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Ⅱ. 18세기의 민중운동2. 유민과 명화적2) 명화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명화적은 전시기에 비해 한층 발전된 조직력, 무장력, 전투력을 바탕으로 산악지대나 도서지방과 같이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근거지로 하여, 도성이나 한강 장시와 같이 물화가 집산되는 곳, 경기 내의 양주와 같이 교통의 요지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명화적이 출몰한 산악지대는 강원도의 소백산지대, 평안도 폐사군, 함경도 안변 등의 지역과 전라도의 변산 주변 읍인 정읍·장성과 월출산 근방 등이다.313) 이러한 지역에 근거지를 확보한 명화적은 魏伯珪가 禁盜之弊를 논하면서 “도적들이 크게는 수십 명, 작게는 십여 명으로 무리를 지어 서로 내통하는데, 백리 간에 서로 상응하며 경계를 넘어 연결되어 있다”314)고 우려할 정도로 국지적인 활동영역을 넘어 전국적인 연계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근거지를 확보하고 활동무대를 넓힌 명화적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명화적의 주된 활동으로는 첫째, 양반이나 토호 등 악덕지주가를 습격하여 지대와 고리대 등을 통해 착취를 자행해 온 것에 대해 보복하였으며 또한 포교·영장 등 악형을 자행하는 포악한 관리들의 만행을 응징하였다. 현종 8년(1667)에 士人 朴自三의 노비가 수백 금을 내고 노비살이에서 벗어난 후 명화적 일당을 끌어들여 박자삼의 집에 불을 지르고 그 돈을 다시 탈취하였다.315) 영조 30년(1754)에는 서울의 서부 대현에 사는 양반 沈海普의 집에 명화적 5∼6인이 몽둥이를 들고 침입하여 방안에 쌓아둔 재화를 모조리 약탈해 갔으며,316) 영조 48년에는 명화적이 대낮에 도성에 출현하여 포교를 살해하였다.317)

 둘째, 관부를 습격하여 물화와 군기를 탈취하거나, 지방에서 중앙으로 보내는 각종 상납물을 약탈하였다. 숙종 29년(1703)에 瑞興의 봉수대를 명화적이 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였으며,318) 영조 14년에는 三登縣에 출몰한 명화적이 총포를 쏘고 횃불을 치켜들며 관부에 들어가 勅需庫의 돈과 재물을 약탈하였다.319) 명화적은 이처럼 관부를 습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상납물을 탈취하기도 하였다. 숙종 17년 長湍討捕使의 보고에 의하면, 서울로 상납할 布物을 싣고 오는 사람들을 파주 읍내에 맞아들였는데, 명화적이 말을 타고 밤중에 돌입하여 무리를 인솔하고 온 頭目奴를 해치고 貢木을 탈취하였다.320) 영조 32년에는 명화적이 成歡의 주막을 공격하여 공주와 영동에서 올려보내는 軍布錢을 약탈하기도 하였다.321)

 셋째, 유통로를 장악하여 상인들의 재화를 약탈하였다. 이에 따라 지방감영으로부터 명화적이 주요 도로를 장악하여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보고가 잇따를 정도였다. 기호지방에서는 명화적이 대낮에 길거리에서 재화를 빼앗고 사람을 해치므로 상점들이 문을 일찍 닫고 늦게 열며 상인들은 무리를 지어 다녀야 할 정도였다.322) 또한 명화적은 물화가 집산되는 장시에도 출몰하여 안성장시는 도적의 소굴이라 지칭될 정도였다.323)

 이처럼 명화적의 약탈 및 공격대상은 주로 양반, 토호 지주층, 관료, 여각, 객주, 그리고 중앙 상납전이며 나아가서는 관아로 돌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이들에게 약탈 물품이 풍부하였다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명화적 집단과 이들 사이에 존재하던 대립관계가 표출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토호 지주층과, 봉건지주나 관료들의 유통권을 장악해가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던 여각, 객주에 대한 공격은 이들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 타격을 주었으며, 상납전의 약탈이나 관아돌입은 국가권력에 대한 반항의 한 조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기 명화적의 활동은 일정 정도 반봉건 저항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하겠다.324)

