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개항의 역사적 의의
바야흐로 21세기를 맞이한 오늘의 상황은 단순히 연대기상으로 세기말의 전환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인류사회의 모습이 크게 바뀌어지는 전환기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1980년대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냉전체제가 종식되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세계화’로 표방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가 전지구화하고 계층별 국가별 격차가 커지는 등 세계사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시대’의 도래로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역사전개 과정이 단순히 개인과 개인, 집단과 민족 내부 성원간의 관계로 한정되지 않고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와 같은 사회현상은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출현하였을까. 역사학에서 시대구분을 할 때 현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시기를 ‘근대’라고 명명하는데, 근대사회의 일반적 특징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시장경제의 확립, 발전된 과학기술과 합리적 사고방식 및 원칙, 새로운 사회세력인 시민 혹은 계급의 형성 등을 들고 있다.445) 즉,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분업과 협업,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보편적으로 수용하였고,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과 보급에 힘입어 지구 전체를 하나의 시장, 하나의 생활권으로 엮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근대사회의 국가간 교류가 대체적으로 지역적으로는 문명권을 단위로 하였고, 교류의 내용 또한 제한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산업혁명 이후 형성된 근대사회의 국제관계는 전지구를 단일시장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체제 위에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에서 민족과 국가간의 접촉과 결합은 단위국 내부의 요인이나 지역으로 제한되었던 문명권 내의 요인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봉건사회 내부에서 싹튼 반봉건적인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자생적으로 발달시킨 반면 비서구 국가들은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자립적인 변혁을 수행하기 이전 단계에서 선진자본주의 열강의 시장권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즉, 비서구 국가들이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은 외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형성과정과 밀접하게 맞물리면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 학계의 연구는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근대사회 출현의 출발점으로 강화도조약을 전후한 시기 한국사회의 변화에 비중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446) 한국사회에서도 조선후기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맹아들이 자체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되면서 그 발전이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는 강화도조약과 개항의 의의에 대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의 편입과 조선사회의 대응과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최근 중국근대사와 일본근대사의 연구성과들은 이른바 ‘서양의 충격’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의 역사로 이해해 왔던 종래 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관점을 비판하고, “아시아사의 내적 구조와 역사적 전개의 논리, 아시아 전근대사와 근대사의 연속성을 검토”함으로써 아시아의 입장에서 아시아 근현대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447) 이러한 관점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를 한국근대사에 적용하여 분석을 시도하기에는 한국근대사의 개별 사실에 대한 세계사적 차원에서의 분석이 충분하지 않고, 중국사와 일본사와의 차별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