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사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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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일본 시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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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조선 총독부가 한국인 일본 시찰단의 조직과 파견에 가장 열을 올린 시기였다. 총독부가 시찰단의 조직과 파견에 직접 관여하고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하면서, 1920~22년 사이에만 300개 이상의 단체가 파견되었고, 참여층도 교원과 유생, 중추원 참의, 군수, 면장, 의생, 청년 등으로 다양해졌다. 조선 총독부가 시찰단 파견에 힘을 쏟은 것은 일본의 발달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꺾고 이들을 식민 통치의 새로운 협력자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시찰 코스도 근대의 문물과 고대의 문화 유적을 두루 볼 수 있도록 안배하여, 일본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조선과 친밀하면서도 동등하거나 우수한 나라였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 총독부는 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일본 시찰의 경험을 일반인들도 공유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지방 사회에서 민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을 시찰 단원으로 선발하였고, 귀국 후에는 강연회나 간담회, 일본 시찰 활동 사진 전시 등을 개최하여 견문을 선전하게 하였다. 일본 시찰단이 주로 지방 단체에 의해 조직되었고 보조금이 지방 사회 사업비에서 지원된 것도, 1920년대 조선 총독부의 한국인 일본 시찰단 파견이 조선 민중에 대한 '교화', 즉 회유를 위한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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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훈도 학사 시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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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16일, 조선 총독부가 주도한 제1회 공립 보통 학교 조선인 여자 훈도 학사 시찰단이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일본으로 향했다. 조선 각도에서 선발된 14명의 교사들로 구성된 시찰 단원은 10월 6일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 장장 20일에 걸쳐 일본 전역을 돌아보았다. 일본 각지에서는 수양 잡지 <희망>의 애독자회와 수양단이 시찰 단원들을 환대하여 일본(인)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 시찰 경로는 오카야마(岡山)-고베(神戸)-오사카(大阪)-교토(京都)-모모야마(桃山)-나라(奈良)-야마다(山田)-나고야(名古屋)-시즈오카(静岡)-요코스카(横須賀)-가마쿠라(鎌倉)-에노시마(江ノ島)-도쿄(東京)-닛코(日光)-야와타(八幡) 순이었는데, 시찰단들의 일반적인 관람 코스에 학사 시찰의 목적에 맞게 모범적인 학교들을 추가한 것이었다. 시찰 단원들은 먼저 공장 도시인 고베와 오사카에서 가와사키(川崎) 조선소와 조폐국을 방문하여, 일본의 근대적 설비를 목격하였다. 이어 교토-모모야마-나라-야마다 지역에서는 일본의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기요미즈테라(淸水寺), 니조리큐(二條離宮), 혼간지(本願寺), 가스가(春日) 신사, 이세(伊勢) 신궁 등을 방문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이들 코스를 통하여 한국인 시찰 단원들에게 일본 전통 문화의 유구성과 우수성을 보여 주는 한편, 서구적 근대 문명 수용에도 일본이 앞서 있음을 보여 주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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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伊勢) 신궁(야마다)이세(伊勢) 신궁(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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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오후, 시찰단은 일본의 수도 도쿄의 관문 요코스카 항에 도착하였다. 가마쿠라-에노시마를 둘러보고, 25일 오전 도쿄에 도착한 시찰 단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일본 천황의 거처인 고쿄(皇居)였다. 조선 총독부는 단원들에게 황궁을 향하여 요배를 하게 했고, 조선 침략의 당사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国) 신사도 참배하도록 하는 한편, 11월에 창건을 앞둔 메이지(明治) 신궁에도 참배하게 했다. 침략자인 일본 천황과 일본인들에게 대한 제국 '병합'의 은혜에 감사하도록 강제하는 이들 코스 역시 조선 총독부가 조직한 시찰단에는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도쿄에서는 시찰단에 맞게 각종 여성을 위한 학교가 관람 코스에 포함되었다. 9월 27일에는 공립 여자 직업 학교와 음악 학교, 세이조(成女) 고등 여학교를 방문하였다. 특히 세이조 고등 여학교에서는, '같은 동아에서 태어나 피도 통하는, 서로는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백성'임을 강조하는 시를 지어 시찰 단원들을 맞이하였다. 28일에는 긴카(錦華) 소학교, 여자 고등 사범 학교, 일본 여자 대학을 참관하였고, 저녁에는 전 조선 총독부 학무 국장 세키야 데이사부로(關屋貞三郞)와 간담회를 가졌다. 학생들도 많고 설비도 잘 갖춰진 일본 학교는 조선인 교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조선 총독부는 이들의 환심을 삼으로써 학생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 요코스카 항요코스카 항
  • 도쿄 역 도착도쿄 역 도착
  • 황거 참배황거 참배
  • 황거 참배황거 참배
  • 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
  • 이 왕세자 저택이 왕세자 저택
  • 메이지(明治) 신궁메이지(明治) 신궁
  • 희망사 방문희망사 방문
  •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저택 만향려(晩香廬)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저택 만향려(晩香廬)
  • 공립 여자 직업 학교공립 여자 직업 학교
  • 우에노(上野) 공원우에노(上野) 공원
  • 음악 학교 참관음악 학교 참관
  • 세이조(成女) 고등 여학교 학예회세이조(成女) 고등 여학교 학예회
  • 닛코 도쇼구(東照宮)에서닛코 도쇼구(東照宮)에서
  • 도쿄 역 출발도쿄 역 출발
기타 시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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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조선 총독부가 조직한 시찰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교원 시찰단과 지방 행정 실무가인 군수나 면장들로 구성된 시찰단이었다. 조선 총독부는 1920년 가을에만 4차례의 교원 시찰단을 파견할 만큼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원들의 회유에 힘을 쏟았다. 또한 1920년 영친왕 이은(李垠)과 일본 황실의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 이방자)와의 혼인을 기념하여 조직된 이왕가 어경사 기념회(李王家御慶事記念會)에서도 1928년 11월 일본 쇼와(昭和) 천황의 즉위 대례를 기념하여 여자 교원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한편 지방 행정 실무가들의 시찰단 파견은 실무 교육의 성격도 있었다. 1919년 조선 총독부 관제 개혁 이후 이를 실제 운용할 담당자들에게 일본의 인정, 풍속, 산업, 교육, 토목 제도 및 여러 시설들을 보고 오게 할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조선 총독부는 기타 중추원 등의 관변 공직자, 유림, 금융 조합 임직원 등 다양한 집단을 시찰단으로 조직했고, 외국인 시찰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체로 총독부에 이미 협력하고 있거나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이었다.

  • 대례봉배 여자 교원 일본 시찰단(1928. 11. 24)대례봉배 여자 교원 일본 시찰단(1928. 11. 24)
  • 대례봉배 여자 교원 일본 시찰단(1928. 11. 22)대례봉배 여자 교원 일본 시찰단(1928. 11. 22)
  • 중추원 찬의ㆍ부찬의 일본 시찰단(사이토 총독의 도쿄 사저, 1920. 11)중추원 찬의ㆍ부찬의 일본 시찰단(사이토 총독의 도쿄 사저, 1920. 11)
  • 의생 일본 시찰단(부산 정거장, 1922. 3. 16)의생 일본 시찰단(부산 정거장, 1922. 3. 16)
  • 조선인 군수 일본 시찰단(1924)조선인 군수 일본 시찰단(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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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시찰 외인단 대표자 내방일본 시찰 외인단 대표자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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