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Ⅴ. 과학과 예술2. 음악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민족음악의 전개

 한국근대음악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점은 노래를 운동으로서 불렀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이전의 노래들은 애국계몽가와 항일의병가로서 계몽과 국권회복을 노래하였지만, 1910년 이후로는 민족적 울분과 반일독립의 애국적인 노래(창가)로 민족음악의 중심이 되었다. 이미 일본도 메이지(明治)시기부터 쇼오카(唱歌)나 온가쿠(音樂)가 일본국민으로서 國調를 일으켜 새로운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한국의 창가들은 테라우치총독이 1911년 7월 1일 각도 장관회의 시정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독립을 고취하고 일본제국을 반대하는 불량창가이자 위험한 노래”였으며, 그래서 “이것들은 물론 허용하지 않는 일이니 취체상 가장 주의가 필요”하므로 “일본은 실력으로서 이를 진압할 것이고, 이 때문에 오직 조선인만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한 노래들이었다. 그만큼 한국의 창가들은 애국창가이자 독립을 고취하는 노래들이었으며, 학교와 교회를 비롯하여 국내외의 항일운동 현장에서 불리워졌다.

 따라서 한국의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음악을 가장 엄한 불경죄로 다스리기 위하여, 1912년 3월에 制令으로 정한<조선형사령>이나<조선민사령>을 기존의<보안법>이나<출판법>등과 함께 적용하여 2중으로 처벌하였다.

 창가집 사건은 일제가<출판법>과<보안법>은 물론<조선형사령>까지 적용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경기도 개성 韓英書院의 창가집 사건, 함남 금야군의 사립문명학교의 창가집 사건, 함북 경성군의 사립온천학교의 창가보급사건 등이 그것으로, 이 중에서 1917년의 한영서원 창가집 사건이 널리 알려진 사건이었다.491) 한영서원은 尹致昊가 개성에서 경영하는 학교로서 이 학교 졸업생이자 소학과 교사로 있던 신영순·백남혁과 서기 오진세, 음악과 교사 정사인, 그리고 권사 이경중들이 애국창가집을 발행하고 보급하였다고하여 1917년 9월<조선형사령>에 의한 불경죄와<출판법>과<보안법>위반 판결을 받고 징역과 구류처분을 받은 사건이 바로 ‘한영서원 창가집사건’이었다.492) 한영서원 창가집은 한영서원은 물론 같은 지역의 호수돈여숙, 그리고 남북예배당 및 그 밖의 동지들에게 보급되었다. 바로 이 창가집엔 일제가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통제한<영웅 모범>·<경부철도>·<한양가>·<대한혼>·<애국가>·<선죽교>·<구주전란>등 조선총독부 금지곡 등이 수없이 담겨져 있었다.

 창가사건은 이들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애국적인 노래들이 불리워졌다. 1914년 4월엔 배화여학교에서 학생들은 “대한사람 대한으로 기리 보존하세”라는 애국가를 “왜국사람 왜국으로 기리 망하세”로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하면서 수업을 거부하였다. 또 1916년 강원도에서 불온 창가집이 발견되었다는 경찰보고를 보아도 당시 강원도에 항일애국의 노래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493)

 한편 1914년 북간도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의 광성중학교에서 펴낸 등사판≪最新唱歌集 附 樂典≫은 모두 153곡의 애국노래와 악전을 음악문답으로 소개한 총 250여 쪽의 창가집이었는데,<치안법>위반의 금지 창가집이 되었다.494) 그러나 이 창가집은 중국 동삼성(만주)에 망명한 동포들이 1911년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연길) 소영자에 설립한 민족학교인 광성중학교가 중심이 되어 만주와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불리워졌다.495)

 이 밖에<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독립군 진영뿐만 아니라 일반 교포와 청년학생들까지 널리 불리워졌다. 또<신흥학우단가>를 비롯하여<봉기가>·<용진가>·<국치추념가>·<작대가>·<운동>·<격감가>등이 만주의 항일지역에서 널리 불리웠다. 미국 망명동포들이 1913년에 창간된≪신한민보≫에서는 “기억해 아날옴, 못니즐 치욕을”과 같은 항일애국시가를 발표하여 ‘노가바’할 수 있도록 하였다.496) 또 1915년 같은 신문에 “저 먼 운소 중에, 펄펄 높이 날며, 만세 영광 자랑하리, 우리 국기로다”라는 애국시가를 비롯하여 같은 해 6월 17일자에는 음악가 이성식이 ‘도산션이 저술한 노래’ 가사를<격검가>란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1910년 4월 발매금지와 함께 압수당한≪중등창가≫의 저자로서 당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1910년대 국내의 학교와 교회는 물론 국외에서 불리웠던 노래들은 애국계몽운동과 의병항쟁기 노래의 줄기를 받아 민족적 울분과 반일독립운동 노래로 발전해 나갔다.

