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Ⅲ. 국학 연구3. 국사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사회경제사학

 192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도입되고 성행하면서 한국사를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세계사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일원론적 역사발전법칙으로서의 사적 유물론을 한국사에 적용하고자 한 이들은 한 시대의 생산관계를 해명하고, 또 그것이 역사의 어느 발전단계에 해당되는가 하는 시대구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이러한 경향의 역사학을 사회경제사학이라 지칭한다.200)

 그 대표적인 인물이 東京商科大學 출신으로 1920년대 중반부터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 있던 白南雲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그는 한국사를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파악한≪朝鮮社會經濟史≫와≪朝鮮封建社會經濟史≫上을 저술하였다. 각기 한국의 원시 및 고대와 고려사를 다룬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미간행된≪조선봉건사회경제사≫下는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사를 다룰 예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유물사관을 수용한 학자들은 백남운과 더불어 李淸源·金洸鎭·金台俊·李北滿·朴文圭·尹行重·朴克采·全錫淡 등을 들 수 있는데, 중국문학을 전공한 김태준을 제외하면 대개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이었다.

 백남운은≪조선사회경제사≫의 첫 부분에서, 한국사 연구의 임무를 “과거에 있어서 역사적·사회적 발전의 변동과정을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구명하는 동시에 그 실천적 동향을 이론화하는 것”으로 삼고, 그 방법으로 “인류사회의 일반적 운동법칙으로서의 사적 변증법에 의하여 그 민족생활의 계급적 여러 관계 및 사회체제의 역사적 변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다시 그 법칙성을 일반적으로 추상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하였다.201) 그것은 결국 사적 유물론에 의해서만 한국사의 민중생활과 사회구성의 발전을 법칙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식민지 현실의 본질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한국사에 있어서 경제적 사회구성의 단계를 원시공산제사회-노예제사회(삼국 정립기)-아시아적 봉건제사회(삼국시기 말부터 최근세)-외래자본주의사회(일제하 현재)로 전개되었다고 보았다.202)

 따라서 백남운을 비롯한 사회경제사학자들은 민족주의사학이나 식민주의사관을 특수사관으로 지적하며 비판하였다. 백남운은≪조선사회경제사≫의 앞부분에서 일제의 식민주의사학뿐 아니라 민족주의사학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최근 우리 선배들은 조선사학을 위하여 얼마만한 공헌을 하였을까. 어떠한 공헌을 했는가. 혹은 문헌고증을 위하여, 혹은 고적답사 및 유물수집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어느 것이나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 사학의 영역에서 하나의 새로운, 그러나 불행한 각인으로서의 ‘특수사관’이라는 외래품을 일본에서 수입한 것도 우리 선배일 것이다. … 우리 선배의 기민한 수입은 국정의 격변으로 말미암아 부리를 내리지 못하고 골동품을 수집하는 편력학도로서 정치적으로는 버림을 받게 된 정세이지만,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조선문화사의 독자적인 소우주로서 특수화하려는 기도가 비교적 뿌리깊게 습관화되어 있다. 이러한 종류의 특수성 외에 이것과는 외관상 다른 官製의 특수성이란 것이 따로 규정되어 유포되어 있다. 그것은 관리 諸公의 ‘조선특수사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두 가지 형태의 특수성의 차이를 찾아보면, 전자가 신비적·감상적인데 대하여 후자는 독점적·정치적인 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류사회 발전의 역사적 법칙의 공통성을 거부하는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따라서 반동적이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사실은 닮은꼴의- 특수성은 조선사학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정력적으로 배격해야 할 현실적인 대상이다(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 改造社, 1933, 6∼7쪽).

 구체적으로 그는≪조선사회경제사≫에서 단군신화의 해석에 있어 설화적 관념표상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예로 신채호와 최남선을 거명하였고, 실증주의적인 편견성에서 임의적으로 평가하는 예로 나카 미치요(那珂通世)와 시라도리 구라기치(白鳥庫吉)·오다 쇼오고(小田省吾)을 비판하였다.203) 즉 백남운은 식민주의사학이나 민족주의사학을 특수사관으로 보고 비판하면서, 일원적인 역사법칙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유물사관을 수용한 학자들의 민족주의사학에 대한 비판은 백남운뿐만 아니라, 이청원이나 김태준에게서도 보인다. 특히 정인보가 제기한 ‘얼’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졌다.

儒敎訓話的이고 정책적이고 반봉건적인 ‘조선학’은 조선의 역사적 과정을 세계사와는 전혀 별개의 독립적인 고유한 신성불가침의 ‘5천년간의 얼’을 탐구하는데 열심이고, 그 공식의 천재는 ‘단군’에 분식하고, 그 전체적인 영웅은 ‘李舜臣’의 옷을 빌려 입고, 그 재간 있는 사람들은 ‘丁茶山’의 가면을 쓰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리하여 ‘얼’에 의하여 이루어진 신비적인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신흥 역사과학은 물론 이와 대립한다(李淸源,≪朝鮮社會史讀本≫, 白揚堂, 1936, 1∼2쪽).

