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조선민족전선연맹

민족혁명당은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1935년 7월에 창당되었다. 그러나 민족혁명당은 창당 2개월 뒤인 9월에 조소앙·박창세 등의 한국독립당 출신들이 탈퇴하여 한국독립당 재건을 선언했고, 곧이어 신한독립당계열의 閔丙吉·曺成煥·홍진 등이 탈퇴하여 미완성된 단일 신당의 모습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이 현상은 중국의 재정지원을 김원봉이 독점함에 의해 나타났다. 1936년부터는 의열단과 조선혁명당 및 신한독립당의 일부 잔류세력만 남게된 상황이었다.

민족혁명당은 이청천세력이 이탈한 1937년 4월 이후 더욱 약화되었다. 김원봉은 민족혁명당의 세력만회를 위해 연합 가능한 단체와의 교섭을 추진했다. 그는 우선 1936년 여름부터 광동지부원들이 중앙본부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여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한 데 대해 이들을 복귀시키고자 노력하였다.542) 그는 이어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朝鮮革命者聯盟543) 및 孫斗煥·金炳斗가 중심이 된 남경한족회와의 연합에 노력하였다. 김원봉이 이들과의 제휴를 통하여 김구 세력에 대항할 단일대당을 추구하고 있던 가운데,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8월에 우파진영이 광복진선을 성립시켰다.

김원봉도 중일전쟁이 터지자 7월 말에 간담회를 개최하고 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혁명자연맹의 대표 15인으로 구성되는 대표회의를 가졌다. 여기에서 조선민족전선통일촉성회가 조직되었다. 그런데 8월에 김구 쪽에서 먼저 광복진선을 발표함으로써 연합체 결성에 선수를 빼앗긴 꼴이 되었다. 이들은 남경 함락 직전인 11월, 대표회의를 통해 민족전선을 조직하기로 하고 규약·강령·선언 내용을 결정했다. 그러나 곧 남경이 함락되었으므로 12월 초에 漢口로 옮겨 창립을 선언했다.544) 민족전선은 창립선언을 통하여 “조선민족의 유일 활로는 전 민족의 단결력에 의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민족의 독립자주를 완성함에 있다. 고로 조선혁명은 민족혁명이며 그 전선은 ‘계급전선’도 ‘인민전선’도 아니며,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소위 ‘국민전선’과도 엄격한 구별이 있다”545)라고 하여, 현 단계의 조선혁명은 민족주의적 민족해방운동이지 사회혁명이 아님을 천명했다. 즉 민족전선은 민주주의적 독립국가건설과 민족의 자유·평등 실현을 공동의 정치강령으로 하면서 단체본위의 연합형식으로 결성된 연합전선체였다. 이처럼 민족전선에 공산주의자가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과제를 강령으로 채택한 것은 식민지하에서 계급모순은 민족모순을 통해 관철되며, 한국에서의 총체적인 적은 일본제국주의라는 이해시각 때문이라 하겠다.546)

이처럼 민족전선은 조선의 혁명이 민주주의적 민족해방운동이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1940년까지 임시정부에 대한 不關政策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혁명당은 불관정책만이 아니라 심지어 임시정부가 조선의 復國에 유해한 존재이며, 하나의 군중기초도 없는 것이고, 통치권력이 결핍된 형식적인 몇 사람의 망상이라고 혹평하였다.547) 이것은 광복진선이 임시정부의 여당기능을 가진 것에 비해, 민족전선이 임시정부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민족전선의 조직은 선전부·정치부·경제부로 나누어졌다. 물론 민족전선이 동등한 자격을 가진 단체들의 연합체이기는 하지만, 財政權을 장악하고 있는 김원봉이 대표하고 그 아래에 세 개의 부서를 두었다. 선전부는 조선혁명자연맹 소속의 유자명을 대표로 약 50명, 정치부는 조선민족해방동맹 소속의 韓斌(일명 王志延)을 대표로 약 40명, 경제부는 민족혁명당의 李春岩을 대표로 약 10명의 인원으로 각각 구성되었다.548) 민족전선은 투쟁강령으로 소수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전 민족이 연합할 것과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일본에 대해 직접 항전을 전개할 것, 중국 및 전세계 피압박민족과 연합하여 반파시스트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혁명의 세계적 연대성을 가질 것, 그리고 국내외 혁명역량을 연계할 것 등을 채택했다. 이러한 투쟁강령에 따라 민족전선은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에 항전할 군사조직으로 朝鮮義勇隊를 결성하였다.

조선의용대의 당초 목적은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중국항전에 직접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크게 모자라서 우선 정치선전공작의 대오로 조직되었고, 적의 중국 공격과 한·중 양 민족에 대한 이간책을 분쇄하는 것, 조선동포와 일본군민을 쟁취하는 것, 중국항전에 참가하여 조선민족의 해방공작을 삼는 것 등을 활동방침으로 정했다.549) 조선의용대의 공작내용은 대적선전공작·대적전투·정보수집과 포로교육·대원확충·중국군민과의 합작 등이었다.550) 그런데 그들이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의 한인군대를 모델로 삼고 있었음이 주목된다.551)

