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1) 조선민족혁명당

1932년 후반에 들어 독립운동정당들은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통합운동은 1920년대에 이루어졌던 유일당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통일운동의 재기로 해석된다. 그처럼 다시 통일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에 의한 중국인의 대일 항전의식 고조, 李奉昌·尹奉吉 의거로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전환과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미국과 일본, 혹은 소련과 일본 사이의 전쟁 예견 등이 작용하였다.

한국독립운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맞는 대응책으로 대동단결체의 결성을 모색하였다. 그 근저에는 이 목표가 이루어질 경우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고, 또한 중국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그 결과 1932년 10월 12일에 한국독립당 대표 이유필·송병조·김두봉과 신한독립당 대표 윤기섭·신익희, 조선의열단 대표 한일래·박건웅, 광복단 대표 김규식 등 9명이 모여 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였다.514) 이 동맹의 결성은 1920년대 후반에 추구되었던 유일당운동의 연결선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동맹은 각 단체의 제휴에 불과했고,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투쟁역량 결집을 위한 단일대당 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논의가 1933년 3월 1일에 남경에서 열린 2차 대표대회 겸 한국혁명각단체대표자대회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각 단체의 해체와 단일대당의 결성 및 임시정부의 해산이 제안되었다. 이후 상당한 진통을 거쳐 1935년 6월에 있었던 동맹의 제3회 대회에서 동맹의 발전적 해소와 신당, 즉 민족혁명당 창립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515)

민족혁명당은 1935년 6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린 신당창립정식회의를 통해 결성되었다.516) 의열단의 김원봉과 신한독립당의 이청천은 윤봉길의거로 이후 중국의 대단한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일본의 추격을 피해 잠적중인 김구의 세력에 대응하면서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김구가 이탈한 상태의 한국독립당의 경우는 단일 신당에 대한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하였다. 김두봉·강창제·박창세 등은 신당 참여에 찬성했으나 송병조·조완구·차이석 등은 끝내 반대하였다. 민족혁명당에 참가한 단체들은 7월 25일에 단체를 정리하고 사업·재정·당원 및 소유비품 등을 신당에 인계하였다.

민족혁명당을 구성한 핵심인물은 물론 의열단·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나 창당 2개월 뒤인 1935년 9월에 김원봉의 전권 장악에 반발한 조소앙·박창제 등의 한국독립당 출신들이 탈퇴하여 한국독립당의 재건을 선언하고, 이어서 신한독립당 출신의 閔丙吉·조성환·홍진 등도 탈퇴하게 되자, 남은 중심인물은 김원봉 등의 의열단계와 이청천·윤기섭 등의 신한독립당계, 그리고 최동오를 비롯한 조선혁명당계의 인물들이었다.

창당대회에서 선임된 간부는 내무부 겸 선전부장 김두봉, 외무부장 김규식, 군무부장 이청천, 재무부장 윤기섭, 교통부장 이범석, 특무부장 박창세, 감찰부장 양기탁 등이었다. 그러나 한국독립당 등의 세력이 이탈된 뒤, 1937년에 구성된 중앙위원은 김원봉·이청천·윤기섭·成周寔·신익희·윤세주·김상덕·최석순·千炳日·유동열·金弘敍·李景山·鄭八仙·鄭日明 외 2명으로 세 계열의 대표로 구성되었다.517) 민족혁명당은 중앙에 중앙위원회와 7부 및 서기국·군사국·조직국·검사국의 4국으로 구성되는 중앙당부를 두었다. 그리고 1937년 초에 중앙의 7부를 조직부(부장 최석순)·군사부(부장 이청천)·선전부(부장 陳義路)·서기국(총서기 김원봉)의 3부 1국제로 고쳤다. 지부 조직은 처음에 상해지부(지부장 김홍서)·남경지부(지부장 최석순)·만주지부(지부장 김학규)로 구성되었다. 그 뒤 1936년 4월에는 화중·화동·화남·화서·화북지부와 국내외 특별1지부 및 만주의 특별2지부 등 7개 지부로 변경했다.518)

