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Ⅱ. 범국민적 구국운동5. 의사·열사의 항쟁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1909년 10월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는 중국 동북지방(만주)을 시찰하기 위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일본측에서는 이토의 만주 여행이 개인 자격으로의 여행이며 아무런 사명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발표하였으나, 이 여행에는 완전한 식민지 지배로의 한국의 병합과 만주침략에 대한 현안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0460) 만주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속에서 이토는 양국간의 협상을 통하여 상호 이익을 충족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토가 안중근에게 사살당한 후 1910년 일본과 러시아가 제2차 ‘日露협약’을 체결하였는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만주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하여 양국이 이 지방에서 특수한 지위를 상호 확인하여 양국간 이해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여 동맹국으로서의 지위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0461) 따라서 이토의 만주시찰이 한국의 병탄과 만주지배를 위한 러시아와의 밀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판단한 안중근은 한국 식민지화의 원흉으로서 이토를 지목하고 그를 제거하고자 했다.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읍 광석동에서 진사 安泰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仁壽는 상당한 자산가로서 도내의 명망가였으며, 부는 초년에 신동으로 불릴만큼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안중근은 6세 때 신천군 淸溪洞으로 이주·성장하였다.0462) 1905년 말 구국운동의 뜻을 펴고자 고국을 떠난 안중근은 중국의 威海衛·上海 등지를 편력하면서 동지를 구하고 해외정세를 관찰하였다. 그 뒤 1906년 1월 부친상을 당하여 귀국한 후 교육사업에 진력하여 평안도 진남포에 거주하면서 三興·敦義학교를 창설하여 후진양성에 힘쓰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07년 일본에 의한 군대 해산과 고종의 폐위 속에서 안중근은 북간도를 경유하여 露領의 海蔘威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李範允·嚴仁燮·金起龍 등과 교유하면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0463) 1908년 6월에는 두만강을 건너 慶興에서 일본군과 세 차례 교전하여 일본군 5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會寧에서의 격전에서는 대패하고 말았다.0464) 이와 같이 그가 의병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할 당시부터 무장투쟁이 구국의 첩경이라는 믿음의 결과였다. 안중근은 민족의 당면한 과제로 교육과 실업에 의한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는 일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0465)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였지만 국권상실의 위기에 직면하여 현실적으로는 무력투쟁이 국권수호를 위한 적극적·우선적인 방법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0466) 그러나 1908년 8월 이후 본격적인 국내진공작전이 실패하고, 그는 1909년 3월 20일 노보키에프스크에서 동지 11명과 함께 ‘斷指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왼쪽 무명지 첫마디를 모두 잘라 그 피로써 ‘대한독립’ 4자를 써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일제 고관 및 친일파 암살을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0467) 이 결사는 일종의 解黨決心式과 같은 것으로 의병투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공동행동보다 개별행동을 지향하는 투쟁방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토의 저격이 大東公報社를 중심으로0468) 한 특공대의 소수 정예대원에 의한 거사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의병전쟁의 연장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10년 10월 10일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대동공보사에서 안중근을 비롯한 7명은 한국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가 제정러시아 大藏大臣 코코프체프(Kokovsev, V. N.)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보도에 대하여 ‘그를’ 포살할 절호의 기회라고 결정하였다. 이때 안중근이 자진하여 실행 책임을 맡았으며 禹德淳도 안중근과 공동 실행할 것을 제의하였다.0469) 그리하여 1909년 10월 21일 兪鎭律과 李剛 등의 전송을 받으면서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였다.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은 대동공보의 하얼빈 지국장인 金衡在와 회동하고 이번 거사에 曺道善을 합류키로 하였다. 이리하여 이들 4인은 거사계획을 상의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0470) 따라서 이토의 도착 지역인 하얼빈과 蔡家溝 두 곳에 저격 지점을 설정하였다.

안중근은 기차의 정차역인 채가구에는 우덕순·조도선을 배치하고 하얼빈에는 자신이 직접 담당하기로 하였다. 그 계획은 다음과 같다. 채가구에서 기차가 정지하면 우덕순과 조도선이 기차에 뛰어 올라 이토를 저격하고 이것이 실패하면 종착지인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아침 9시경 이토와 코코프체프는 열차 안에서 약 30분간 중요 회담을 마친 뒤 플랫폼으로 나와서 환영나온 하얼빈 주재 각국 외교사절과 인사를 나누고 러시아군 의장대를 사열하였다. 그는 사열을 마친 뒤 뒤돌아 서서 다시 귀빈열차 쪽으로 향하였다. 이 때 러시아 의장대 뒷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안중근은 이토가 자기 옆을 지나가자 이를 놓치지 않고 이토의 정면에서 그를 향하여 정확히 권총 3발을 발사하였다. 안중근이 이토를 향하여 발사한 탄환은 이토의 가슴과 복부에 정확하게 명중되어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동양의 평화를 상투적으로 외쳤던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는 그가 침략했던 대한제국의 애국청년 안중근에 의해 총살되었다.0471)

