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Ⅱ. 신석기문화1. 신석기시대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1) 후빙기의 자연환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화석인골의 몇 가지 특징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1) 생계경제
            • (2) 구석기시대의 주거지
            • (3) 구석기의 도구제작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비교와 문제점
          • 2) 일본
            • (1) 한반도와 일본의 자연환경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3) 시베리아
            • (1) 구석기유적의 발견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시대설정
            • (2) 연구사 개관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1) 인골의 인류학적 연구
            • (2) 인골의 해부학상 형태 비교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조개더미
            • (3) 무덤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예술품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교역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1)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영역구분과 지역성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1) 신석기문화의 이동
            • (2) 남해안계와 규슈지역의 신석기문화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1) 미송리 하층과 후와 하층
            • (2) 서포항 Ⅰ∼Ⅲ기층 당산유적과 소주산 중·하층, 오가촌기
            • (3) 쌍학리유적, 서포항 Ⅳ기층과 소주산 상층기
            • (4) 신암리 Ⅰ기층, 농포·호곡동 Ⅰ기층과 우가촌 하층기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다. 한국의 후빙기 자연환경

가) 기후와 식생변화

(가)현재 기후와 식생

 우리 나라는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에서 남쪽을 향하여 바다 쪽으로 뻗어 세 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중위도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세계 기후구분에 따르면 네 계절이 뚜렷한 온대성기후의 특징을 지닌다.313) 남북 길이가 735km나 되어 기후구를 세분하면 다섯 지역으로 나뉜다. 식생에 따라 지역을 나누어 보면 남쪽으로부터 남해안 기후구(난온대 상록활엽수림), 남부기후구(난온대 낙엽광엽수림 남부), 중부기후구(난온대 낙엽광엽수림 북부), 북부기후구(냉온대 낙엽광엽수림), 개마고원기후구(아한대 침엽수림)로 나뉜다(<지도 1>).314)

 이와 같은 식생환경은 5,000BP쯤에 이룩된 것이다. 후빙기 동안 지금보다 따듯했던 시기에는 식생한계가 북쪽으로 올라가고, 추웠던 시기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변화상을 보인다.

<지도 1>삼림분포에 따른 한국의 기후구분

(나) 후빙기 기후와 식생변화

 우리 나라 후빙기 기후와 식생변화는 후빙기 쌓임층에서 나온 꽃가루조사, 쌓임층에 들어 있는 유기물의 탄소동위원소 비율과 유황함량을 조사하여 밝혀진 것이 있다. 그 밖의 고고학발굴에서 나온 자연유물들 가운데 동식물자료들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종들이 나온 것이 있어 유적이 이루어질 당시의 기후를 미루어 볼 수 있다.

 속초 영랑호 아래 쌓임층에서 뽑아낸 유기물 탄소의 동위원소비(13C/12C)와 유황함량은 17,000BP로부터 현재까지 기후변화의 주기를 보여준다(<표 1>).315) 탄소동위원소비에서는 17,000BP에서 5,500BP까지 낮은 값을 보여 추운 기후를 나타내고 5,500BP에 가장 높은 값을 보여 따듯한 기후임을 알려준다. 6,000BP에 한때 추운 기후를 보였고 4,000BP에 다소 추운 기후를 보이다가 3,500BP에 다시 기후가 따듯해진 것을 알 수 있다.

<표 1>속초 영랑호쌓임층의 유황함량과 유기물탄소 동위원소비

 유황함량에서도 10,000BP 이전은 낮은 값을 보이다가 10,000BP 이후 높은 값을 보여 빙하기의 추운 기후로부터 기후 회복기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7,000∼5,000BP에는 역시 최고값으로 나타나 따듯한 기후를 나타낸다.