민족혁명당의 이념은 당의와 당강 및 정책 등을 통해 쉽게 드러난다. 그 이념의 대강은 혁명적 수단으로 일제를 물리치고 정치·경제·교육의 평등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조소앙의 三均主義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앞서 성립된 한국독립당이나 민족혁명당의 결성 직후에 성립되는 한국국민당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발표된 이념과는 달리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 세력은 공산주의 이념을 갖고 있었고, 다만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민족혁명당의 항일투쟁방략은 당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혁명적 수단’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아울러 민족혁명당은 일제의 견제를 피하면서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을 받아 군관을 양성하고 이들을 국내와 만주 그리고 중국내 각지로 파견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인력을 확보하는 방략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1·2·3차의 단계로 특무공작을 전개했다. 제1차 공작은 중국군관학교에서 한인군관을 양성하는 것으로 일본의 간섭에 의해 중지되었다. 제2차 공작은 1936년부터 각 당원을 희망에 따라 군사부(부장 이청천)·특무부(부장 이범석)·당무부(부장 김원봉)로 나누어 군사부가 무장군사훈련을, 특무부가 첩보·암살·파괴 활동을, 당무부가 특무부원 배치·당원밀파·선전활동 등을 각각 담당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제3차 공작은 같은 해에 파견된 요원으로 하여금 암살과 파괴활동을 전개하게 하고 또 남경에서 대기중이던 40·50명을 다시 파견하는 일이었다.519) 민족혁명당은 중국국민당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면서 활동했다. 이 당은 蔣介石이 이끄는 藍衣社(중국국민당의 비밀특무기관)와 정보를 교환하고 재정과 무기의 원조를 받았다.

민족혁명당은 대일전선통일동맹을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제 정당의 통합운동으로 성립되었지만, 성립 무렵부터 상당한 문제와 한계를 갖고 출발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에 근거한 것이었다. 첫째 독립운동계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김구 계열과 임시정부를 고수하고자 했던 송병조·조완구 등이 불참한 것이었다. 둘째 통일전선을 이루었으면서도 사상적인 갈등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이었다. 셋째 항일투쟁의 대부분이 중국 국민당정부의 자금지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를 둘러싼 실권장악의 투쟁이 논란거리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창당 2개월 뒤인 1935년 9월에 조소앙·박창세 등의 한국독립당 출신들이 탈퇴하여 한국독립당의 재건을 선언함으로써 미완성된 단일 신당의 모습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이 현상은 중국의 재정지원을 김원봉이 독점함에 의해 나타났다.520) 곧이어 신한독립당 계열의 민병길·조성환·홍진 등의 탈퇴로 1936년부터는 의열단과 조선혁명당 및 신한독립당의 잔류 세력만이 남게 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김원봉과 이청천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재정운용에서 김원봉의 독점, 특히 중국 공산주의자와의 일방적인 교섭 등에 대한 이청천의 불만이 그 원인이었다. 그런데 그 대립이 표면화된 발단은 1936년에 당의 기관지인≪民族革命≫3호에 黨旗 대신 의열단기를 게재했던 사건이었다.521) 이로 말미암아 이청천 세력이 비상대회의 소집을 요구하면서 반격을 가하게 되자, 김원봉은 1937년 4월 상순에 간부회의를 열어 이청천·최동오·이광제 등 11명의 핵심인물을 제명시켜 버렸다.

민족혁명당은 1935년 7월에 김구 계열과 임시정부 고수파를 제외하고 성립된 통합 정당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 전반 중국 본토에 있어서의 독립운동계에는 독립운동정당이 정착했던 시기였고, 특히 정당의 통합운동이 전개된 시대였다. 그러나 민족혁명당이 성립된 4개월 뒤인 1935년 11월에 김구 세력이 한국국민당을 결성함으로써 양대 정당체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514)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13쪽.
515)朝鮮總督府 高等法院檢事局 思想部,≪思想彙報≫5(1935), 89∼91쪽.

당명이 처음에 민족혁명당·한국민족혁명당·조선민족혁명당으로 쓰이다가 1937년 1월에 남경에서 개최된 전당대표대회에서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결정되었다.
516)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37쪽.

민족혁명당은 창당선언을 통해 신당창당의 역사적 당위성을 밝혔는데 그것은 과거의 분산적 운동과 그 오류를 지적하고 투쟁역량의 결집을 주장한 내용이었다. 즉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예견하면서 “우리민족의 혁명역량을 급속으로 집중·공고하게 하고 중국민족과 절실히 제휴하며, 나아가 우리 독립운동에 동정하는 각 민족국가를 모두 우군으로 인정하고 반일전선의 전략 아래 최후에 승리를 획득할 때까지 희생적으로 분투한다”라고 했다(金正柱,≪朝鮮統治史料≫10, 757쪽).
517)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601쪽.
518)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71∼572쪽.
519)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71쪽.
520)중국국민당이 남의사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였는데, 당시 남의사는 김원봉의 황포군관학교 동기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원봉은 남의사로부터 매월 2천 5백불(원)을 지급 받았고, 기타의 자금 수입도 있었다(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76쪽).
521)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57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