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구왕궁아악부(이왕직아악부)
우리 국악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장악원 장악과에서 이왕직아악대(1910)로, 다시 이왕직아악부(1913)로 변천하면서 끊임없이 약체화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굳세게 전통의 음악을 지켜왔다. 해방과 함께 이왕직아악부는 1945년 11월 8일 미군정 법령 제26호에 의거, 이씨 왕직의 명칭 변경 공포에 따라 舊王宮으로 변경되자 자연히 구왕궁아악부로 직제가 바뀌었다.
구왕국아악부는 강령을 내세우지 않았으나 서울 종로구 운니동 98번지에 사무소를 두고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였다. 아악사장 대리에 張寅湜, 총무부에 성경린·奉海龍·徐相云·李德煥·洪元基, 장악부에 李載天·김보남·金星振, 교양부에 이주환·이재천·이덕환을 비롯하여 아악사로 金光得·김보남 등 약 30여 명으로 구성하였다. 조직의 정비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아악사장이었고 조선음악협회 조선음악부 부장으로 전통음악과 무용계를 관장하였던 함화진이 구왕궁아악부에 있지 않고 민악 중심의 국악원 위원장으로 활동한 점이었다.
구왕궁아악부는 부민관에서 몇 차례의 미군 위문연주, 방송을 통한 아악 해설, 춘천·개성 등의 초청 순회연주 활동을 활발히 하였지만, 성경린이 지적하듯 “아악이 여러 사람의 아악일 수 있는가에 조금 생각이 부족했음을 아악인은 뉘우쳐야 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573) 아악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정부수립 이후인 1948년 11월 국회에서<아악부 국영안>이 통과되었다. 1949년부터는 정부예산이 부분적으로 지원되어 오다가 1951년에 드디어 ‘국립국악원’이 탄생하였다.
573) | 성경린,<아악담의>(≪신천지≫4-8, 서울신문사, 1949), 2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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