 후빙기 식생변화는 쌓임층에 들어 있는 꽃가루 빈도변화를 조사하여 밝혀졌다. 속초 영랑호쌓임층에서는 10,000BP 이전에 추운 기후의 침엽수들이 주로 나오다가 10,000BP 이후 6,700BP에 참나무가 늘고 6,500∼4,500BP에 소나무-참나무 혼합림를 이루며 1,400BP부터는 소나무를 주로 하여 벼과의 풀들이 많이 자란 것으로 나타난다.316)

 동해 남부의 울산·포항지역에서 나온 결과는 6,000BP까지 낙엽활엽수림을 이루고 6,000BP 이후는 낙엽활엽수와 침엽수혼합림으로 바뀐다.317) 이러한 현상은 서해 중부지역인 일산유적에서 나온 결과와 잘 맞는다. 일산유적에서는 4,000BP부터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와 벼과 꽃가루들이 많이 나와 동해안지역보다 이른 시기에 식생환경이 변하는 데 차이가 있다.318) 이는 자연식생의 변화이기보다는 농경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에 의한 식생변형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우리 나라 후빙기의 식생변화를 여러 나라에서 나온 결과와 견주어 보면 후빙기 기후변화의 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국 동북부와 일본 규슈 서북부지역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온 것을 알 수 있다(<표 2>).

<표 2>여러 나라 후빙기 식생변화
북유럽319), 중국동북부320), 규슈321), 중부322), 동해남부 ; 동해중부323), 서해중부324)

나) 바다높이 변화

 우리 나라 후빙기의 바다높이 변화에 대해서는 현재 바다높이보다 높았던 적이 없었다는 의견과 현재보다 3∼5m쯤 높았던 적이 있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제까지 조사된 바로는 후빙기 기후극상기(Climatic Optimum)에 바다가 높았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바다높이 변화에 대한 증거는 바닷가 지형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밀물과 썰물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바닷가 지형으로는 모래톱·해안단구·해식애·늪지들이 있다.

 남서해안의 여러 곳에서 현재의 고조면보다 2∼3m 높은 곳에 옛모래톱이 나타나고, 동해안에서 3∼7m 높이의 해안단구가 나타나는 것을 후빙기에 바다가 높았을 때 이루어진 지형으로 보았다.325)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은 신구조운동(Neotectonic movement)에 따른 지각변동과 아울러 살펴보아야 정확한 바다높이 변화를 알 수 있고 또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바다높이 변화에 관한 뚜렷한 지형증거는 일산유적을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한강 하류에 있는 일산유적에서는 지형고도 6m 높이까지 옛 조간대 지층(대화리층)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현재 바다높이보다 적어도 3∼4m 높았던 시기에 쌓인 지층으로 밝혀졌다.326)

 대화리층이 쌓인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6,000∼5,000BP로 나타났다.327) 대화리층은 일산지역의 가와지토탄층 아래에 쌓여 있는 지층이며 이 층에서는 규조분석을 한 결과 바닷물에 사는 규조가 9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바닷물에 의해 쌓인 지층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328)

 바다높이 변화를 보여주는 지형증거는 고고학 유적발굴에서도 몇 군데서 드러났다. 통영 상노대도유적에서는 조가비층 사이에 갯벌층이 끼어 있고 이 층의 연대는 6,000BP로 나타났다.329) 김해 수가리유적에는 조개더미쌓임층 사이에 마모조가비층이 들어 있다. 마모조가비층은 바닷물에 의해 씻겨 이룩된 층으로 6,000∼5,000BP에 일어난 현상이다.330) 마모조가비층에서 나오는 작은 조개화석연구에서도 바닷물이 들어왔던 증거가 나타났고 바다높이는 현재보다 5m 이상이 높았다.331)

 우리 나라에서 후빙기의 바다높이 변화는 아직 자세히 연구되지 않았다. 10,000BP 이후 바다높이 변화양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6,000∼5,000BP에 현재보다 높았던 적이 있었음은 뚜렷하다. 이 시기는 후빙기에서 기후가 가장 높았고, 식생환경에서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보면 낙엽광엽수림이 북위 50°너머까지 분포한다.332)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식생변화와 바다높이 변화양상을 보아도 대체로 같은 경향을 보여준다.333)

