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Ⅲ. 갑오경장4.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의1) 갑오경장의 실시상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1. 청일전쟁과 1890년대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배경과 전개
          • 1) 조선에서의 청·일 대립
          • 2) 일본의 전쟁 준비와 갑오농민전쟁
        • 3. 전쟁의 경과
          • 1) 한반도에서의 전투와 황해 해전
          • 2) 중국에서의 전투
        • 4. 중재와 강화
          • 1) 열강의 중재
          • 2) 강화 외교
        • 5. 전쟁의 영향
          • 1)<시모노세키 강화조약>과 전후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영향과 의의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1. 청·일군의 조선 출병과 농민군의 전주성 철수
        • 2. 청일전쟁의 발발과 농민군의 정세인식
        • 3. 평양전투와 농민군의 동향
        • 4. 일본군의 청국 진입과 농민군의 재봉기
      • Ⅲ. 갑오경장
        • 1. 제1차 개혁
          • 1) 제1차 개혁의 배경
            • (1) 동학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청일전쟁 중 일본의 대한정책
          • 2) 제1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1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동학 ‘비도’에 대한 대책
            • (3) 정치·행정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2. 제2차 개혁
          • 1) 제2차 개혁의 배경
            • (1) 항일운동의 탄압
            • (2) 내정개혁의 추진
          • 2) 제2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2차 개혁의 내용
            • (1)<홍범 14조>의 반포
            • (2) 대외관계의 개혁
            • (3) 정치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11) 기타 개혁
        • 3. 제3차 개혁
          • 1) 제3차 개혁의 배경
          • 2) 제3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3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정치제도의 개혁
            • (3)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4) 경제제도의 개혁
            • (5) 군사제도의 개혁
            • (6) 경찰제도의 개혁
            • (7) 교육제도의 개혁
        • 4.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의
          • 1) 갑오경장의 실시상황
            • (1) 대외적 자주·독립의 선양 조치
            • (2) 정치제도
            • (3) 지방제도
            • (4) 경제제도
            • (5) 군사·경찰제도
            • (6) 사법제도
            • (7) 사회제도
            • (8) 교육제도
          • 2) 갑오경장의 역사적 자리매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군사·경찰제도

아관파천 이후 국왕의 신변 보호와 ‘匪徒’(義兵) 진압 등의 목적을 위해 군사·경찰권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였다. 따라서 중앙군과 지방군을 확대·개편함과 동시에 러시아 군사교관을 초빙하여 근대적 훈련을 실시하고, 경무청을 확충함으로써 치안 확보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우선, 1896년 3월 4일 수도방위를 담당한 친위대는 기존의 3개 대대에서 5개 대대로 증설되었으며, 4월 22일에는 대대 편제 자체는 유지하되 제1·2·3대대를 제1연대로 편성하고 나머지 제4·5대대는 독립대대로 존치시켰다. 그리고 4월 19일에 工兵과 輜重兵을 폐지하였으며, 6월 8일에는 兵馬隊를 없애는 대신 親衛騎兵隊를 신설하였다.638)

아울러 갑오경장 말기에 사관생도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일본식 무관학교를 폐쇄하고 러시아 교관을 고빙하여 러시아식으로 중앙군을 훈련시키는 작업이 추진되었다.639) 1896년 3월 10일 러시아황제의 대관식 특사로 임명된 閔泳煥은 러시아정부에게 조선 군대 및 경찰의 훈련을 담당할 200명 규모의 군사교관을 파견해줄 것과 새로 군대가 창설될 때까지 800명의 러시아병사가 국왕의 호위를 담당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정부는 이미 일본과 베베르-코무라覺書 및 로바노프-야마가타議政書를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과 열강의 반발을 고려하여 러시아군대의 파한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소수의 군사교관만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896년 10월 21일에 민영환일행과 함께 뿌챠타(D. Putiata)대령 등 14명의 러시아교관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뿌챠타는 2,200명의 조선군을 훈련시켜 달라는 군부대신 李允用의 요구에 응하기에 앞서 조선군의 현황 파악에 착수하였다. 이에 정부가 러시아와 군사교관 파견 교섭을 벌였던 민영환을 군부대신으로 임명하여 군제개혁에 열의를 나타낸 지 이틀 뒤인 11월 4일에 러시아 교관단은 친위대 5개 대대 중 1개 대대의 정예병력 800명을 선발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때 선발된 군사들은 5개 중대로 나뉘어 보초임무와 체력단련 및 分·中·大隊 단위의 훈련을 받았고, 구식 레밍턴(Remington)소총과 러시아로부터 구입한 베르당(Berdan)소총 등으로 사격술을 익혔다.640) 그리고 1897년 2월 8일에 친위대는 1,070명으로 증원됨으로써 고종의 환궁에 대비하였다.

