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2. 해외민족운동5) 일본(1) 1910·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상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1. 무단통치체제의 확립
          • 1) 총독지배체제의 형성
          • 2) 조선총독 지배하의 탄압기관
            • (1) 헌병경찰체제
            • (2) 사법기관
            • (3) 군대
        • 2. 식민지 수탈구조의 구축
          • 1) 토지조사사업과 토지수탈기반의 마련
            • (1) 토지조사사업의 전사
            • (2) 토지조사사업의 실시와 그 성격
            • (3)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집적
          • 2) 수탈을 위한 농업정책과 한국농민의 고난
            • (1) 관권의 농사 개입
            • (2) 면화재배의 강요
            • (3) 식민지적 수탈의 강화
            • (4) 몰락 농민의 증가
            • (5) 한국농민의 저항
          • 3) 임야조사사업과 국유림의 창출
          • 4) 광업과 어업의 장악
            • (1) 광업의 장악
            • (2) 어장의 장악
          • 5) 금융·재정의 식민지적 재편
            • (1) 금융의 장악
            • (2) 재정의 재편
          • 6)<회사령>과 기업활동의 억압
            • (1) 한국강점 이전의 일본자본 침투
            • (2)<회사령>의 시행과 기업발흥의 억압
            • (3) 일본자본의 왕성한 침투
            • (4) 노동구조와 노동쟁의
          • 7) 교통·운수·통신의 지배
          • 8) 무역의 대일 종속
        • 3. 식민지 지배체제의 특질
          • 1)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주의
            • (1) 무단통치에 의한 지배체제 구축기(병합∼3·1독립운동)
            • (2) 회유정책에 의한 민족개량화기(3·1독립운동∼중일전쟁)
            • (3) 민족말살을 통한 전시강제동원기(중일전쟁∼패전)
          • 2) 조선 총독의 권력
          • 3) 식민지 통치구조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1. 국내민족운동
          • 1)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배경과 경향
            • (1) 배경
            • (2) 국내민족운동의 경향과 특징
          • 2) 의병계열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독립의군부
            • (2) 풍기광복단
            • (3) 민단조합
            • (4) 이증연의 비밀결사
          • 3) 계몽운동계열의 단체
            • (1) 기성볼단
            • (2) 조선국권회복단
            • (3) 조선산직장려계
            • (4) 단천 자립단
            • (5) 영주 대동상점
            • (6) 송죽회
            • (7) 애국창가집 편찬, 배포와 관련된 민족교육투쟁
          • 4) 혁명적 경향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광복회
            • (2) 선명당
            • (3) 흠치교의 비밀결사
            • (4) 청림교의 비밀결사
            • (5) 조선국민회
          • 5)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성격
        • 2. 해외민족운동
          • 1) 만주
            • (1) 북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2) 서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3) 북만 밀산부지역
          • 2) 러시아
            • (1) 러시아혁명 이전의 독립운동
            • (2) 러시아혁명 이후의 독립운동
          • 3) 중국 관내지역
            • (1) 한인의 이주와 한인사회의 형성
            • (2) 중국혁명세력과의 연대 구축
            • (3) 한인단체의 활동과 독립운동의 기반조성
          • 4) 미주
            • (1) 미주 한인사회의 형성과 한인단체의 결성과정
            • (2) 통일연합기관 설치와 독립군기지 개척운동
            • (3) ‘합병’ 반대투쟁과 군인양성운동
            • (4) 국민국가 수립론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설립
          • 5) 일본
            • (1) 1910·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상태
            • (2) 191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3) 2·8운동
            • (4) 192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Ⅲ. 3·1운동
        • 1. 3·1운동의 배경
          • 1)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정세
          • 2) 해방과 평등의 새로운 사조 등장
          • 3) 독립운동의 새 기운
          • 4) 국내 상황
            • (1) 식민지 지배의 압박과 고통
            • (2) 식민지 지배의 모순 격화와 민생 피폐
          • 5) 3·1운동의 태동
            • (1) 상해 신한청년단의 활동과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
            • (2) 2·8독립선언
            • (3) 광무황제의 붕어와 인산
        • 2. 3·1운동의 전개
          • 1) 3·1운동의 초기 조직화
            • (1) 민족대연합전선의 형성
            • (2)<독립선언서>준비
            • (3)<독립선언서>의 배포와 최후의 회담
          • 2) 3·1운동의 발발
            • (1)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 (2) 만세시위운동의 시작
            • (3) 국내의 만세시위운동
        • 3. 3·1운동의 해외 확산
          • 1) 중국 만주
            • (1) 북간도의 시위운동
            • (2) 서간도의 시위운동
          • 2) 러시아 연해주
            • (1) 러시아혁명과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
            • (2) 파리 강화회의 대표파견
            • (3) 전로국내조선인회의
            • (4) 독립선언과 시위운동의 전개
            • (5) 국내진공 계획과 노인동맹단의 독립운동
          • 3) 미주
        • 4. 3·1운동의 영향과 의의
          • 1) 3·1운동에 대한 열강의 반응
            • (1) 중국
            • (2) 미국
            • (3) 영국
          • 2)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 (1)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
            • (2)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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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1910·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상태
가. 1910년대의 상태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도일정책은 집단적인 노동자 관리를 목표로 하여 단계적으로 취해졌다. 이 1910년은 일본지역의 조선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520)