 이렇듯 이청원은≪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정인보의<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비역사적인, 신비적인 역사를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김태준은 정인보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비난과 함께, “조선민족을 選民的으로 높이려 하고, 통일한 5천년간의 민족혼을 환기하려는 것은 역사의 왜곡된 선입견과 공연히 허장성세하려는 데서 오는 것으로 역사와 독자들에게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고까지 극언하기에 이르렀다.204)

 이들은 단군신화를 들어 민족주의사학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었다. 백남운이≪조선사회경제사≫에서 신채호 등의 예로 단군신화에 민족주의사학의 주장을 비판하였지만, 김태준도 같은 맥락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일제 관학자들의 합리주의적 假象도 반대하며,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환상적·독자적인 것도 거부한다고 하였다.205)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실증사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물론 일제의 관학자들이 실증을 가장하여, 합리주의의 명분 아래 식민주의사학을 강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실증주의와 과학적 이론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실증은 역사적 구체성을 일반화하기 위한 예증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백남운은206) 식민지 강점을 합리화하고자 한 식민주의사학이 가장한 실증주의를 비판하였던 것이다.207) 그리고 그것은 震檀學會를 주도한 한국인 실증사학자들에 대한 일정 부분의 비판을 포함한 것이었다. 김태준은≪震檀學報≫제3권에 실린 논문들을 언급하면서 역사연구에 있어 실증사관에 그치지 않고 유물사관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많은 역사적 소재를 갖고 있다. 하나 그를 충분히 비판할 만큼 예리한 칼이 없었다. 과학자의 유일한 무기-특수사관이 아닌 정상적 ‘물적 사관’-으로써 석기인의 생활을 엿보고 고려인의 회화를 보고 고대의 가요를 보고 雄鷄信仰을 보아서 현대와의 어떤 관련하에 流傳되어온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金台俊,<震檀學報 第三卷을 읽고>完,≪朝鮮中央日報≫, 1935년 11월 19일).

 이렇게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일원적 역사 발전법칙의 적용이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임을 강조하였다. 즉 백남운은 사적 유물론을 통해서만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고 하였고, 결국 그 방법론에 의하여 한국사의 발전단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과 계급투쟁을 역사의 기본 축으로 하여 한국사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조선 민족의 발전사는 그 과정이 아무리 아시아적이라고 하더라도 사회구성의 내면적 발전법칙 그 자체는 오로지 세계사적인 것이며, 삼국시대의 노예제사회, 통일신라기 이래의 동양적 봉건사회, 이식자본주의 사회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선역사의 기록적 총발전단계를 나타내는 보편사적인 특징이며, 그것들은 제각기 특유의 법칙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조선사 연구의 법칙성이 가능하게 되며, 그리고 세계사적 방법론 아래서만 과거의 민족생활 발전사를 내면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현실의 위압적 특수성에 대해 절망을 모르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 改造社, 1933, 9쪽).

 나아가 그는 역사연구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뒤적이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본질적으로 그대로 파악하는 동시에 장래를 보는 것”으로 주장하였다.208) 역사학의 실천성이 강조되었다고 하겠다.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일원적 역사 발전법칙 곧 유물사관의 공식을 받아들이면서, 특수성이 두드러져 보편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인 민족주의사학을 비판하였고, 실증사학도 일정하게 비판적인 입장이었으며, 식민주의사학에 대해서는 세계사의 보편적인 틀로써 대항하고 있었다. 물론 유럽의 역사발전을 기준으로 한 법칙을 실증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한국사에 적용하려는 공식주의는 한국사 연구의 또 다른 한계를 유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사를 사회·경제의 관점에서 사회발전단계론을 통하여 이해하고자 한 점이나, 피지배계층을 역사의 무대에 세운 점은 사회경제사학이 갖는 사학사적 의의라고 할 것이다. 또한 식민주의사학의 허구성을 밝히고, 한국사를 세계사적 발전과정상에 놓으려고 한 점도 의미가 있었다. 다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회경제사학자들의 대부분이 북한으로 옮겨가게 되자, 남한에서의 학문적인 계승은 이루어지지 않고 말았다.

200)사회경제사학에 관해서는 주 1)의 연구 이외에 다음이 참고된다.

李基白,<實證史學과 社會經濟史學의 問題>(≪民族과 歷史≫新版, 一潮閣, 1994).

―――,<唯物史觀的 韓國史像>(≪韓國史像의 再構成≫, 一潮閣, 1991).

姜晉哲,<社會經濟史學의 導入과 展開>(≪國史館論叢≫2, 國史編纂委員會, 1989).

방기중,≪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역사비평사, 1992).
201)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改造社, 1933), 5쪽.
202)白南雲, 위의 책, 序文 3쪽.
203)白南雲, 위의 책, 14∼15쪽.
204)金台俊,<鄭寅普論>(≪朝鮮中央日報≫, 1936년 5월 16일∼19일).
205)李基白,<唯物史觀的 韓國史像>(≪韓國史像의 再構成≫, 一潮閣, 1991), 179∼180쪽. 金台俊은<檀君神話硏究>를≪朝鮮中央日報≫1935년 12월 6일부터 24일까지 13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206)白南雲, 앞의 책, 428쪽.
207)방기중, 앞의 책, 138∼142쪽.
208)白南雲,<朝鮮史觀 樹立의 提唱>(≪經濟硏究≫4, 1933), 3쪽.

≪彙報≫(이론과 실천, 1991), 8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