1897년 9월 30일에 친위대는 “군액이 가지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1·4대대를 통합하여 제1대대로, 제2·5대대를 통합하여 친위 제2대대로 개편됨으로써 총규모가 3개 대대로 축소되었다.641) 이러한 친위대 편제는 1902년 10월 30일에 1개 대대가 다시 증설되어 친위 2개 연대로 재편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친위대가 축소된 것과는 달리 제2차 개혁 때 공병 2개 대대를 시위 2개 대대로 개편함으로써 신설된 侍衛隊는 오히려 증설되었다. 1897년 9월 30일에 조칙으로 반포된<侍衛隊編制>에 의해 기존의 시위 2개 대대는 제1대대로 통합되고, 새로 선발한 군인들로써 제2대대가 편성되었던 것이다. 이어 1897년 5월 27일에 제3대대가 증설되어 시위 제1연대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642)

또한 국왕의 거동시 호위를 담당하는 扈衛軍이 증강되었다. 갑오경장에서호위대는 공병대에서 취용하였는데, 공병대가 해산된 뒤 친위 제3대대로 흡수된 상태였다. 따라서 1897년 6월 30일에 해산된 공병대 가운데 인원을 선발하되 시종원 시종 1명을 摠官으로 개칭하고 호위군을 새로 조직하여 시종원으로 소속시켰다. 그후 호위군은 630명의 호위대로 개편되었다.643)

중앙군제와 더불어 지방군제도 개편되었다. 1896년 5월 30일에 지방주둔 舊額兵을 재편성하여 기존의 평양·전주진위대 이외에 통영·대구·강화·청주·공주·해주·북청·춘천·강계 등 9곳에 地方隊를 설치하였다. 각 지방대는 지역의 형편에 따라 參領·正尉 등 장교를 비롯하여 병졸 각각 10그후 지방대의 주둔지는 6월 8일에 統營이 固城으로 바뀌었고, 8월 26일에는 병졸 150명 규모의 지방대가 충주0∼400명, 총 2,300명으로 구성되었다.644) ·홍주·상주·원주 등 4곳에 증설되었다가 9월 24일에는 고성·대구·강화·청주·해주·북청 등 6곳만 남겨두는 개편이 이루어졌다.645)

이러한 지방군의 증설·개편과정에서 1899년 1월 15일에는<鎭衛隊·地方編制 改正案>이 제정되어 지방군제가 정비되었다. 그리하여 지방군은 전주·평양의 2개 진위대대와 수원·강화·청주 등 14개의 지방대대로 편성되었다.646) 그 뒤 고성과 통천에 주둔했던 京軍이 철수하고 그 대신 고성지방대가 창설되었고, 의주·강계 등 4곳의 변경지방에 진위대대가 설치되었다. 이와 같이 진위대와 지방대로 나뉘어져 있던 지방군제는 1900년 7월 25일에 모두 진위대로 통합·개편되었다.647)

지방대 설치와 더불어 의병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의 각 군에는 砲手隊와 兵站이 설치되었다. 즉, 군 단위로 포수를 모집하여 15명을 1統으로 한 保護砲手를 조직하고 이를 頭領으로 하여금 영솔하도록 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放砲시험을 통해 優等砲手를 선발해서 호포와 전세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부여했다. 이 포수제는 주로 삼남지방의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시행되었으나 나중에는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의 국경지역에까지 확대되어 국방력의 증강에 일익을 담당하였다.648)