 1910년대 일제는 일본의 경제상황 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관련 속에서 도일정책521)을 수립하고 운영했다. 정치나 경제상황의 변화에 의해 도일정책은 내용을 달리하게 되는데, 강제병합 직후 조선총독부의 도일정책은 당국의 관리 아래 합법적인 테두리내에서 조선인의 도일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도일관리를 담당한 부서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보안과였다. 경무총감부는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1910년 6월에 만들어졌는데, 보안과는 ‘한·일인 외국여권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여권업무가 도일관리는 아니었다. 보안과가 도일 노동자의 도일을 본격적이고 직접적으로 관리한 것은 1913년부터이다. 1913년 4월 24일 경무총감부 보안과장이 발표한 통첩<保安親發>(21)522)에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도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도일관리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①일본의 사업에 종사할 노동자를 조선내에서 모집하고자 하는 사람은 도 경무부장이나 경무총장의 인가를 받을 것, ②허가원서에는 고용주의 사업·소재지·노동의 종류·모집인원·남녀별 인원·모집구역·모집기간 등을 기입하고, 고용계약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여 첨부할 것, ③모집조건으로 14세 이상, 20세 이하인 경우는 부모나 호주의 허락을 받을 것. 기혼여성의 경우는 남편의 허락을 받을 것. 고용중인 자를 모집·권유하지 말 것. 필요한 경우에는 응모자의 민적 등본을 제시할 것, ④노동자를 일본에 도일시킬 때에는 응모자의 명단과 모집허가증을 승선지 경찰서장에게 제출할 것 등.

 실제로 1909년까지 790명에 불과하던 조선인은 1911년에는 2,500여 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그 후 점진적인 증가를 보여오던 조선인수는 1917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호황기를 맞은 일본회사의 본격적인 조선인 노동자모집으로 다시 대폭적인 증가를 보였다. 조선인의 일본 도일은 1916년까지와 달리 1917년에는 1만 4천 명, 1918년 1만 8천 명, 1919년 약 2만 명, 1920년에는 2만 7천 명이 되었고, 재류자의 숫자는 1917년 1만 4천5백 명, 1919년 2만 6천6백 명, 1920년에는 3만 명이 넘었다.523)

 1910년대 이후 도일한 조선인은 일본 전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의 거주 상황은 일본의 산업구조 및 노동조건과도 관련을 갖는다.

