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법제도
갑오경장 기간에 입안·제정된 새로운 사법제도는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사법권의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때에 緣坐制 등 과거의 악법이 폐지되었으며,<裁判所構成法>의 공포로 재판소가 설치됨으로써 재판업무가 재판소로 일원화되고, 판·검사의 직제가 최초로 도입되는 등 근대적인 사법기관 및 사법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재판소구성법>은 1899년 5월 30일에 개정될 때까지 유지되었다.<재판소구성법 개정안>에 의하면, 기존의 5개 재판소 가운데 고등재판소를 平理院으로 개칭하되, 평리원의 재판장은 황제가 特旨를 내린 죄인 및 국사범의 심판과 칙·주임관의 체포 및 심판에 관한 사항을 법부대신에게 보고하여 지령을 기다려 처리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지방재판소와 한성부 및 개항장재판소의 판사는 사법관시험 합격자 가운데 임명하되, 당분간 각 부 관찰사와 한성판윤 및 감리서의 감리가 겸임토록 하였다.653)
개정된<재판소구성법>은 법부대신 또는 황제가 재판에 간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황제가 특지를 내린 죄인을 평리원에 회부하여 단심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갑오경장 때 판사에 전임 사법관을 임명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행정관이 사법관을 겸직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사법권을 행정권에 예속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궁극적으로 황제측에서 사법권을 재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654)
<재판소구성법>과 동시에 法部官制도 개정되었다. 개정된 법부관제에서는 그 산하의 민사국·형사국·검사국·회계국 등 4국이 司理局·法務局·會計局 등 3국으로 축소·개편되었다. 그러나 개정의 취지는 특별법원 및 평리원에서 謀叛大逆 범인을 조사한 안건을 질의·보고할 때 의혹이 있을 경우 법부대신이 직접 심판하고, 평리원 및 각 재판소의 민·형사 소송에서 억울함이 발생할 경우 법부대신이 칙·주임관을 파견하여 심사하거나 모든 서류를 법부로 넘겨받아 조사·판결토록 함으로써 법부대신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데 있었다. 이러한 조치 역시 법부대신의 임면권자인 황제의 권한을 높여주는 조치였다.655)
요컨대, 갑오경장 때 사법권을 행정부에서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던 사법제도의 개혁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사법권을 황제 또는 행정부에 예속시키는 쪽으로 추진됨으로써 개혁적 입장에서 볼 때 퇴보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대한국국제>가 제정될 무렵 고종 황제는 법률의 제정·공포·집행·사면권 등에 걸친 권한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