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엄중함 속에서도 개인과 가족의 삶은 이어졌다. 남의 나라 땅이지만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였다. 속히 돌아갈 것만 같았던 고향을 그리며, 병들거나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으리라. 모두들 하루라도 빨리 나라를 되찾아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 안창호 생일 기념(1919. 11. 9)
- 김구·안창호·이탁
- 신채호·신석우·신규식
- 안태국 빈소. 안태국은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에서 활동하였다. 3·1 운동 후 상해로 와서 임시 정부에 참여했으나 1920년 4월 11일에 서거하였다. 빈소는 서강리 안창호의 숙소에 마련되었다.
- 안태국 장례 행렬(1920. 4. 14)
- 안태국의 장례식에 참석한 상해 교민들과 임시 정부 요인들(1920. 4. 14). 장지는 장병로 외국인 공동묘지였다.
- 김구 가족(1921). 김구 아내 최준례의 모습이 담긴 한 장뿐인 사진. 왼쪽: 김구·큰아들 인·아내 최준례
- 1922년 7월 8일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거행된 동농 김가진 장례식
- 김가진 장례 행렬(1922. 7. 8)
- 김가진 장례식(1922. 7. 8). 유해는 상해 서가회 만국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 신규식 묘비 앞에서(1923). 앞줄 왼쪽: 민필호와 아들 영수/ 뒷줄 왼쪽: 신명호(신규식 딸, 민필호 아내)·조정완(신규식 아내)·민필호 딸 영주
- 송종익 결혼식(1924. 1. 13)
- 김구 아내 최준례의 묘비를 세우고(1924). 왼쪽: 작은아들 신·김구·어머니 곽낙원·큰아들 인
- 엄항섭 결혼식(1927)
- 이탁 장례식(1889. 3. 18~1930. 5. 17)
- 이탁 묘소
- 임시 정부 요인 가족들(상해, 1931). 앞줄 왼쪽: ◯·연미당(엄항섭 부인)·정정화(김의한 부인)·신명호(민필호 아내)/ 2줄 왼쪽: 이헌경(민필호 어머니)·연미당 어머니·◯·◯
- 안창호 일기. 안창호가 임시 정부 노동국 총판으로 활동하던 시기 중, 1920. 1. 14~8. 20, 1921. 2. 3~3. 2의 8개월 분량이다.
- 침체된 독립운동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기로 한 김구가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로 쓴 《백범일지》 상권. 1928~1929년에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