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三. 우리 역사를 빚낸 이들

3. 끊임없는 앞길

우리 민족은, 우리의 행복을 후세에 전하고, 좋은 문화를 이어받아서, 더욱 발달된 세상이 되기를 바랐으니, 그것은 곧 교육과 종교를 위해서 애쓴 분의 공로이다.

최충은, 고려의 문화가 한창이었을 때에 나와서, 높은 벼슬도 지냈으나, 학문도 잘 해서, 해동공자라는 이름을 들었다. 사립 학교를 세워서 많은 제자를 길러 내니, 다른 11명의 학자도 각각 학교를 세워 교육을 하였다.

안향은, 고려가 원의 지배를 받을 때에, 원으로부터 주자학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재산으로 성균관이라는 국립 학교를 세워서 교육하였다.

안향   

길재는, 고려 말년에 경상도 선산에 숨어 살며, 주자학을 공부하는 한편, 서당을 마련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서, 나중에는 이퇴계, 이율곡 같은 대주자학자가 나오게 되었다.

주세붕은, 조선 전기에 안향의 고향인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 서원을 세우고, 안향을 모시는 한편, 선비들의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다.

한편, 종교의 발달과 포교를 위하여 노력한 분으로는, 신라의 이차돈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차돈은 처음으로 들어온 불교를 믿었으므로, 종전에 있던 종교에 배치된다 해서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죽음에 앞서 불교의 훌륭함을 말하고 태연히 죽어서, 이에 탄복하여 불교는 신라에 퍼지고, 충효 사상과 불교 사상은 합쳐서, 화랑도의 정신을 이룩하게 되었다.

원효와 혜초는 신라 시대의 명승으로, 불경을 해석하고, 또 인도까지 가서 불교를 연구하였다.

이승훈은 조선 중기에 정약용과 같이, 처음으로 천주교를 퍼뜨리기에 힘쓰다가 잡혀 죽었으며, 김대건은 마카오의 신학교에 들어가서 서양의 종교와 학문을 연구하고 돌아왔으나, 천주교를 반대하는 관리들에게 잡혀서 사형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서 천주교를 믿게 되었다.

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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