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Ⅰ. 외교활동1. 한반도 중립화 운동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갑신정변 후의 ‘天津條約’(1885. 4. 18)으로 청·일간의 패권경쟁이 일정한 거리유지하의 물밑 경쟁으로 들어간데다가, ‘朝露修好條約’(1884. 7. 7)과 ‘朝露密約說’(1885. 2)에 자극받은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함으로써(1885∼1887), 바야흐로 조선사정은 청·일본·러시아·영국이라는 다극체제하의 국제분쟁지역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외적으로 제기된 한반도 중립화론은 그야말로 百家爭鳴이었다.

독일외교관으로서 당시 조선에 건너와 활동하고 있던 외아문협판 묄렌도르프(P. G. Von Moellendorff)와 부영사 부들러는 거문도사건 이전부터 이미 조선의 중립화를 위한 그들 나름대로의 구상을 전개하고 있어 주목된다.

≪묄렌도르프文書≫0016)에 의하면, 묄렌도르프는 조선이 중립화해야 할 이유로서 청·일 양국의 정치세력이 너무나 강대하여 조선으로서는 사실상 독립할 능력이 없음을 들고 청·일 이외의 제3국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보호를 받도록하는 것이 良策이라고 한 다음,0017) 러시아가 주도하는 조선중립화규정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조선의 중립 및 불가침에 대하여 청과 일본이 공동으로 보장하고 청·일에 대한 상호보장관계의 유지, 둘째, 군사적 방위관계의 명시, 셋째, 조선영토불가침에 대한 일반적 관계의 보장 등이었다.0018)

이와 같은 묄렌도르프의 조선중립화 구상은 다른 문서에서도 “묄렌도르프가 조선이 러시아·청·일본의 공동보장하에 벨기에와 같은 중립국이 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0019)

한편 부들러는 1885년 2월 7일 金允植 외아문독판에게 제출한<淸·日交戰에 조선이 中立傍觀하기를 勸告하는 意見書>0020)라는 글을 통하여, 약소국이 중립화하면 당사국의 안전보장은 물론 그 受惠가 실로 크다는 것을 말하고 역사상의 예로서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1871) 당시의 스위스를 떠올리면서 조선도 지리적 여건이 이와 유사하므로 청·러시아·일본이 보장하는 영세중립을 제안하고 아울러 국가자위력의 확보와 열국과의 수호통상도 병행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 독일인들이 제기한 한반도 중립화론의 공통된 성격은 수개 세력이 조선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임으로써 조선의 안전이 우려되고 있을 때 안전보장 방법의 하나로서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제3국 출신이 중립화를 권고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안은 청·일 양국에 의한 조선의 주권침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하에 제3국을 끌어들이거나 국제조약에 의한 보장을 중시하면서 자위력의 구비도 고려하였다. 그러나 본국 정부가 조선에서 實益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를 공식 견해로 채택하지 않았고 따라서 외면당하고 말았다.

조·러수교로 러시아의 조선 진출이 현저해질 뿐만 아니라 영국·러시아 간의 아프간 분규가 1885년 10월에 이르러 양국의 충돌 없이 수습됨에 따라 영국이 거문도를 계속 점령하고 있었으므로 청은 영국 정부에 철수 문제를 거론하여 담판하게 되었고,0021)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영국측에서 그들의 거문도 철수조건으로 내 놓은 것이 한반도의 중립화였다.

영국 외상 로오즈베리(Archibald Philip Primrose Rosebery)는 1886년 4월 중순경에 거문도 철수조건으로서 러시아를 비롯한 관계 제국과 조선독립을 보증하는 국제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의했는데,0022) 이러한 제의는 영국 외무차관 커어즌(Ceorge Nathaniel Curzon)이 언급한바 “영국은 어느나라든지 조선국을 침략하거나 병탄한다면 벨기에를 정복하는 것과 동일시하여 결코 묵과할 수 없다”0023)고 한 내용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러한 영국측의 논의들은, 조선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국가가 다른 지역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어느 특정국이 조선으로의 세력팽창을 시도할 때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제기한 경우이다. 이를테면,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저지라는 그들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반도 중립화를 거론한 것인데, 이 경우도 이해관계 당사국간의 세력균형에 중점이 있을 뿐이고 한반도 중립화 자체는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거문도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사정이 청·일본·러시아·영국 등의 4강에 포위당하는 듯한 형국을 보이게 되자 조선의 조야에서도 중립론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외아문독판 김윤식은 1885년 5월 20일 주조선독일총영사 젬부쉬(Otto Zembsch)를 찾아가서 거문도사건에 대처하여 “조선은 강한 이웃 나라의 침해에 대해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약소국이므로 묄렌도르프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바와 같이, 조선을 유럽에서의 벨기에와 같은 지위를 만들고자 한다”는 뜻을 말하더니,0024) 6월 25일과 27일에는 조선 정부의 공식적인 의사표시 차원에서 김윤식 자신의 명의로 조약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한을 보냈다.

다른 나라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는 조선은 중립을 지켜야 하며, 또한 조선은 어떠한 국가에도 국토를 빌려주든가 일시적인 점령을 허용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은 국제법에서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 (≪舊韓國外交文書≫15:德案 1, № 147, 73쪽, 고종 22년 음력 5월 13일).

