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4. 유교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일제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서 학교교육에서도 우리 말을 비롯한 우리 역사와 우리 지리에 관한 교육도 배제하였으며, 식민지사관에 의하여≪조선사≫38권을 편찬하는 등 우리 역사를 왜곡시킨 역사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우리 역사와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집요하게 기도해왔다. 그러나 이에 맞서 당시의 독립지사는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 민족사와 민족문화의 연구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여기에 유교지식인들은 수구적 도학자나 진보적 계몽사상가의 양쪽에서 각각의 시각에 따라 민족사연구와 저술에 많은 업적을 쌓아갔다.

 우리 역사를 강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으로 저술하는 작업은 유교사상에 기반을 둔 계몽사상가 내지 독립운동가들에서 볼 수 있다. 박은식은 합방전에 언론활동을 통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던 양명학자이며,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으로서 일본의 국권침탈과정과 망국의 통분을 서술한≪韓國痛史≫(1915)와 합방후 민족독립을 위한 투쟁과정을 서술한≪獨立運動之血史≫(1920)를 저술하였다. 신채호는 유학자로 출발한 계몽사상가요 독립운동가로서 합방이전에도 을지문덕·최영·이순신 등 민족영웅의 전기를 써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지만, 1910년 중국에 망명한 뒤로 역사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민족주의사관을 확립하여 우리 민족의 근원인 고대사연구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朝鮮上古史≫·≪朝鮮上古文化史≫·≪朝鮮史硏究草≫등을 저술하여 국내 신문에 연재함으로써 민족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었다. 李建芳의 문인인 양명학자 鄭寅普는 1935년≪동아일보≫에<5千年間 朝鮮의 얼>이란 제목으로 연재하였던 글인≪朝鮮史硏究≫를 통하여 치밀한 고증으로 우리 역사를 통해 ‘조선의 얼’을 일깨워주는 민족사관을 전개하였다.360)

 金澤榮(호 滄江)은 계몽사상가와 전통도학자의 양쪽과 깊은 교유를 맺고 있었던 유교지식인이었으며, 한말에 史官으로서≪東國歷代史略≫(1899) 등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1905년 망명하여 上海·通州 등에 머물면서 우리 역사서의 편찬에 주력하여,≪韓史綮≫(1918)·≪韓國歷代小史≫(1922) 등을 저술하고,≪校正三國史記≫(1910)·≪新高麗史≫(1924) 등 우리 역사의 고전을 간행하였다. 그는≪韓史綮≫에서 조선의 太祖가 고려의 두 王(禑王·昌王)을 시해하고 恭讓王의 왕위를 찬탈하였다고 기술하는 등 君主시대를 넘어서서 공화제에 입각한 사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柳必永(호 西坡) 등 보수적 도학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361) 또한 柳寅植(호 東山)은 우리 역사를 민족사관에서 서술한≪大東史≫를 저술하여, 단군조선이후 고려이전까지 우리 역사를 南朝와 北朝로 파악하고, 조선의 판도로 만주대륙을 포함시키며, ‘倍達族’을 조선족·북부여족·예맥족·옥저족·숙신족을 포함하는 것으로 제시하여 확대된 민족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김택영의≪한사계≫에 내포된 사대주의적 요소를 조목별로 비판하는<金史記誤>를 저술함으로써 자신의 민족사관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하고 있다.362)

 도학자들은 민족의식보다는 의리정신에서 민족사의 서술과 일제에 저항한 節義의 인물들에 관한 전기를 저술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鄭衡圭(호 蒼樹)는 망국의 통분 속에 우리 역사를 野史로 서술하여 민족적 義氣를 고취하고자 하여≪韓史抄輯≫을 편찬하였으며, 또한<乙巳殉國諸公傳>·<丁未三密使傳>·<庚戌殉義諸公傳>·<韓末殉國烈士諸公傳>등 항일 의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순국정신을 표양하고 있다. 또한 金澤述은 金暻中이 편찬한≪朝鮮史≫를 검토하고서<觀朝鮮史>(1943)를 썼는데, 제목이 ‘韓史’라 하지 않고 ‘朝鮮史’라 한 것부터 식민사관의 표현이라 규정하여 비판하고 있다.363) 河謙鎭(호 晦峰)은<國性論>(1921)을 지어 우리의 민족문화가 지닌 본질인 國性을 ‘禮義’로 제시하였으며,<安義士傳>·<露梁忠烈祠記>·<名將列傳>·<勇將列傳>등 안중근을 비롯하여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명장과 용장 등 민족적 영웅들의 전기를 저술하여 민족기상과 항일의지를 진작하고자 하였다. 그는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여≪東儒學案≫(1943)을 완성함으로써 한국유학사를 체계화하여, 민족문화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 중요한 업적을 남겨주고 있다.

