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2권 대한제국Ⅱ. 대한제국기의 개혁1. 대한제국의<국제>및 군사제도1)<대한국국제>의 제정 과정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1. 대한제국의 성립 배경
          • 1) 청일전쟁 이후 동아정세의 변화
          • 2) 조선의 위기와 정부의 대응
        • 2. 고종의 황제즉위 과정
          • 1) 황제즉위의 논리
          • 2) 고종의 황제즉위식
        • 3. 대한제국의 성립과 열국의 반응
          • 1) 국호 ‘대한’의 제정과 반포
          • 2) 열국의 승인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1. 대한제국의<국제>및 군사제도
          • 1)<대한국국제>의 제정 과정
            • (1) 교전소의 설치
            • (2) 법규교정소를 통한<대한국국제>의 제정
          • 2)<대한국국제>의 내용과 역사적 성격
            • (1)<대한국국제>의 내용
            • (2)<대한국국제>의 역사적 성격
          • 3)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 (1) 군제개혁의 방향
            • (2) 원수부를 통한 황제권 강화
          • 4) 중앙 및 지방군의 기능과 역할
        • 2. 광무양전·지계사업
          • 1) 양전사업의 추진 배경과 목적
          • 2) 양지아문의 설립과 양전시행
            • (1) 양지아문의 토지측량과 광무양안
            • (2) 광무양안과 ‘시주’의 성격
          • 3) 지계아문의 설립과 관계발급사업
          • 4) 광무양전·지계사업의 성과와 의의
        • 3. 산업진흥정책
          • 1) 광무정권과 궁내부
          • 2) 광무년간의 근대화정책
            • (1) 교통·운수업
            • (2) 화폐·금융
            • (3) 상공업
            • (4) 광산
        • 4. 대한제국기의 자강·구국교육정책
          • 1) 경본예참의 국가주의 자강교육
          • 2) 국민주의 자강교육
          • 3) 구국교육정책과 의무교육운동
        • 5. 대한제국기의 재정정책
          • 1) 재정정책 기조의 변화
          • 2) 정부세입의 축소와 황실수입의 확대
            • (1) 정부세입의 만성적 부족
            • (2) 재원의 내장원 이관과 황실수입의 확대
          • 3) 황실·군사부문의 지출 증대와 황실의 자금 축적
            • (1) 황실·군사비의 팽창과 행정·사업비의 축소
            • (2) 황실재정의 지출 양상과 여유자금의 축적
      • Ⅲ. 러일전쟁
        • 1. 러일전쟁의 배경
          • 1) 러일전쟁과 한국
          • 2)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 국제관계
          • 3) 의화단사건과 열강관계
          • 4) 영일동맹과 러일협상
        • 2. 러일전쟁의 경과와 전후처리
          • 1) 러일전쟁의 경과
          • 2) 전후처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
            • (1) 영일동맹의 개정
            • (2) 태프트-가츠라밀약
            • (3) 포츠머스조약
          • 3) 러일전쟁과 한국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1. 국권의 제약
          • 1) 한일의정서와 부수협정의 체결
          • 2)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와 을사5조약
            • (1)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 정책과 국제적 승인과정
            • (2) ‘보호’조약 체결을 위한 사전공작
            • (3) 을사5조약의 체결
        • 2. 통감부 설치기의 통치체제
          • 1) 보호국체제와 통감부
            • (1) 보호국체제
            • (2) 통감과 통감부의 권한
          • 2) 통감부의 군사·경찰제도
            • (1) 러일전쟁과 한국주차군의 탄생
            • (2) 군사제도
            • (3) 헌병경찰제도
        • 3. 통감부의 식민지화 정책
          • 1) 식민지화의 기반조성
            • (1) 만한경영론
            • (2) 경제의 장악과 이식민 촉진을 위한 기반 조성
            • (3) 군사기지화 작업
            • (4) 행정·사법제도의 개정
            • (5) 기타 식민지화를 위한 기반조성
          • 2) 통감부시기 재정제도의 개편
            • (1) 일제의 재정제도 이식과 재정기구 장악
            • (2) 식민지화를 위한 재정운영-세입·세출예산 분석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1. 고종의 국권회복 노력과 강제퇴위
          • 1) 밀사파견 외교의 전개
          • 2) 고종의 통치권 회복 시도
          • 3) 이완용 내각의 성립과 고종의 강제퇴위
        • 2.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
        • 3. 군대해산과 사법권 피탈
          • 1) 군대해산과 의병봉기
          • 2) 일제의 사법권 장악
        • 4. 일진회의 합방청원운동
          • 1) 일진회의 창립과 정계진출
          • 2) 3파연합과 합방청원운동
        • 5. 한일합병조약의 체결
          • 1) 일본정부의 한국병합 방침
          • 2) 병합조약의 체결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1. 대한제국의<국제>및 군사제도

