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고대 사회의 발전4. 고대 문화의 발달

(1) 고대 문화의 성격

삼국 문화의 성격

고대 문화는 초기에는 소박한 옛 전통이 많이 나타나 있었으나, 통일기를 전후해서는 여러 갈래의 문화를 수용, 종합하여 고도의 세련미를 보여 주었다. 삼국 시대의 설화나 노래, 그리고 음악 등에는 서민들의 전통적인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배층 사회에서는 남북조 시대의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보다 세련되고 다채로운 귀족 문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불교였다. 삼국에서는 불교 사원의 건축과 불상의 조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음악에서도 화려한 면이 새로 가미되었다.

한편, 삼국의 문화는 각각 그 특징이 있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대결하는 동안에 중국 문화에 대한 비판 능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외래 문화를 보다 개성 있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고구려 예술에는 패기와 정열이 넘치고 있다.

강서 우현리 고분 벽화(청룡도)   

백제는 중국 문화의 수입과 전달에 큰 활약을 하면서 세련된 문화를 이룩하였다. 강이 많고 평야 지대에 위치한 백제는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백제 예술은 귀족적 성격이 강하여 우아하고 미의식이 세련되었으나, 반면 지방의 토착 문화를 충분히 육성시키지는 못하였다.

신라는 그 문화에 소박한 옛 전통이 남아 있었으나, 뒤에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 기반을 넓혀 가면서, 조화미 속에 패기를 담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상 생활에 쓰였던 그릇 형태의 신라 토기나 토우에서와 같이 전통적인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미술품이 있는가 하면,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같이 미의식이 뛰어난 미술품도 있다.

경주 배리 삼존불상(본존불상)   

이와 같이 삼국의 문화는 비록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뒷날 민족 문화를 이루어 갈 수 있었다.

통일 신라 문화의 성격

삼국민은 본래 막연한 동족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당 전쟁을 치르면서 동족 의식이 보다 강화되었다. 또,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새로 확대된 사회⋅경제 기반 위에서 각기 개성을 가지면서 발전되어 온 고구려, 백제의 문화를 융합하고, 종래 신라 문화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족 문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밖으로는 당 문화를 중심으로 한 국제 문화 조류에 직접 참여하여 한층 더 세련된 문화를 발전시켰다.

신라 중기의 예술은 주로 조형 미술이 중심이었으며, 대부분 종교 생활에서 나온 불교 미술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통일 신라 때처럼 미술에 종교적인 정열을 쏟은 때는 일찍이 없었다. 이 시기의 예술 세계는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었으며, 통일과 균형의 미를 통하여 불국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통일기의 예술은 귀족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진골 귀족뿐만 아니라 6두품 귀족들의 활동도 부각되었다. 그런가 하면 문화가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아울러 각 분야에 걸쳐 상층 문화만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즉, 귀족 종교로 머물러 있던 불교가 일반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국민 생활 전반을 자극함으로써 민간 문화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발해 문화의 성격

북쪽의 발해도 독특한 문화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발해는 귀족 문화가 발달하여 수도인 상경은 만주 지역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발해는 문왕 이후, 당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문화를 더욱 발전시켰으며, 또 중앙 아시아 지역의 여러 민족과 교류함으로써 그 문화의 내용이 보다 풍부해졌다.

발해의 문화는 전통적인 고구려 문화의 토대 위에서 성립되었으므로, 온돌 장치나 미술 양식 등에서 고구려 문화의 색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저변에 소박한 말갈 문화가 광범하게 깔려 있어서 그 문화 전반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