이와 같은 중앙군과 지방군의 개편은 황제의 통치권 강화에 직결된 것이었다. 1898년 6월 29일에는 외국의 大元帥制를 모방하여 황제가 육·해군을 친히 통솔하되 황태자를 元帥로 삼아 통솔케 한다는 조칙이 반포되었다. 이어서 1899년 6월 22일에는 황제가 국방·용병·군사에 관한 명령권과 군부 및 경·외 각부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도록 하는 취지의 元帥府가 창설되었다. 원수부는 국방 및 작전계획·군대편성 및 교육·부대검열·군인상벌 등의 권한을 가졌으며, 그 관원은 모두 무관 중에서 선임토록 하였다. 그 산하에는 군무국·검사국·회계국·기록국 등 4국을 두고, 각 국장은 칙명을 받아 각부 대신에게 통보하고 중앙과 지방 각 부대에 대한 명령권을 가졌다. 그 결과 종래 군령 사항을 관장하던 군부의 군무국은 폐지되고 말았다.649)

그후 1899년 8월 17일에 군권을 비롯한 입법·사법·행정권을 모두 황제에게 집중시키도록 한<大韓國國制>가 선포되었고, 그 다음날 군부관제가 개정됨으로써 군부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군부대신은 군비를 관리하고 각 관해와 요새를 감독하는 권한만 갖게 되었다.650) 그 결과 황제의 군령 발동 및 주요 군사정책의 결정은 원수부의 보좌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고, 군사정책과 집행은 군령기관인 원수부와 군정기관인 군부가 분담하는 二元體制가 성립되었다.651)

다음으로 갑오경장 중에 신설된 警務廳은 그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아관파천기에 일부 보수파 관료에 의해 경무청을 폐지하고 종전의 捕盜廳을 부활시키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지만 지방제도 개편과 더불어 각부의 警務署를 폐지하는 대신 漢城府에 경무청을 그대로 두고 그 지휘 아래 道에는 總巡·巡檢, 府에는 巡校·巡卒, 郡과 牧에는 巡校를 각각 두어 경찰업무를 맡아보도록 하는 조처가 단행되었다. 또한 인천·동래·덕원·경흥 등의 개항장에도 경무서가 설치되었다.652) 그후 경무청은 조직의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1900년 6월 12일 警部로 바뀔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상으로써 보건대, 갑오경장 중에 개편된 군사·경찰제도는 대한제국기까지 부분적으로 개편되기도 하였지만 기본체제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그 개편은 국가의 자주독립 유지보다는 황제권의 보위·강화와 정권 유지를 위한 국내치안에 치중했다는 한계를 지녔다.

638)≪韓末近代法令資料集≫2, 49∼50·77∼78·86쪽.
639)車文燮,<舊韓末 陸軍武官學校 硏究>(≪亞細亞硏究≫50, 1973), 174∼182쪽.
640)李玟源,<고종의 환궁에 관한 연구>(≪한국근현대사연구≫1, 1994), 15∼22쪽.
641)≪韓末近代法令資料集≫2, 286쪽.
642)≪韓末近代法令資料集≫2, 286·359∼360쪽.
643)≪韓末近代法令資料集≫2, 263·295∼296쪽.
644)≪韓末近代法令資料集≫2, 83∼85쪽.
645)≪官報≫, 1896년 10월 19일.
646)≪韓末近代法令資料集≫2, 437∼440쪽.
647)宋炳基, 앞의 글(1976b), 63∼64쪽.
648)鄭求福,<갑오개혁 이후의 新軍制>(≪한국군제사≫, 陸軍本部, 1977), 370∼371쪽.
649)≪韓末近代法令資料集≫2, 504∼508쪽.
650)≪韓末近代法令資料集≫2, 543∼545쪽.
651)조재곤,<대한제국기 군사정책과 군사기구의 운영>(≪역사와 현실≫19, 1996), 118∼120쪽.
652)≪韓末近代法令資料集≫2, 115∼126·147∼14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