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녹도
鹿島는 두만강 건너편에 있는 삼각주에 생긴 동리인데, 블라디보스톡의 인사들이 녹도지방으로 와서 4월 7일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정하고 4월 6일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각 부락 유력자 및 각 학교를 방문하여 선언서를 배부하였다.
4월 7일 녹도지방 주민들은 태극기를 게양하고 크게 기세를 떨쳤다. 학생들은 열광적으로 만세를 불렀다. 오후부터는 노령 및 중국령 각 지역에서 학생 등이 집합하기 시작하여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중국령 防川洞 서당교사는 약 30명의 학생들을 지휘하여 나팔을 불고 만세를 고창하면서 집합시키고 시위를 벌였다. 오후 3시경에는 녹도 부근 고지에서 약 1,00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연달아 부르고 해산하였다.672) 4월 9일 九沙坪 거주 한인 유력자 李甲長의 환갑잔치에 근교에서 약 200여 명이 모였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감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여 마치 독립잔치같이 되었다.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