이와 같이 안중근의 이토 암살은 그 자체로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안중근 의거는 한 개인의 단발 행동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계획적·조직적인 행동이었다. 사살 대상으로 한국 식민지화 정책의 거두였던 이토를 택한 것은 비록 거사가 실패하였을지라도 사건 자체로 인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결정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안중근이 사살 대상으로 이토를 택한 것은 그가 ‘동양평화0472)를 해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제일의 적’이었기 때문이다.0473) 안중근이 제시한 이토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이토 히로부미의 罪狀 15항목>

一.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

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에 대하여 매우 불리하게 한 일

一. 1907년 12개조 조약을 체결하여 모두 한국에 대하여 군사상 대단히 불리하게 한 일

一.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일

一. 한국의 군대를 해산시킨 일

一. 불평등 조약의 체결에 대하여 분기한 한국인 의병 등 양민을 살해한 일

一. 한국의 정치, 기타의 권리를 약탈한 일

一. 한국 학교에서 사용한 좋은 교과서를 폐기처분한 일

一. 한국 인민에게 신문의 구독을 금한 일

一. 화폐개혁과 第一銀行券 발행한 일

一. 3백만원의 국채를 모집하고 한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토지를 수탈하기 위하여 사용한 일

一. 동양평화를 교란시킨 일

一. 한국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호의 이름을 빌어 한국 정부의 일부 인사와 의사를 통하여 한국에 불리한 시정을 펼친 일

一. 일본 孝明先帝를 살해한 일

一. 한국민이 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황제나 기타 세계 각국에 대하여 한국은 무사하다고 속이고 기만한 일(國史編纂委員會 編,≪韓國獨立運動史≫資料 6, 3∼4쪽).

한편 안중근에 의한 이토의 암살은 온 세계에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다. 식민지 정책에 몰두하고 있던 열강들은 이토의 죽음에 깊이 동정하고 있는 데 반해,0474) 중국 북경정부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약소 민족국가는 안중근의 의거를 크게 보도하면서 일본의 팽창정책에 큰 저해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하였다.0475) 이와 같이 안중근의 이토 암살은 당시 이토의 국내외적 인지도 및 일본의 대륙침략정책, 조선의 식민지화 정책의 실체를 국내외에 선전하고, 이 자리를 빌어 전 세계를 향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려는 독립운동가의 민족사적 행위였다. 왜냐하면 안중근은 공판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암살자가 아닌 한국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동양평화의 적 이토를 척살한 것이기에 적군의 입장으로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안중근이 공판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이토 사살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야욕을 세계에 알리고 나아가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전쟁임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다.

<金周溶>

0460)김창수, 앞의 책, 52쪽.
0461)外務省 編, 앞의 책, 332쪽.
0462)≪안중근의사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 1979), 17∼18쪽.

市川正明, 앞의 책, 137∼141쪽.

安重根의 소년,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愼鏞廈, 앞의 글, 307∼312쪽 참조.
0463)市川正明, 앞의 책, 147쪽.
0464)김창수, 앞의 책, 53쪽.
0465)≪안중근의사자서전≫, 106∼108쪽.
0466)白奇寅,<安重根의 國權守護運動과 思想>(≪淸溪史學≫13, 1997), 444쪽.
0467)단지동맹 회원은 金基龍·姜基順·劉致鉉·朴鳳錫·白藥奎·康斗瓚·黃吉秉·金伯春·金春化 등이었다(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 6, 331쪽).
0468)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 7, 205쪽.
0469)愼鏞廈, 앞의 글, 338쪽.

金鎬逸,<安重根義士의「동양평화론」>(≪安重根의 義烈과 東洋平和論≫, 安重根義士 義擧 第89周年 紀念 學術심포지엄, 安義士紀念館, 1998), 42쪽.
0470)愼鏞廈, 위의 글, 345쪽.
0471)이토 사살 사건으로 안중근을 비롯한 총 15명이 기소되었으며 일제는 외국인에 대한 폭압적 영사재판권을 실시하여 1910년 2월 14일 안중근에게 사형, 우덕술에게 징역 2년, 조도선·劉東夏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하였다(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 7, 487∼488쪽). 이러한 재판을 거쳐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31세의 나이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0472)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이 참조된다.

신용하, 앞의 글, 351∼356쪽.

김호일, 앞의 글, 51∼59쪽.
0473)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 6, 176쪽.
0474)國家報勳處,≪亞洲第一俠客≫3(1997), 275∼276쪽.
0475)市川正明, 앞의 책(1979), 196∼20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