연도 거주 한국인 수 연도 거주 한국인 수
(1) (2) (3) (1) (2) (3)
1911 2,527   5,728 1921 38,651 48,774 62,404
1912 3,171   7,796 1922 59,722 82,693 90,741
1913 3,635 3,952 10,394 1923 80,415 112,051 136,557
1914 3,542 4,176 12,961 1924 118,152 168,002 172,130
1915 3,917 5,064 15,106 1925 129,870 187,102 214,657
1916 5,624 7,225 17,972 1926 143,798 207,853 247,358
1917 14,502 17,463 22,218 1927 165,286 246,515 308,685
1918 22,411 27,340 34,082 1928 238,102 341,737 358,121
1919 26,605 35,995 37,732 1929 275,206 387,901 398,920
1920 30,189 40,755 40,755        

<표>1910·19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추이

*(1)≪日本帝國統計年鑑≫.
 (2) 朴在一,≪在日朝鮮人に關する綜合調査硏究≫, 新紀元, 1957, 23∼29쪽.
 (3) 田村紀之,<內務省警報局調査による朝鮮人人口(1)>,≪經濟と經濟學≫46, 1981, 58쪽).

 1910년대 전 시기를 통해 볼 때, 훗카이도(北海道)·후쿠오카(福岡)·오사카(大阪)·효고(兵庫) 등에서 조선인 증가율은 급증하고 있다.524) 이들 지역 가운데 줄곧 1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는 곳은 오사카와 후쿠오카이다. 일본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넓은 노동시장과 비교적 나은 노동조건으로 인해 조선인 노동자는 오사카로 밀집하게 되었다. 또한 먼저 터전을 잡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찾아 오사카로 향하는 조선인들의 도일이 늘어남에 따라, 오사카 거주 조선인수는 점차 증가했다.

 이에 비해 후쿠오카는 1910년대 일본 최대의 광산지인 큐슈(九州)에서도 가장 조선인이 밀집한 지역으로 대규모 탄광이 있었다. 후쿠오카는 노동조건의 열악성으로 인해 항상 노동자의 이동이 잦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지역 조선인 증가율은 낮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후쿠오카가 갖는 지리적인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후쿠오카는 관부연락선의 종착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도일 조선인에게 관문의 역할을 했다.

 재일조선인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은 노동자였다.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 경제의 발달에 따라 나타나게 된 하층 노동력의 수요 급증에 따라 도일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노동운동세력의 양적인 성장과 운동의 지속성은 일본 기업주와 당국에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고,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었다. 그 결과 고안된 대책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었다. 당시 일본 노동운동세력은 그 대상을 외국인이 아닌 일본인만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당국은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를 통해 일본 노동운동의 세력약화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10년대에 일본 기업가들이 고용한 일본인 노동 브로커들은 가슴에 금시계를 달고 양복을 입은 노동자 모집용 조선인 노동자를 내세워 농촌을 돌면서 조선인 노동자를 유치하기에 이르렀다.525)

 도일 조선인 노동자의 증가는 국내 노동자 부족과 임금상승이라는 사태를 낳기도 했다. 특히 일본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모집이 집중되었던 경상남도의 경우 노동자 부족은 심각했다. 1918년 8월에 운수노동자·토목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주는 총독부에 노동자모집 단속을 엄격히 해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526)

 밀항은 방법상에서 다소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1910년대부터 사용된 도일방법이었다. 즉 취업연령에 미달한 노동자나 취업이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도일 희망 조선인, 모집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회사가 일본의 도일저지책을 피해 도일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1915년의 경우, 1회의 밀항으로 오사카 거주 조선인의 25%에 달하는 인원이 도일했다. 이러한 밀항은 1년에 여러 차례 이루어졌으므로 1910년대에는 다수의 조선인이 밀항에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밀항을 단행한 조선인에 대해 불법 도일 자체를 악용한 일본인 고용주는 구속을 강화하여 더욱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1910년대 이전에 재일조선인인 가운데는 유학생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 1881년에 첫 유학생이 일본 땅을 밟은 이후 1910년대까지 재일 조선인수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은 유학생이었다.

