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

Ⅳ. 근대 사회

원구단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 제국, 연호를 광무라 고치고, 황제에 즉위하여 자주 독립국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여기에서 천지신에게 제사하였다. 조선 호텔 후원 소재.

단원 개관

실학의 발전이 근대 문화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조선 사회는 개항을 맞았다. 이로부터 제국주의 세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마침내 청⋅일과 러⋅일 간의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대한 제국이 붕괴되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를 넘기면서 민족적 각성은 개화, 자강과 자주, 혁신의 근대 의식을 고조시키고 민족주의를 정립시켜 20세기 초의 항일 운동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고, 이로써 식민지 지배하의 민족 독립 운동의 방향을 결정하였다

1910년 이후의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한민족의 민족 운동을 탄압하고, 경제적 착취를 강요하며, 한국 사회와 문화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 문화를 수호하면서, 1919년에는 3⋅1 운동을 일으키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한 항쟁을 계속하여, 1945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말을 계기로 민족 해방을 맞게 되었다.

요컨대, 근대사는 개화-근대화를 추진하여 근대 사회로의 큰 전환을 이룩하면서 제국주의 외세와 끈질긴 항쟁을 통하여 민족사의 자주성을 지켜 온 데 특징이 있다.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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