다) 후빙기 환경변화

 우리 나라의 후빙기 기후와 식생변화 그리고 바다높이 변화들을 통하여 10,000BP 이후의 환경변화를 몇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 시기에 나타나는 환경변화들이 다른 지역과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며 또한 환경변화와 더불어 문화변동에서 보이는 관계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가)10,000∼8,000BP

 기후가 안정기로 들어가면서 기온이 올라간다. 10,000BP 이전의 식생은 영랑호와 용곡동굴쌓임층에서 나타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영랑호쌓임층에서는 풀과 겉씨식물들이 주로 나와 추운 기후였음을 보인다.334) 평양 부근 용곡동굴쌓임층에서도 15,000∼10,000BP에 쌓인 제12층에서 겉씨식물과 소나무과·명아주과가 기본을 이루는 추운 기후 식생을 보인다.335)

 10,000∼8,000BP에는 중부지방이 낙엽광엽수림지역으로 들어가고 북부지방은 침엽수림을 이루고 있다. 중국 동북부는 자작나무숲을 이루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 나라는 중석기문화단계를 거쳐 신석기문화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통영 상노대도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앞서는 잔석기를 주로 하는 문화층이 드러났다.336) 후빙기 초기에 바닷가로 나가 살림터전을 잡기 시작하던 사람들이 남긴 것이다. 그 밖에 남해안 바닷가 유적들에서도 앞으로 중석기시대 유적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동북지방의 선봉 서포항조개더미유적도 이 시기부터 이루어진 유적이다.

(나) 8,000∼5,000BP

 기온 상승으로 기후가 현재와 같은 정도에 이른다. 남부지방은 상록활엽수림을 이루고 7,000BP에는 현재보다 높은 기후로 낙엽광엽수림이 북부지방까지 확장되었을 것으로 미루어진다.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현재보다 3∼5℃ 높은 기온으로 나타난다.

 식물성장에 알맞는 기후를 갖춰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사냥-채집활동에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 신석기 전기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이다. 동해안의 서포항유적, 남해안의 동삼동·상노대도유적, 서해안의 암사동·지탑리유적들에서 나타난 이른 신석기문화층은 이 시기에 이룩된 것이다.

 6,000∼5,000BP는 바다가 높았던 시기이다. 현재보다 3∼5m 높았던 지형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북서유럽의 플란드리안해진(Flandrian Transgression), 중국의 天津해진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바닷물 온도는 지금보다 3℃쯤 높았다. 동삼동유적에서 말전복(Haliotis gigantea)조가비가 나온 것은 지금보다 따듯한 바다에서 사는 조개종이 있었던 사실을 알려준다.337) 황해도 궁산유적에서 나온 물소뼈(Bubalus sp.)화석과 복작노루(Hydropotes inermis)는 이 시기에 우리 나라의 서해 중부지방이 아열대에 가까운 따듯한 기후였음을 나타낸다.338)

 대기온도는 바닷물 온도에 영향을 받아 더 크게 변하므로 그 때의 대기온도는 오늘날보다 3℃ 이상 높았다.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기온이 3∼4℃ 높았고 장백산맥과 三江평원지역까지 낙엽광엽수림이 분포했다.339)

(다) 5,000∼3,800BP

 5,000∼4,500BP에는 기온이 조금 내려가고 바다가 물러가는 시기이다.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죠몬(繩文) 중기의 해퇴(Regression)로 보고 바다높이가 0.0∼0.7m 낮아진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북중국에서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5,600∼5,300BP)에 작은 해퇴가 있었고 식생은 전나무-가문비나무숲을 이룬다.340) 같은 시기에 북서유럽에서는 느릅나무 쇠퇴(Ulmus decline)현상을 보인다.341) 우리 나라에서는 영랑호쌓임층연구에서 기후가 내려간 증거를 밝혔다.342)