조선의용대의 조직내용은 중일전쟁 1주년 기념일인 1938년 7월 7일에 중국정부에 보내졌다. 조선의용대는 중국정부의 지지를 받아 같은 해 10월 10일에 함락 직전에 놓인 漢口에서 조직되었다. 조선의용대는 동포와 파시스트 압제하의 민중을 연합하여 일제를 타도하고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완성하는 데 그 임무와 목표를 두었다.552) 조선의용대는 성립 초기에 약 120명의 대원으로 이루어졌고, 인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약 340명에 이르렀다. 최초의 편제는 두 개의 區隊로 이루어졌고, 제1구대는 朴孝三의 지휘하에 호남·강서일대에서 활동하고, 제2구대는 李益鳳의 지휘하에 安徽·洛陽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본부는 김원봉이 지휘하여 한구에 있다가 桂林을 거쳐 重慶으로 옮겨졌다.553) 조선의용대의 성격은 투쟁강령에 따라 조직된 전투조직이었고, 중국 국민당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특수성 때문에 중국 군사위원회 정치부의 戰地工作隊에 예속되어 활동하는 국제지원군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554)

민족전선은 기관지로≪朝鮮民族戰線≫을 발간했다. 창간호는 1938년 4월 1일에 발간되었는데, 매월 10일과 25일에 발간키로 했다. 그리고 편집인은 김규광·유자명·韓一來(본명 千炳林) 등이었고, 발간처는 朝鮮民族戰線社였다. 이 기관지는 창간사에서 “금일 만약 중국의 항전이 실패하면 조선민족의 해방은 영원히 無望하며 따라서 조선민족의 노력은 중화민족의 최후승리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라고 하여 항일전쟁에 있어 한중 양국의 결속을 촉구했다.555)

민족전선은 1938년 중반에 들면서 분열현상을 보였다. 그것은 1938년 5월에 호북성 江陵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표회의에서 최창익이 김원봉의 지도권에 도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崔昌益은 민족혁명당을 통해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꿈꾸면서 민족통일전선에 대해서는 연맹조직론을 고수했으며 중국과의 연합은 중국공산당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김원봉은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민족통일전선은 단일당의 형태여야 하며 중국국민당과 연합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두 세력의 갈등 때문에 최창익은 같은 해 7월에 金學武와 함께 조선의용대를 편성하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모인 중앙군관학교 星子分校 특별훈련반 졸업생 50명으로 朝鮮靑年戰時服務團을 결성하고 민족혁명당을 이탈했다가, 자금난으로 곧 민족혁명당으로 복귀한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최창익·허정숙 등은 그 해 10월에 전위동맹을 탈퇴하고 延安으로 떠났다.556) 그리하여 한빈이 전위동맹의 주축이 되어 공산주의 청년들을 지도하였다.

민족전선은 중일전쟁 직후에 성립하여 김구가 이끄는 광복진선과 더불어 양대체계를 이루었다. 민족전선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민족전선이 좌파세력을 통일하고 나아가 우파의 광복진선과 광범한 연합전선론을 제기함으로써 이후 전국연합전선협회 구성으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그 반면에 내부통제에 실패하여 조직이탈을 막지 못함으로써 대동단결로 나아가는 방향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여기에서 우파 광복진선과의 타협과 통합을 모색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542)조선민족해방동맹은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지 않은 좌파인물에 의해 결성되었다. 김성숙·박건웅·김산 등이 주역이었고, 중국공산당이나 코민테른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민족주의적’ 좌파 성향을 보였다(內務省 警報局,≪社會運動の狀況≫8, 1936, 東京:三一書房, 1972, 1572쪽).
543)1930년에 상해에서 柳子明(본명 柳興湜)·柳基石 등이 ‘南華韓人靑年聯盟’이라는 무정부주의 단체를 조직했다. 이 단체가 1937년에 남경에서 ‘조선혁명자연맹’으로 재조직되었다.
544)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606∼607쪽.
545)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617쪽.
546)이러한 경향은 金奎光(金星淑)의 주장에도 나타난다. “전체 민족이 똑같이 해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반일의 임무를 갖기 때문에, 현 조선혁명의 주체는 어느 한 계급 혹은 어느 한 정당이 될 수 없다. 동시에 광대한 중소자산계급·민족상공업자·지주 등도 반일의 혁명성을 상당히 갖고 있고 전민족 해방투쟁에서 상당히 주요한 세력을 구성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金奎光,<朝鮮民族反日革命 總力量問題>,≪朝鮮民族戰線≫5·6, 1938).
547)胡春惠,≪中國안의 韓國獨立運動≫(단국대출판부, 1978), 115쪽.
548)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615쪽.
549)金若山,<第二年的開始>(≪朝鮮義勇隊通訊≫7기;국가보훈처,≪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8), 276쪽.
550)金喜坤,<조선의용대의 독립운동전략>(≪韓國近現代史硏究≫11, 1999), 15∼27쪽.
551)韋 明,<英勇戰鬪中的東北朝鮮革命軍>(≪朝鮮義勇隊≫39기;국가보훈처,≪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8), 485∼486쪽.
552)胡春惠, 앞의 책, 138쪽.
553)胡春惠, 위의 책, 138∼139쪽.
554)胡春惠, 위의 책, 141∼142쪽.

이러한 성격은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성립한 한국광복군의 경우와 같다.
555)金正明,≪朝鮮獨立運動≫Ⅱ, 620쪽.
556)이정식·한홍구 엮음,≪항전별곡≫(거름, 1986), 67∼7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