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의 지방 순시
1919년 3·1 운동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대신하여 신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한국인들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하여 한국인과의 접촉을 늘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지방 순시로, 1919~1927년 동안의 재임 기간 중 순시만 총 42회, 222일에 달할 정도였다. 총독의 순시는 한국인의 반일 경향을 가까이에서 감시하는 한편,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이토 총독의 지방 순시에는 정치적 선전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사들이 마련되었다. 가는 곳마다 관민들이 동원되어 총독을 맞이하였고, 총독은 그 지역의 지주, 유생, 촌로, 자본가, 외국인 선교사들을 만나 연회를 베풀었다. 또한 각급 학교, 공장 및 주요 산업 시설을 시찰하며 각계의 이야기를 들었고, 병원의 환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 총독은 지방 순시를 통하여 스스로를 권위의 상징이자 '자애로운' 통치자로 표상하면서, 한국인의 저항심을 누그러뜨려 식민 지배하에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자신이 부임해 오던 길에 강우규의 폭탄 세례를 받을 정도로 당시 한국인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따라서 사이토 총독이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은 친일 성향의 사람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전라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