 조선인의 일본 유학은 1920년 유학규정이 폐지될 때까지 유학원서를 도지사를 통해서 조선총독부에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당시 유학생들의 대부분은 지주·매판자본가·고등 관료들의 자식들이었다. 이러한 일본 유학은 실제로 조선의 학생청년들에게는 이중적이었다. 하나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조응하여 지배계급에 부분적으로 편입하는 길과 다른 하나는 식민지 본국인 일본에 가서 제국주의의 실상을 파악하고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조선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527)

 일본 유학은 1904년부터 본격화되는데, 물론 이것은 국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528) 1904년 이후의 일본 유학은 민간주도로 근대학문을 배우기 위한 사비생 중심의 반일감정이 강한 유학이었다. 이들 유학생의 88%가 東京의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전체 유학생의 97%가 남성이었으며, 사비생이 91%였다. 그리고 주로 정치·법률·경제·실업 등의 전문교육을 받았다. 이들 유학생의 출신지를 보면, 서울 출신이 24%로 가장 많고, 평안도 출신이 23%였다.

 1910년 이후 일본 유학은 새롭게 전개되었다. 즉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에게 망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국내에 제대로 된 학교가 부재하던 가운데 근대적인 국가로 성장하여 조선을 침탈한 일본은 일정하게 새로운 지식의 보고였다. 실제로 한일합방에 의해 일본 유학은 일시적인 감소현상을 보였는데, 1910년대를 통해 평균적으로 500∼600명의 수준을 유지했다.529) 그 이전 시기 유학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10년대 유학생은 東京의 사립학교에 재학한 남성 사비유학생이 중심이었고, 대학과 전문학교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공부했다. 특히 고등교육기관에서 공부한 경우는 주로 법정·경제·사회과를 전공했다.

 한편 관비유학생의 경우 그 추이를 보면, 1909년 52명, 1910년 32명, 1911년 44명, 1912년 50명, 1913년 47명, 1914년 47명, 1915년 26명, 1916년 29명, 1917년 17명, 1918년 30명, 1919년 47명이었다. 이들의 전공분야는 조선총독부의 의도에 따라, 농림·수산·의학·공업·상업분야에 편중되었고, 정치·법률의 전공자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사비유학생의 유학경향과는 대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12월 말 현재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총수는 589명이었고, 이 가운데 456명이 東京에 거주했으며, 1918년 말은 769명 가운데 642명이 동경에 거주했다. 아울러 1919년 5월 총수는 366명이고 310명이 동경에 거주하고 있었다. 5월에 유학생의 총수가 현저하게 준 이유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한 유학생이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1920년 유학생의 총수는 1,023명으로 1920년이 되면 문화통치의 영향으로 재일유학생의 수가 급증했다.

 이들 조선인 유학생이 1920년 현재 주로 다닌 동경 시내의 대학과 전문학교는 明治大學·日本大學·中央大學·早稻田大學·東洋大學·慶應大學·專修大學 등이었다.530) 전공은 법정·경제·사회 등이었다.

520) 이후 자세한 1910년대 재일조선인 도일정책에 대한 내용은 정혜경,≪일제하 在日조선인 민족운동의 연구-오사카지방을 중심으로-≫(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9) 참조.
521) 水野直樹는 1910년<칙령>352조의 규제가 풀린 이후 1911년부터 1918년까지도 도일관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水野直樹,<朝鮮總督府の內地渡航管理政策-1910年代の勞動者募集取締>,≪在日朝鮮人史硏究≫22, 1992, 26∼27쪽).
522) 脇野義雄,<內地行朝鮮人勞動者の槪況>(≪警務彙報≫150, 1917년 11월 1일, 雜錄).
523) 朴慶植,<일본에서의 3·1독립운동>(≪西巖趙恒來敎授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아세아문화사, 1992), 725쪽.
524) 이하의 내용은 정혜경, 앞의 책.
525) 고승제,≪한국이민사연구≫(장문각, 1973년), 236∼237쪽.
526)≪大阪朝日新聞≫鮮滿版, 1918년 8월 18일.
527) 김인덕,<학우회의 조직과 활동>(≪국사관논총≫66, 국사편찬위원회, 1995), 114쪽.
528) 朴己煥,≪近代日韓文化交流史硏究-韓國人の日本留學-≫(大阪大 博士學位論文, 1998), 28쪽.
529) 이하의 내용은 별도의 주가 없으면 金仁德,<일본지역 유학생의 2·8운동과 3·1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1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9) 참조.
530)<在內地朝鮮學生狀況>(朴慶植編,≪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1), 300∼30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