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2권 대한민국의 성립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1. 해방 이전 미·소의 대한정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1. 해방 이전 미·소의 대한정책
          • 1) 미국의 전후 대한정책 형성
          • 2) 해방 이전 소련의 대한정책
        • 2. 해방 이후 미·소의 점령정책
          • 1) 분할점령과 미·소의 초기 점령정책
          • 2)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과 미·소공동위원회(1946∼1947)
          • 3) 점령에서 분단으로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광복 전후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 (1) 제2차 세계대전과 해방
            • (2) 해방정국과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 (3) 조선인민공화국의 탄생과 좌절
          • 2)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대립
            • (1) 모스크바 결정과 국내의 파장
            • (2) 우익세력의 통일전선-비상국민회의
            • (3) 좌익세력의 통일전선-민주주의민족전선
            • (4) 신탁통치 문제와 좌우의 갈등
            • (5) 탁치문제에 대한 논쟁
            • (6) 신탁통치 문제 이후의 정국
        • 2. 주요 정치세력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우익 정치세력의 노선과 활동
            • (1) 한국민주당
            • (2) 임시정부세력과 한국독립당
            • (3) 이승만
          • 2) 좌익 정치세력의 노선과 활동
            • (1) 조선공산당
            • (2)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
            • (3) 조선신민당
            • (4) 삼당합동과 남조선노동당
          • 3) 중도세력과 좌우합작운동
            • (1) 국민당
            • (2) 미·소공동위원회 이전의 좌우합작 노력
            • (3) 좌우합작위원회
            • (4) 민주주의독립전선과 민족자주연맹
          • 4) 남북지도자회의-연석회의와 남북협상
            • (1) 김구·김규식의 남북요인회담 제의
            • (2) 북의 연석회의 제안
            • (3) 연석회의와 남북협상
            • (4) 평가와 의의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1. 미군정기의 사회
          • 1) 미군정기의 사회경제적 상황
            • (1) 경제적 혼란
            • (2) 사회적 혼란
          • 2) 미군정기의 사회갈등
            • (1) 노동문제
            • (2) 농업문제
          • 3) 9월총파업과 10월항쟁
            • (1) 9월총파업
            • (2) 10월항쟁
        • 2. 미군정기의 경제
          • 1) 해방의 경제적 의미
          • 2) 농지개혁과 식량공출
            • (1) 농지개혁
            • (2) 식량공출
          • 3) 공업생산의 소장과 귀속사업체 처리
            • (1) 공업생산의 소장
            • (2) 귀속재산의 처리와 자본의 재편
          • 4) 노동자의 존재 양태와 노동운동
            • (1) 노동자의 존재 양태와 미군정의 노동정책
          • 5) 금융·재정과 무역·원조
            • (1) 미군정기의 금융·재정
            • (2) 미군정기의 무역·원조·남북교역
        • 3. 미군정기의 문화
          • 1) 문학
            • (1) 해방공간의 소설
            • (2) 해방공간의 시
            • (3) 문학운동
          • 2) 미술
            • (1) 해방공간과 미술단체
            • (2) 왜색과 민족미술
            • (3) 미술의 대중화와 생활화
            • (4) 미술대학의 출현
          • 3) 음악
            • (1) 시기구분과 음악사적 특징
            • (2) 제1기 음악
            • (3) 제2기의 음악 전개
            • (4) 제3기의 음악전개
          • 4) 연극·영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1. 대한민국의 수립
          • 1) 단정노선의 확정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입국
            • (1) 미·소공동위원회의 최종적 결렬과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
            • (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입국과 남한단선 결정
          • 2) 5·10선거와 대한민국의 수립
            • (1) 단선을 앞둔 미군정·과도정부의 준비
            • (2) 단선에 대한 국내 정치세력의 대응
            • (3) 5·10선거와 그 결과
            • (4) 제헌국회와 정부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해방 후 북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 수립과 소련군 주둔
            • (1) 소련군의 북한 진주
            • (2)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성립과 개편
            • (3) 스딸린 비밀전문과 서북5도행정국
          • 2) 정당들의 조직과 활동
            • (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 (2) 조선민주당
            • (3) 북조선천도교청우당
            • (4) 조선신민당
          • 3)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민주개혁’
            • (1) ‘탁치정국’을 전후한 좌우대립
            •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
            • (3) ‘민주개혁’
          • 4) 북조선노동당 창당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1)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 (2) 1946년 11월 인민위원회 선거
            • (3)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5) 헌법 제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헌법 제정
            • (2) 북한에서의 분단정부 수립

2) 해방 이전 소련의 대한정책

 해방 이전 시기 소련의 동북아시아정책에서 한반도지역은 결코 부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소련은 대일전 참전에 앞서 이 지역에 소련과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구체적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준비 단계에 들어선 시점에서 소련정부의 대한정책 담당자들은 친소적인 한국독립정부의 수립을 우선 순위로 하고 소련의 주도적인 역할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신탁통치 실시를 차선의 방책으로 하는 대한정책구상을 하고 있었다.008)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방어망 구축을 위해 동아시아로 시선을 돌렸다. 소련은 1941년 4월 13일 일본과 중립조약을 통해 외교적인 방어망을 구축한 후 대독일전에 전력투구하였다. 2차대전에서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소련군은 결정적인 요소였으며 이는 일본과의 중립조약이 없었다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009) 하지만 러일전쟁 이래로 일본은 소련을 재침입할 수 있는 적대국가였으며, 소련에게 대독일전쟁의 승리 이후 접경지역인 만주와 한반도로부터 일본을 몰아내는 것은 동아시아지역 방어망 구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되었다. 한반도 해방문제, 혹은 한반도로의 세력확장 문제는 소련의 부차적인 목표였고, 우선 소련의 최대 접경지인 만주지역에서 일본세력의 퇴출, 이후 침략의 발판이 될 수 있는 한반도로부터 일본세력 퇴출,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는 일본 본토에 대한 세력확장이 소련 동아시아정책의 최대 목표였다.