 바다가 물러가면서 생긴 바닷가 늪지는 농사에 알맞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 나라에서도 벼농사가 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 일산과 김포의 토탄층에서 나온 볍씨들은 벼농사가 시작된 증거들이다.343) 기후가 내려가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게 되고 새로운 생계방식을 찾게 되는 과정에서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400∼4,000BP는 춥고 습한 기후였다. 옛계절풍(Paleomonsoon)의 연구결과를 보면 저위도지방의 계절풍이 북쪽으로 올라가 중위도지방에 홍수가 크게 일어난 사실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관찰되었다.344) 나일강·미시시피강이 넘쳐 흐르고 북중국에서도 黃河가 넘쳐 논밭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은 강둑 위나 산비탈 쪽으로 삶의 터를 옮겼다.345) 이 시기 홍수와 관련된 증거들이 우리 나라에서 찾아진 것은 없으나 이 때 나타나는 무문토기문화를 남긴 사람들이 구릉 위에 삶터를 잡은 것을 보면 홍수와 관련된 간접증거로 미루어 볼 수 있다.

(라) 3,800∼2,000BP

 이 시기에도 기온이 점점 낮아지는 것은 영랑호쌓임층연구에서 알 수 있다.346)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야요이(彌生)해퇴라고 하며 바다높이가 0∼3m 낮아졌다.347) 식생환경은 중남부지방에서 침엽수가 늘어나고 벼과 꽃가루가 많이 나온다.348) 벼과 꽃가루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이 시기에 우리 나라의 중남부지방에서 벼농사가 널리 지어진 증거이다.

 2,400BP를 전후해서는 가장 추웠던 시기이다. 이 시기 역사에서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주민이 많이 나타난 것은 기후변화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미루어진다.

 위와 같이 우리 나라 후빙기의 환경변화와 관련된 문화변동을 살펴보았다. 아직은 우리의 연구결과가 모자라 뚜렷한 변화상을 알 수 없지만 후빙기 동안 전세계에서 일어난 환경변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기후변화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 나라 후빙기의 기후 및 식생변화와 관련하여 밝혀야 할 것은 많이 있다. 기후와 식생변화의 관계는 꽃가루분석뿐 아니라 지구화학방법에 의한 쌓임층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다높이의 변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바다자원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기본자료가 된다.349) 바다높이의 변화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신석기시대 삶의 한 모습을 밝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張浩秀>

313)차종환·이우철·이순애,≪한국의 기후와 식생≫(서문문고 151, 1975).
314)김연옥,<기후구>(≪한국지지총론≫,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0), 233∼238쪽.
315)中井信之·洪思澳,<韓國永朗湖堆積物の地球化學的手段による古氣候變遷の硏究 -安定同位體比(13C/12C)および硫化物含量による>(≪韓國における環境變遷史-昭和53年度現地調査總括-≫, 文部省海外學術調査, 1980), 57∼62쪽.
316)安田喜憲·金遵敏 等,<韓國における環境變遷史と農耕の起源>(≪韓國における環境變遷史-昭和53年度現地調査總括-≫, 文部省 海外學術調査, 1980), 1∼21쪽.
317)조화룡,≪한국의 충적평야≫(교학연구사, 1987).
318)최기룡,<꽃가루분석>(≪자연과 옛사람의 삶≫자연환경조사-고고학발굴보고:일산새도시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1, 한국선사문화연구소·경기도, 1992), 145∼154쪽.
319)Dimbleby, G. W., Pollen Analysis, Science in Archaeology, Brothwell Higgs ed., Praeger, New york, 1970, pp. 167∼177.
320)Wang Pinxian, Progress in Late Cenozoic Paleoclimatology of China : A Brief Review, The Evolution of the East Asian Environment Vol. 1, Geology and Paleoclimatology, R. O. White ed., Univ. of Hong Kong Centre of Asian Studies, 1984, pp. 165∼184.
321)前田保夫,≪繩文の海と森-完新世前期の自然史≫(蒼樹書房, 東京, 1980).
322)中村純,≪花粉分析≫(古今書院, 東京, 1967).
323)조화룡, 앞의 책.
324)최기룡, 앞의 글.
325)이러한 연구성과에는 다음의 글들이 있다.

