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활동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지금의 국회인 임시 의정원에서 탄생하였다. 임시 정부는 수립과 함께 제헌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제정·공포했는데, 그 후 보다 효과적인 독립운동과 함께 주변 및 내부 조건 변화에 따른 대응 체제 마련을 위해 다섯 차례 개정하였다. 임시 정부는 그 법 정신에 의해 27년간 지속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서 사용하였던 태극기
- 1919년 6월 17일 설립한 임시 사료 편찬 위원회 위원들. 앞줄 왼쪽: ◯·우승규·이광수·김두봉·김병조/ 뒷줄 왼쪽: 이원익·장붕·◯·안창호·김여제·김홍서·박현환
- 《한일관계사료집》 표지. 임시 정부가 국제 연맹에 제출할 목적으로 편찬한 역사서이자 자료집이다.
- 《한일관계사료집》 서언
- 《한일관계사료집》 본문
- 임시 정부 기관지 《독립》 창간호. 우리 민족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 민심을 통일하며 여론을 환기할 목적으로 1919년 8월 21일, 상해에서 창간하였다. 1919년 10월 25일부터 제호를 《독립신문》으로 변경하였다.
- 미주 구미 위원부 발행 독립 공채. 구미 위원부는 1919년 9월 1일부터 공채를 발행하였다. 공채는 10, 25, 50, 100, 1천 달러 5종으로, 연리 6%에 미국이 한국 정부를 승인한 1년 뒤에 상환한다는 조건이었다.
- 미주 구미 위원부 발행 독립 공채 50$
- 미주 구미 위원부 발행 독립 공채 100$
- 미주 구미 위원부 발행 독립 공채 100$ 뒷면
-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6회 기념(1919. 9. 17)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원(1919. 10. 11). 앞줄 왼쪽: 신익희·안창호·현순/ 뒷줄 왼쪽: 김철·윤현진·최창식·이춘숙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직원 일동(1919. 10. 11)
-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발행한 독립 공채 100원짜리 견본
-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발행한 독립 공채 1000원짜리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신년 축하식을 마치고(1920. 1. 1)
- 3·1 독립운동 1주년 기념식(1920. 3. 1). 상해 정안사로 올림픽 극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기미 독립 선언문을 상해에 처음 들여온 현순이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발행한 김정극의 여행 증서(1920. 4. 22). 임시 정부 외무부 구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임시 정부에서 발행한 여권
- 여행 증서 뒷면은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로 기록하였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원 포고문 3호(1920. 12. 1). 간도 참변으로 변을 당한 간도 동포에게 보내는 임시 정부 국무원 포고문. 독립운동의 근본 방침은 오로지 혈전과 끝없는 투쟁뿐이었다.
- 상해 교민단 주최 이승만 대통령 상해 도착 환영회(1920. 12. 28). 왼쪽: 손정도·이동녕·이시영·이동휘·이승만·안창호·박은식·신규식·장붕
- 임시 정부와 임시 의정원 신년 축하식(1921. 1. 1)
- 3·1절 2주년 기념식(상해 정안사로 올림픽 극장, 1921. 3. 1). 이승만 대통령 이하 국무 위원들이 참석하였고, 김병조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있다. 왼쪽: 신규식·◯·박은식·◯·김병조·이승만·장붕·이동녕·안창호
- 3·1절 2주년 기념식 객석(상해 정안사로 올림픽 극장, 192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