 한편, 일제의 한국문화말살정책에 의하여 전통적인 음악제도의 약체와 해체는 물론 그 음악들도 금지곡으로 통제받았다. 그 음악들은 바로 민족정신과 함께하는 민족정서의 근원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역사적인 민요를 비롯하여 기악작품들을 발굴정리하고 보존하는 사업은 시대적이면서 민족적인 요구이었다. 이러한 시대적·민족적 요청에 공헌한 음악가가 김인식·이상준 등이다. 김인식이 1914년 서울의 창문당에서 발행한≪朝鮮 舊樂 靈山會上≫은 당시 민간 기악곡으로 널리 알려진 양금보로 된 고악보를 양금의 구음인 육보와 함께 양악보로 작업한 최초로 악보이다. 이리하여 한국 전통음악과 양악문화와의 만남을 열어 주었다. 또한 이상준은≪조선속곡집≫(상권, 1913),≪죠션잡가집≫(1916),≪유진 조선잡가집≫(1918) 등 3권의 민요를 비롯한 잡가집을 5선 양악보로 발행하였다. 즉, 우리 나라 서도민요와 남도민요 그리고 경기민요 등 전국의 민요를 가사는 물론 오선악보와 숫자악보로 채보하므로써 우리 민요에 대한 깊은 조예로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497) 이들 외에 최창선 편의≪가곡선≫(1913), 김학규 편의≪조선음률보≫(1916), 미상의≪조선신구 신가총서≫(1916), 송기화 편의≪정정 증보 신구잡가≫등이 출판됨으로써 우리 음악의 정리와 역보 및 채보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민족기악양식인 ‘산조’라는 명칭이 대외적으로 공식화될 정도로 산조연주가 빈번해지면서 산조시대가 변함없이 전개되었다. 특히 김창조가 1915년 전후로 전주와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로 순회공연을 하면서, 가야금 산조는 물론 거문고 산조와 젓대 산조, 그리고 가야금 병창·단소·해금 등 전 분야의 기악과 성악이 공연되었고, 1917년 장별제 산조를 완성하여 20년대 광범위하게 산조의 시대를 열어갔다.498) 즉, 1890년대 중반이후 시나위나 봉장취 등의 기악곡과 판소리 장단에서 발전시킨 민족기악형식인 산조가 김창조에 의하여 장별제 산조로 정형화되어, 20년대 산조시대가 본격화되어 우리나라 민족음악발전에 전환을 이루었다.

 한편, 일제의 조선문화예술의 약체화·해체화속에서도 기층민중에 뿌리를 둔 판소리와 창극을 유지·보존하려는 운동이 펼쳐졌다. 명창 김창환과 이동백이 앞장서서 1915년 3월 16일에 ‘경성구파배우조합’을 설립하였는데, 이들은 “장래 남의 치욕을 면하고 修身 잘하여 조합의 발전기초를 위함”이라고 그 설립취지를 밝힐 정도로 안팎의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고, 자기 나라 문화를 치욕스럽게 여기도록 몰아가는 일제에 울분을 삼키면서 조합 발전을 모색하였다.499) 그들은 광무대와 연흥사에 속하는 남녀 예술인들과 기타 여러 예술인들을 영입하여 조합장에 장재옥을 선임하고 자신들은 지도선생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경성구파배우조합’은 1928년에 창립된 ‘조선음악협회’, 1930년 여름에 창립된 ‘조선음률협회’, 1934년 5월에 창립된 ‘조선성악연구회’로 맥을 이어가면서 한국음악의 부흥과 보급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500)

491)박우영,≪조선음악사≫1하(예술교육출판사, 1985), 71쪽.
492)京畿道 警務部報告,<警高機發 第527號>, 不穩者 發見處分 1件, 1915년 11월 13일.

<京畿地方法院 刑事部 裁判記錄>, 1917년 9월 5일.
493)조용만·송민호·박병채 공저,<일제하의 한국저항문학>(≪일제하의 문화운동사≫, 현음사, 1982), 249·252쪽.
494)재간도 일본총영사관 산하 외사경찰이 1914년 외무성 외무대신(加에藤高朋)에게 보고한<最新唱歌集 發賣禁止ニ關スル件>에 의한다.
495)수록된 애국노래들은<국기가>·<혈성대>·<애국>·<조국생각>·<망향>·<대한소년기개>·<대한혼>·<자유>·<한반도>·<건혼절>·<독립>·<단군>·<민충정공 추도>·<학생 추도>·<조선혼>·<영웅 추도>·<대한제국국가>등이었다.
496)셩빈,<8월 29일>(≪신한민보≫, 1917년 9월 14일).
497)이상준의<아리랑>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아리랑>과 장단(6/8)과 시김새 처리가 다른 우리식 민요로 채보한 작품이다. 현재 부르고 있는<아리랑>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일본식으로 작곡한 4분의 3박자의<アリランの唄>이다. 노동은,≪노동은의 음악상자≫(웅진출판, 1996), 109∼120쪽.
498)민족음악연구소 편,<유산연구, 김창조(金昌祚)와 가야금산조>(≪조선음악≫1기,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2), 40∼48쪽.
499)≪매일신보≫, 1915년 4월 1일.
500)한편 양악계는 김영환·홍난파·김형준 등이 중심이 되어 1919년 10월에 ‘경성악우회’를 조직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