김서운,<한국 동남단부(방어진-포항)해안에 발달하는 단구에 관한 연구>(≪대한지질학회지≫9-2, 대한지질학회, 1973), 85∼121쪽.

윤응구·박병권·한상준,<한반도 후빙기 해면변화의 지형학적 증거>(≪대한지질학회지≫13-1, 대한지질학회, 1977), 15∼22쪽.

LEE D. Y. et al., Quaternary Geology in the South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Korea Res. Report KR-89-113, 1989, pp. 179∼224.
326)이동영·김주용,<지질환경조사>(≪자연과 옛사람의 삶≫자연환경조사-고고학 발굴보고:일산새도시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1, 한국선사문화연구소·경기도, 1992), 41∼108쪽.
327)손보기·장호수·조태섭,<발굴조사진행경과와 연대측정>(≪자연과 옛사람의 삶≫자연환경조사-고고학 발굴보고:일산새도시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1, 한국선사문화연구소·경기도, 1992), 145∼154쪽.
328)황상일,<규조분석>(≪자연과 옛사람의 삶≫자연환경조사-고고학 발굴보고:일산새도시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1, 한국선사문화연구소·경기도, 1992), 145∼154쪽.
329)손보기,≪상노대도의 선사시대 살림≫(수서원, 1982).
330)鄭澄元·林孝澤·申敬澈,≪金海 水佳里貝塚≫1(釜山大 博物館, 1981).
331)윤선·이언재,<수가리패총의 연체동물화석군집과 해수면 변동>(≪한국고생물학회지≫1, 한국고생물학회, 1985), 141∼152쪽.

이년규·윤선,<김해 수가리패총의 연체동물화석군집에 관한 고찰>(≪대한지질학회지≫28-4, 대한지질학회, 1992), 335∼341쪽.
332)Shi Yafeng et al., Mid-Holocene Climates and Environment in China, Global and Planetary Change 7, Elsevier Science Publishers, Armsterdam, 1993, pp. 219∼133.
333)Wang Pinxian, 앞의 글.

前田保夫, 앞의 책.
334)安田喜憲·金遵敏, 앞의 글.
335)류정길,<포자-화분>(≪룡곡동굴유적≫, 김일성종합대학 인류진화발전사연구실, 1986), 139∼163쪽.
336)장호수,<상노대도 유적의 석기>(≪孫寶基博士停年紀念 考古人類學論叢≫, 지식산업사, 1988), 205∼226쪽.
337)박영철,<한국선사시대의 자연환경연구-선사유적지의 층위와 고생물과의 연관을 중심으로->(≪韓國史硏究≫14, 1976), 3∼29쪽.
338)도유호,≪궁산원시유적 발굴보고≫(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57).

김신규,<우리나라 원시시대의 메짐승에 대하여>(≪고고민속≫1966-2), 4∼7쪽.
339)Shi Yafeng et al., 앞의 글.
340)Wang Pinxian, 앞의 글.
341)Dimbleby, W. A., 앞의 글.
342)中井信之·洪思澳, 앞의 글.
343)손보기·장호수·조태섭, 앞의 글.
344)Smith, A. M., Holocene Paleoclimatic trends from Paleoflood Analysis, Paleogeography, Paleoclimatology, Paleoecology 97, Global and Planetary Change Section, Elsevier Science Publishers, Armsterdam, 1992, pp. 235∼240.
345)Yang Huaijen, 앞의 글.
346)中井信之·洪思澳, 앞의 글.
347)太田陽子 等,<日本における完新世相對的海面變化とそれに關する問題-1980∼1988における硏究の展望>(≪第四紀硏究≫29-1, 日本第四紀學會, 1990), 31∼48쪽.
348)최기룡, 앞의 글.

安田喜憲·金遵敏, 앞의 글.
349)Van Andel, T. H., Late Quaternary Sea-Level Changes and Archaeology Antiquity 63, London, 1989, pp. 733∼74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