제 전체를 문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輔國安民의 방책은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제몸 하나 온전함의 방책만을 꾀한다’고 하는 데에서 반제 민족주의 의식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창의문은 동학농민전쟁 최초의 창의문이기 때문에 아직 농민전쟁에의 호응도가 불확실한 조건에서 일반 농민의 지지를 널리 구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 일반 농민들의 이데올로기적 인식정도를 의식하여 儒敎의 용어와 사상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국왕에 반역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것임을 누누히 강조하는 어조로 되어 있다.0697) 즉 이 창의문에서는 농민군 지도부의 봉기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중점이 두어졌다기 보다는 봉기의 대중적 지지를 겨냥하는 데 일차적 목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장에서 편성된 농민군의 수는 약 4천 명이었다. 이 외에 동학의 비밀조직을 통하여 태인접주 최경선이 3백여 명의 농민군을 조직해서 대기하도록 준비되었고 고부읍에서 1천여 명의 농민군이 동원되기로 되어 있었다. 전봉준이 단기간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농민군 부대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은집회 시기의 남접의 금구취당 세력을 활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0698) 황현은 무장 기포에 대해 “어리석은 백성들은 이 말에 솔깃하여 우도 일대 10여 읍이 일시에 봉기하여 열흘 정도에 수만 명이 모여들었고 동학이 난민과 함께 어우러진 것이 이때부터였다”0699)고 쓰고 있는데, 이로 보아 茂長봉기에는 동학의 조직이 매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장기포 때의 농민군의 무기는 그동안 민란 때 관아의 군기고에서 빼앗은 무기와 민간의 무기로서 소총·화승총·창·칼·활·도끼·철퇴·죽창 등이었으나 잘 무장되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밖에 말목장터에 집합하기로 약속된 농민을 무장시키기 위하여 말목장터 근방의 민가에 총창 수백개를 은닉해 놓았다. 무장기포 때의 군량은 이 지방 부민에게서 징수하고 봉납케 하여 충당하였다. 군량 뿐만 아니라 짚신과 군용전도 징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편성된 4천여 명의 농민군은 당시로서는 매우 큰 규모였으며 농민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0694)신용하,<갑오농민전쟁의 제1차 농민전쟁>(≪한국학보≫40호, 1985).
0695)위의 글, 123쪽.
0696)<聚語>(≪東學亂記錄≫上), 142∼143쪽;<東匪討錄>(≪韓國學報≫제3집, 一志社, 1976), 235쪽;吳知泳,≪東學史≫(영창서관, 1940), 108∼109쪽. 이 창의문은 종래에는 고부에서 기포한 농민군이 흥덕, 고창을 거쳐 4월 9일 무장을 지나면서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신용하에 의해 3월 20일 농민군의 최초 봉기 때 발표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용하, 앞의 글 참조.
0697)신용하, 앞의 글(1985), 126쪽.
0698)정창렬, 앞의 글(상) 참조.
0699)≪오하기문≫, 7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