1)<대한국국제>의 제정 과정

(1) 교전소의 설치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법률체계는 1899년 8월 17일 반포된<大韓國國制>이다. 따라서 이<국제>를 제정 반포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당시의 입법기구 설치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부터 경운궁으로 돌아온 직후인 건양 2년(1897) 3월 16일 전·현직 대신들을 불러 이들로부터 정치현황과 민심의 동향 및 제반 時弊와 그 해결책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신법과 구법을 절충하면서 법전을 편찬하자는 건의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고종은 당시의 상황을 國政을 새롭게 운영할 ‘更張의 기회’로 생각하고, 신구 관제와 제반 법규 정비를 위한 기관을 특설하고 인원을 선정하라는 조칙을 내렸다.064) 이에 따라 그것을 담당할 기구로 중추원에 校典所가 설치되었고, 같은 달 23일 의정 金炳始, 궁내부특진관 趙秉世·鄭範朝를 교전소 총재대원에 임명한 것을 비롯하여, 찬정 金永壽·朴定陽·尹容善, 외부대신 李完用을 부총재대원에, 각 부 고문관인 미국인 르젠드르(李善得;Charles W. LeGendre)·그레이트하우스(具禮;Clarens R. Greathouse), 영국인 브라운(柏卓安;John M. Brown)과 徐載弼을 교전소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이들은 4월 12일 제1차 회의를 열어<校典所議事規則>(전문 16조, 부칙 3조)을 제정하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정례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4월 15일의 제2차 회의에서는 金嘉鎭·權在衡·李采淵·成岐運·尹致昊·李商在·高永喜 등과 같은 개화 행정관료를 知事員으로 선정하여 실무를 담당케 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같은 달 19일의 제3차 회의에서 참서관과 관제조사위원·형률조사위원 및 보조원을 두었으며 국한문기록위원(金重煥)·영문기록위원(朴鎔圭)도 임명하였다.

 교전소는 대한제국 성립에 즈음하여 보수적인 분위기가 점증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여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조야의 여론을 바탕으로 하여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향후 정국을 국왕 중심의 구도로 재편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구성원을 보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교전소는 어느 특정 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즉,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김병시·조병세·정범조·김영수 등 정부내의 원로 관료세력, 아관파천을 주도하여 친러·친미내각을 형성시킨 이완용·박정양 등 이른바 정동구락부 세력, 외국인 고문관 그룹이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국제법과 세계대세에 밝은 외국인 고문관 등을 참여시킨 데에는 서양의 근대적 법체계를 도입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의도로 설립한 교전소는 그 본래의 사업을 달성하지 못했다. 교전소가 이렇다할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원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위원들 간의 정치적 이해와 입장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군주권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였다.

 고종이 애초 의도한 바와 달리 중추원고문 서재필은 교전소를 의회정치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의 입법기관으로 삼아, 박정양 및 개화파 소장관료를 중심으로 교전소의 작업을 통해 법률과 규례 제정의 체계화를 이루어 오히려 군주권을 제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때문에 방향을 달리하는 르젠드르 등 다른 위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갈등을 일으켰다.065) 급기야 위원들 중 사직한 자들도 많았고 또한 회의에 참석치 않는 자도 있게 되었다. 고종 역시 서재필이 교전소를 주도하는 것을 기피하여 4월말의 회의를 끝으로 교전소의 활동은 별다른 성과없이 흐지부지 되었다.066)

064)≪秘書院日記≫고종 13책, 건양 2년 2월 14일.
065)尹致昊,≪尹致昊日記≫5, 1897년 7월 2일(國史編纂委員會, 1975), 71∼72쪽.
066)≪독립신문≫, 건양 2년 5월 11일.

愼鏞廈,≪獨立協會硏究≫(一潮閣, 1976), 56쪽 참조. 그렇지만 교전소는 명목상 계속 유지되었으며,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은 법규교정소 설립 직후인 1899년 7월 10일 法規校正所 총재 尹容善의 奏에 의해서였다. 이때까지 교전소 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도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