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910년 나라를 잃자, 정부와 의회를 갖춘 민주 공화제를 만들자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논리가 1919년 3·1운동을 통해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그 여망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노령의 국민 의회,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서울의 한성 정부 등이다. 5월부터 통합을 논의하여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원칙하에 노령과 상해의 임시 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 3·1운동 당시의 모습(경성 미국영사관 앞)
- 3·1운동 당시의 모습(덕수궁 앞)
- 독립 선언서(1919. 3. 1)
- 하와이 대한인 국민회에서 발행한 대한 독립 선언서(1919. 3)
- 노령 국민 의회 선언서(1919. 3)
- 한성 정부 국민 대회 선포문(1919. 4)
-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사진엽서로 제작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첫 청사의 모습이다. 엽서에는 '상해 하비로 321호'라 적혀 있어 하비로 시절 청사 임을 알 수 있다.
- 국무 총리 이승만 임명장(1919. 4. 11)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당시 제정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 헌장(191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