 명화적은 이러한 약탈행위를 넘어서 세력을 결집하여 역모를 꾀하거나 변란세력과 연결되기도 하였다. 인조 7년(1629)에 李忠景과 奴 戒春과 幕同 등이 중심이 된 명화적 일당은 산골짜기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유민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장한 후, 崔瑩과 南怡將軍의 초상을 그려 제사를 지내는 한편 조직과 강령을 갖추고 철원·평강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325) 이들이 최영과 남이 장군을 받들고서 역모를 꾀했다는 점에서 이 시기 명화적의 활동이 갖는 정치 지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명화적은 향촌 내의 변란세력과 연결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종 12년(1671)에 錦山의 좌수 李光星과 교생 禹明 등이 50여 명의 무리를 모아 관부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나아가 龍潭縣의 군기와 무주 적상산성의 관향곡을 탈취하여 덕유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山行砲手, 승려와 결탁하여 세력을 확장할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발각되어 대부분 주살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체포될 무렵에 명화적 백여 명이 징을 두드리고 피리를 불며 금산 관아를 공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명화적은 이들 변란세력과 결탁하고 있었다.326)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8세기에는 사회경제적 모순에 따라 농촌에서 축출된 많은 유민들 중의 일부가 명화적으로 전화하여 지배층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였는데, 이들이 지배층과 국가권력의 수탈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계층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 몰락농민층이 명화적과 같이 도적의 형태로 사회모순에 저항하게 된 까닭은 농민들의 불만을 조직하여 표출할 수 있는 토양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국가의 지방지배력에 한계가 있어 이들이 산악지대나 도서지방을 활동 근거지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기 명화적의 활동이 지배층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저항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도적활동이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잉여물에 대한 약탈을 본질로 하는 까닭에 사회모순을 발전적으로 해결하려는 전망을 지니고 있지 못하였다. 둘째, 이들은 생산기반으로부터 유리된 층이므로 투쟁이 지극히 일회적이거나 즉흥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에 토대를 둔 지속적이며 견실한 투쟁이 되지는 못하였다. 셋째, 앞의 두 조건 때문에 도적집단은 농민과 결합하는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없었다.327) 요컨대 유민의 전화과정에서 분기된 명화적의 일부는 봉건사회 해체기에 반봉건 지향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반봉건 투쟁에서 동일한 이해기반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대응하기에는 미숙한 계층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명화적 활동은 중세체제 내의 항쟁에서 19세기의 중세체제를 부정하는 민란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위치하여 조선 후기 민중운동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즉 조선 후기 민중운동은 18세기를 거치면서 양적·질적으로 성장하여 19세기에 이르러 중세체제를 부정하고 투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던 것이다.

313)한상권, 앞의 글.
314)魏伯珪,≪存齋全書≫권 3, 封事 禁盜之弊.
315)≪顯宗改修實錄≫권 18, 현종 8년 10월 기축.
316)≪英祖實錄≫권 82, 영조 30년 11월 정축.
317)≪英祖實錄≫권 118, 영조 48년 4월 병자.
318)≪肅宗實錄≫권 38, 숙종 29년 3월 기미.
319)≪英祖實錄≫권 47, 영조 14년 12월 무술.
320)≪備邊司謄錄≫45책, 숙종 17년 정월 6일.
321)≪英祖實錄≫권 88, 영조 32년 윤 9월 경자.
322)≪正祖實錄≫권 21, 정조 원년 12월 기미.
323)≪英祖實錄≫권 66, 영조 23년 12월 갑술.
324)裵亢燮, 앞의 글, 204쪽.
325)≪仁祖實錄≫권 20, 인조 7년 2월 계축.
326)≪顯宗改修實錄≫권 25, 현종 12년 11월 정축.
327)한상권, 앞의 글, 5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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