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고구려 산성
고구려의 산성은 중국 요령성 관내에 100여 개소를 비롯하여 압록강 북쪽지역에 수백 개소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압록강 이남의 북한지역에도 약 30여 개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모두 包谷式山城이라고 알려져 있다.456)
이들 가운데 高句麗新城은 遼寧省 撫順市 북쪽 高爾山에 위치하고 있어 山名을 따서 高爾山城이라 부르기도 하고, 산밑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北關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西川王代부터≪삼국사기≫에 나오는 新城을 이 산성에 비정하고 있다. 고구려 원정군의 총사령관을 맡았던 李勣이 新城은 고구려의 요새지이므로 이를 먼저 빼앗지 않고서는 다른 城들을 공략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458)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산성이다.
新城은 표고 230m의 將軍峰을 중심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東城과 西城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벽 높이는 2∼5m, 둘레는 약 4㎞이며 동·서·남·북 4개소의 문지가 남아 있다. 동·남쪽으로는 三重으로 분리되어 있는 子城이 있어 복잡한 평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東城이 고구려 때 축조된 성지로 판단되고 있다. 東城의 남문지는 높이 10m의 판축토성이며, 서쪽으로 높이 5m의 판축토성이 남아 있다. 아마도 甕城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남문지 옆으로 水溝가 있는데, 큰돌들이 남아 있는 상태로 보아서 水口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산성은 출토유물로 보아서 遼·金代까지 사용했던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459)
456) | 蔡熙國은 압록강 이북에 있는 산성 위치를 보고한 바 있으며, 三上次男·田村晃一은 고구려의 新城으로 알려져 있는 北關山城을 조사 보고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한·중국교가 수립된 후, 1992년에 앞서 인용한 閔德植 논문을 효시로 車勇杰·李圭泰·申瀅植 등이 遼寧地方에 있는 고구려 城址를 답사 조사한 후 학계에 소개한 바 있으며, 다음해는 高句麗城에 대한 도록이 서길수에 의하여 발간된 바 있으나, 본격적인 조사와 보고는 아직 충분하지 못한 단계이다. 중국에 있어서는 魏存成을 비롯하여 梁志龍·辛占山·王綿厚 등에 의해서 고구려 산성이 조사 보고 된 바 있고, 李殿福은 吉林省內 고구려 산성 16개소와 遼寧省內 고구려 산성 11개소를 조사하여 보고한 바 있고, 일본에서는 三上次男·田林晃一·千田剛道 외에 東潮·田中俊明 등이 고구려 산성에 대해서 학술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蔡熙國,<高句麗城의 특징>(≪東アジアと日本≫考古·美術編, 田村圓澄先生 古稀記念會編, 吉川弘文館, 1987). 三上次男·田林晃一,≪北關山城≫(日本中央公論美術社, 1993). 車勇杰,<고구려 옛 도읍 답사기>(≪조선일보≫1992년 1월 29일). 李圭泰,<安市城><白巖城><寧遠城>(≪조선일보≫1993년 1월 28일·3월 18일·7월 22일). 申瀅植,<安市城><建安城>(≪조선일보≫1993년 12월 28·29일). 서길수,≪高句麗城≫(한국방송공사, 1994). 梁志龍,<桓仁地方高句麗地方的 槪逑>(≪博物館硏究≫, 吉林省博物館, 1992-1), 64∼69쪽. 辛占山,<遼寧境內高句麗城址的 考察>(≪遼海文物學刊≫, 遼寧省考古博物館學會, 1994-2). 王綿厚,<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的硏究>(≪遼海文物學刊≫, 遼寧省考古博物館學會, 1994). 東潮·田中俊明, 앞의 책. 李殿福, 앞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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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 ≪舊唐書≫高麗傳. |
459) | 三上次男·田林晃一, 앞의 책, 66쪽. 李殿福, 앞의 책, 76∼78쪽. 東潮·田中俊明, 앞의 책, 339∼34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