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외국 식음료의 전래
조선의 술은 쌀이나 수수 또는 보리로 담그는데 강도나 색깔이나 맛이 맥주와 브랜디의 차이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멜(Hendrik Hamel)에서부터 최근의 미국인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찾아온 많은 방문객들은 조선 사람들이 맥주에서부터 위스키에 이르기까지 온갖 독주를 모두 좋아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미국 공사였던 알렌(Horace N. Allen)은 각 부 대신을 정동의 자택에 초대하여 칵테일파티를 열어 조선의 고관들과 브랜디와 포도주를 마셨다고 한다.983)
커피는 1892년 구미 제국들과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국 사신들이 궁중에 드나들면서 커피를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궁중과 친히 지냈던 알렌이나 왕비 전속 女醫였던 홀튼(Lillias S. Horton) 등이 喫茶法을 궁중에 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서양이나 일본을 왕래하던 인사들은 커피를 마신 경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유길준은≪西遊見聞≫에 커피마시는 풍습을 소개하였다.
특히 왕가에서는 커피를 즐겨서 마셨는데 고종은 俄館播遷(1896)으로 러시아 공관에 있는 동안 익숙해져서 아주 좋아하였다고 한다. 1898년 고종의 탄일 잔치 다음날에는 경운궁(현 덕수궁) 청목재에서 친척, 대신들과 어울려 커피를 마셨는데 이때 커피에 아편을 탄 음모사건까지 있었다.984)
1902년 손탁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자리에 서양식 호텔을 개업하였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985) 1910년경 지금의 세종로에서 프랑스인 부레상이 나무시장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가 매일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메고 다니면서 나무장수들에게 따라 주었는데 이를 ‘양탕국’이라 하여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986)
<韓福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