 해방 이전 소련이 한반도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1945년 6월 29일 소련 외무성 제2극동국장 주코프와 부국장 자브로딘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대일참전 이전의 한국에 대한 소련의 관심과 구상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이다.

1. 한국을 통해 아시아 대륙으로 팽창하려는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투쟁은 역사적으로 정당한 행위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극동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저지할 만큼 충분한 힘을 보유하지 못했으며, 일본이 영국 및 일정 정도로 미국과 독일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데 반해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2. 일본은 한국에서 영원히 구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 소련의 극동이 항상적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한국이 장차 일본만이 아니라 극동으로부터 소련에 압박을 가하려는 임의의 다른 강대국에 의해 소련을 공격하는 전초기지로 전환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독립은 효과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소련과 한국의 우호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독립과 소련 극동지역의 안전을 보증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올바른 방안이 될 것이다. 장차 한국 정부가 수립될 때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4. 한국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해를 고려할 때 한국문제 해결은 의심할 여지없이 일련의 곤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일본에게서 대만과 澎湖諸島를 빼앗으면 일본으로서는 남쪽 방향으로 진출할 길이 차단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일본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승인하는 형태일지라도 한국에서 배출구를 찾으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소련의 이해관계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전현수,<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대북한정책>,≪한국독립운동사연구≫9, 1995, 352쪽에서 재인용).

 위의 자료를 놓고 볼 때 소련의 대한정책은 대동아시아정책의 일부분이었고, 소련의 만주 및 한반도 진공은 소련에 우호적인 국가들로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전 소련 대한정책의 핵심은 일본세력의 완전한 축출에 있었다.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의 소련 최대의 적은 미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희생 앞에서 일본이 만주나 한반도를 통해 재침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전후 소련의 1차적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전과 직후에 소련의 관심이 일본에 집중되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한반도의 38도선 분할안이 포함된<일반명령 제1호>에 대한 답신 및 이후 소련의 태도이다.

 <일반명령 제1호>는 일본군의 항복 접수에 관하여 중국·대만 및 북위 16도 이북의 인도차이나에서는 일본군이 중국의 장개석에게 투항하며, 만주·북위 38도 이북의 한국과 사할린에서는 소련군 사령관이 항복을 받도록 하고, 일본·필리핀 및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에서는 맥아더 장군이 항복을 받도록 각국의 접수 영역을 분할하였다. 1945년 8월 15일의<일반명령 제1호>에 대해 스딸린은 바로 다음 날 미국 대통령 트루만에게 회신을 보내어 아래와 같이 수정 제안을 하였다.

1. 3대국 크리미아회담의 결정에 의거, 소련이 영유하기로 된 쿠릴열도를 일본군의 대소련군 항복지구에 포함시킬 것.

2.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의 소야해협 북방에 접하고 있는 홋카이도 북부를 일본군의 대소련군 항복지구에 포함시킬 것.

 (H. S. 트루만 지음·박관숙 역,≪트루만≫, 1984, 201∼202쪽).

 미국은 이에 대해 8월 18일 위의 1항, 즉 쿠릴열도를 소련군 항복지구에 포함시키자는 제의에 동의한 반면, 일본 본토의 일부에 소련군이 진주할 것을 요구하는 제2항은 명백히 거부하였다.010)

 이와 같이 소련이 미국의 제의에 신속하게 동의한 것은 일본이라는 반대급부를 요구하기 위해 한반도의 38선 분할점령을 수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와 한반도에 관한 이해관계도 일본의 재침략 방지라는 의식이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소련은 한반도에 대한 분할점령을 쉽게 수락할 수 있었고, 일본 점령에의 참여라는 새로운 제안을 다음날로 미국에 발송하였다.

 전반적으로 소련의 대한정책은 일본의 ‘비군사화·민주화’라는 동아시아정책의 일반적 목표와 관련을 가지면서, 한반도가 다시는 소련을 향한 침략기지가 되지 않도록 이 지역에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4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소련 대표 쉬티코프가 발언하였듯이 소련은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자신의 목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하였다.

<鄭容郁>

008)이하 해방 이전 소련의 대한정책에 대해서는 김성보,<소련의 대한정책과 북한에서의 분단질서 형성-1945년∼1946년>(역사문제연구소 편,≪분단 50년과 통일시대의 과제≫, 역사비평사, 1995);전현수,<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대북한정책>(≪한국독립운동사연구≫9,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5) 참고.
009)1943년 미·영군이 시실리에 상륙하는 데 독일군 2개 사단의 저항을 받았지만 소련군은 전 전선에서 독일군 200개 사단의 공격에 당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영군이 대륙에서 제2전선을 형성하더라도 이것은 독·소 전선에 비해 문자 그대로 부차적인 전선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구대열, 앞의 책, 182쪽).
010)김성보, 앞의 글, 6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