이와 같이 김윤식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정부측의 중립화 구상은 국가자위력을 바탕으로 직접 중립화를 이룬 스위스의 예를 택한 것이 아니고 조선의 현실을 직시한 바탕 위에서 강대국들의 합의에 의하여 비무장중립이 보장된 벨기에의 예를 택하려 한 것이었다.

1880년대에 한반도 중립화를 제시한 내국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兪吉濬이다. 그는<中立論>을 비롯한 몇 편의 글을 통하여 한반도 중립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첫째, 청이 조약의 주창자가 되어 영국·프랑스·일본·러시아 등 아시아지역과 관계가 있는 열강들을 회동하도록하고 그 자리에 조선을 참여시켜 공동으로 조약문을 작성하면 되고,0025) 둘째, 조선의 중립화 모델로는 조선의 대내외적 상황이나 국제정치적 위치가 비슷한 벨기에 형과 불가리아 형의 절충형이 되어야한다고 설명하였다.0026) 또한 그는 이렇게하여 조선이 중립화되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큰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강대국들의 相保政略도 되는 이중효과가 있다고 하였으며,0027) 그 실현시기로는 조·러밀약설과 天津條約 체결, 거문도사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청·일본·러시아·영국의 각축이 절정에 달하던 1885년 이후야말로 최적의 시기이고 분위기도 무르익었다고 보았다.0028)

유길준의 한반도 중립화 주장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화파 金玉均도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하였다. 그가 1886년 7월에 망명지인 일본에서 쓴<與李鴻章書>라는 글을 보면, 조선을 중립국화하여 萬全無危의 땅으로 만들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당시 조선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청국이 주도하여 구미열강들과 공론을 형성, 외교적으로 상호간의 합의를 도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렇게 하여 조선이 중립국이 된다면 이는 조선 단독만의 幸일 뿐만 아니라 청에게도 得策이 된다고 하였다.0029) 이처럼 김옥균은 열강간의 세력균형이라는 현실의 사태를 깊이 통찰하여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을 생각한 다음 한반도 중립화구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조선의 조야에서 제기된 중립화론의 동기 구조를 보면, 결론적으로 조선의 입지가 경쟁적 양대세력 사이에 개재하였기 때문에 양대세력의 개전으로 국토가 유린되는 것을 방지해야겠다는 순수한 동기에서 제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스스로가 선호하여 상정한 중립화 협의 주도국들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국가들임으로 해서 그 발상 자체가 국제적 상황판단에 대한 미숙성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제안동기마저 퇴색시켜버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유길준과 김옥균은 조선이 침략을 당하면 淸도 脣亡齒寒의 위기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청이 중립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청·한 종속관계를 고집하는 청이 이에 응할 까닭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구상은 단순히 급박한 상황을 탈피해보고자 하는 도피적인 제안 내지는 국제체계의 변모에 따라 급조한 미봉책일 뿐이었다.

0016)1930년에 라이프찌히에서 첫 출판된 이 문서는 흔히 ‘묄렌도르프自傳’으로 불려지지만 사실은 그가 조선에 재직하던 당시에 남긴 일기와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대본으로 하여 그와 꼭 같은 체험을 나눈 아내 로잘리(Rosalie von Moellendorff)가 회상의 형식으로 쓴 傳記이다(묄렌도르프夫婦 지음, 申福龍·金雲卿 옮김,≪묄렌도르프文書≫, 평민사, 1987, 1쪽).
0017)위의 문서, 67∼68·85쪽.
0018)위의 문서, 85쪽.
0019)Politisches Archiv des Auswärtigen Amts, Acta betreffend Korea(이하 Pol.Arch.A.A., Korea로 약칭) I, Bd.4 A 1559 pr.9.März 1885(Söul, den 14.Januar 1885), A3016, pr.21. April 1885(Peking, den 18. Februar 1885), Korea 2, Bd.2 A6926 pr.24. August 1885 p.m.(Söul,den 29,Juni 1885).
0020)≪舊韓國外交文書≫15:德案 Ⅰ, № 95, 49∼50쪽.
0021)渡邊勝美,<巨文島外交史>(≪普專學會論集≫1, 1935), 40∼41쪽.
0022)渡邊修二郞,≪東邦關係≫, 325쪽.
0023)≪秘書類纂-朝鮮交涉資料≫中, カルソン氏 抄譯<極東問題>, 176쪽.
0024)Pol.Arch.A.A., Korea 2, Bd.2 A 6926 pr.24. August 1885 p.m.(Söul, den 29. Juni 1885).
0025)兪吉濬,<中立論>(≪兪吉濬全書 Ⅳ:政治經濟編≫, 一潮閣, 1971), 327쪽.
0026)<中立論>, 320∼321쪽.
0027)<中立論>, 321쪽.
0028)姜萬吉,<兪吉濬의 韓半島中立化論>(≪分斷時代의 歷史認識≫, 創作과 批評社, 1979), 916쪽.
0029)金玉均,<與李鴻章書>(≪金玉均全集≫, 亞細亞文化社, 1979), 15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