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화기의 서사 장르
개화기의 시가 문학이 한시·가사·시조·창가·신체시 등 여러 형태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개화기의 서사 문학 또한 한문 소설, 역사·전기 소설, 토론체 소설, 신소설 등 여러 형태들로 이루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위의 형태들 이외에 ‘夢遊錄系 소설’ 형태까지 이 시기의 서사 문학의 한 갈래로 분류함으로써,409) 개화기 서사 문학을 더 많은 갈래들로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위에 제시한 개화기 서사 문학의 네 형태들 중 한문 소설은 개화기의 문체 변동의 와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표기체인 한문체를 선택한 경우이다. 이와는 달리 역사·전기 소설, 토론체 소설은 작품에 따라 국한문체 또는 국문체를 선택하였고, 신소설은 거의 예외없이 국문체를 선택하였다.
역사·전기 소설들과 토론체 소설들의 대다수 작품들은 반봉건주의의 입장에서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이 두 유형의 작품군들이 반봉건의 입장에 선 개화쪽보다 더 힘을 기울였던 것은 반제국주의의 입장에 선 자보사상쪽이었다. 이 두 유형의 작품군들은 제국주의적인 침략 의도를 드러내면서 한반도를 장악하려는 일제의 음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국난의 위기를 타개한 동서의 애국자들의 행적을 부각시키거나 현실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매도하는 방법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고취하였다.
신소설 유형에 속하는 다수 작품들 또한 自保사상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위태로운 시기에 자보사상의 강조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형의 작가들을 자보사상보다 더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것은 근대적인 제도, 문물, 풍속이었다. 신소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전’과 ‘지금’은 ‘옛’과 ‘오늘’을 양극화한 표현으로, ‘이전’은 곧 야만/완고, ‘지금’은 문명/개화의 모습으로 대비되어 나타났다.410) 신소설 유형의 작품들에 빈번하게 나타난 이러한 대비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신소설의 작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과거의 것들과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근대적인 것 또는 서구적인 것들의 외양이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던 바처럼 개화기의 시대적인 과제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지켜야 하겠다는 자보의 몸부림이 그 하나요, 봉건적인 낡은 제도, 문물, 풍속에서 벗어나 근대화를 성취하겠다는 자기 쇄신의 노력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반제국주의적인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라면, 후자는 반중세적인 개화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다. 개화기 서사문학의 중요한 갈래들인 역사·전기 소설, 토론체 소설과 신소설은 이와 같은 개화기의 시대적인 과제를 대하는데 관점을 달리 했을 뿐만 아니라, 문체·작품의 구조에 있어서도 서로 성격을 달리 했다. 다음에 개화기 서사문학 갈래들의 성격상의 차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