 李炳憲(호 眞菴)은 康有爲의 영향아래 今文經學의 연구와 孔敎운동을 전개한 인물로서,≪歷史敎理錯綜談≫(1921)을 지어 舜이 동이족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여진족의 金과 淸, 몽고족의 元 등이 중국을 지배하였던 사실을 모두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우리 민족이 중국을 4차례 지배한 것으로 보는 ‘大民族史觀’을 제시하고 있다. 안동의 李源台도 대민족사관에 근거하여≪倍達族疆域形勢圖≫를 지어 만주와 요서지역 및 중국 동해안에 걸치는 배달족의 영역을 지도로 제시하고 있다. 朴章鉉(호 中山)은 민족의 자기성찰과 사상의 진보를 위해 史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海東春秋≫·≪海東書經≫을 저술하였다. 또한 우리 역사를 經傳의 체제로 재구성함으로써 민족사를 경전과 일치시키는 독특한 작업을 하였으며,≪朝鮮歷代史略抄≫·≪野史≫등의 민족사와 민족문화의 편찬작업을 수행하였다.

 유림으로서 민족의식을 배양하기 위하여 사회운동을 전개한 경우는 그 운동영역이 매우 한정되어, 주로 전통적 국가관에 의한 의례를 통하여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고, 교육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로 치우쳤다. 의례를 통한 민족의식의 표출은 주로 고종과 순종의 죽음이라는 기회에 거국적 의례로서 國喪에 상복을 입고 哭班에 참여하는 전통을 따름으로서 前왕조에 대한 추모와 그 遺民으로서 자각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3·1운동의 시기로 고종의 因山日을 잡았던 것도 백성들이 몰려드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1926년 순종의 죽음에도 유림들은 상복을 입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합방으로 국가의 멸망을 보고서 상당수의 유학자들이 상복을 입거나 白笠을 쓰고 다님으로써 국가의식을 각성시켰다.364)

 유림은 전통적으로 후진교육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왔지만,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서도 대부분 전통의 한학과 유교경전교육에 치중함으로써 의리정신을 확고하게 견지하는 데에는 기여하였지만, 민족독립의식을 강화하는 데에는 매우 미약하였다. 당시의 많은 유학자들은 자신의 서재나 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엄격한 學規로 학풍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安圭容의<竹谷精舍講規>에서는 “士族이나 庶類의 신분을 막론하고 배움에 뜻을 둔 자는 모두 입학을 허가한다”고 규정하여 신분차별의 폐지를 선언하기도 한다. 金澤述(田 愚 문인)은 萬宗齋·東谷書齋 등에서 강학을 하면서 엄격한 학규를 제정하고, 학생들의 수학정도에 따라 4등급으로 分班하며 각 반에 原課와 間課의 과목을 설치하는 체계화된 교과과정을 설정하였다.365) 이에 비해 유인식은 전통 유교의 폐단을 비판하고 유교사상의 근대적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1907년 서원의 재산을 이용하여 안동에 協東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20년 李商在 등과 전국교육기관의 협의회인 朝鮮敎育協會를 조직하고, 大邱에 嶠南學館을 설립하였다. 또한 그는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1923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朝鮮民立大學期成會를 발기하여 중앙위원으로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교육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360)愼鏞廈,≪朴殷植의 社會思想硏究≫(서울대 출판부, 1982), 262∼311쪽.

―――,≪申采浩의 사회사상연구≫(한길사, 1984), 58∼62쪽.
361)柳必永은<記金澤榮史綮誤>를 지어 김택영의≪韓史綮≫에서 太祖와 世祖를 왕위찬탈자로 규정한 것에 대해 先王을 모욕하는 것이라 반박하여 道學전통의 史觀을 제시한다.
362)금장태·고광직,≪儒學近百年≫(박영사, 1984), 419쪽.
363)당시 道學者들 사이에는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국호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李震相과 田愚의 학맥 안에서는 ‘韓’이란 호칭을 쓰고, 李恒老의 학맥 안에서는 ‘朝鮮’이라고 썼다.
364)고종 승하시 白笠을 썼던 吳駿善은 임금과 국가에 대한 춘추의리에 따라 白笠을 쓰고 일생을 마쳤다.
365)금장태·고광직, 앞의 책, 4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