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1931년 만주 사변을 시작으로 일제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자, 독립운동은 기나긴 싸움에 돌입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27년은 상해에서 13년, 중국 대륙을 이동하면서 8년, 중경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인내와 고난의 연속이었다. 모든 시절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동 시기가 가장 힘겨웠다. 상해나 중경에서와는 달리 잠시도 몸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늘 떠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윤봉길 의거 후 임시 정부 요인과 김구가 피신했던 가흥 수륜사창
- 민필호·신명호 부부(항주, 1932. 6)
- 임시 정부 요인과 김구의 피신을 도와 준 중국인들과(가흥 저봉장의 집, 1933). 어린이 왼쪽: 자동(김의한 아들)·기동(엄항섭 아들)·기선(엄항섭 딸) / 앞줄 왼쪽: 허수생(진동생 아내)·정정화(김의한 아내)·민영구 어머니·연미당(엄항섭 아내)·주가예(저봉장 아내)/ 뒷줄 왼쪽: 진동생·○·김의한·이동녕·박찬익·김구·엄항섭·저봉장
- 김구·진동생·이동녕·엄항섭(가흥, 1933)
- 김구·이동녕·엄항섭(가흥, 1933)
- 윤봉길 의거 후, 본국으로 돌아갔던 김구 가족이 9년 만에 재회하였다(남경, 1934). 왼쪽: 큰아들 인·어머니 곽낙원·김구·작은아들 신
- 김의한 가족(남경, 1934). 왼쪽: 김의한·아내 정정화·아들 자동
- 김의한 가족(강서성 무령현, 1936. 4. 21). 앞줄 왼쪽: ○·○·동생 영원·아내 정정화·김의한
- 한국 국민당 청년단에서 김구의 회갑을 기념하여 제작한 깃발(1936. 8. 29)
- 송병조 회갑 기념(진강, 1937). 앞줄 왼쪽: 차리석·이덕해(조성환 장인)·송병조·김구·이동녕/ 뒷줄 왼쪽: 엄도해·조성환·이숙진(조성환 아내)·조완구·엄항섭·진춘호
- 장사 마원령에서(1938. 3. 1). 앞줄 왼쪽: 김자동·엄기동·노태준/ 가운뎃줄 왼쪽: 안춘생·오희옥·민영애·민영의·김신·이지일 / 뒷줄 왼쪽: 김철
- 안창호 추모 예배(1938. 3. 20)
- 김구 어머니 곽낙원 장례식(중경 손가 화원, 1939. 4). 왼쪽: 김신·김인·김구
- 김구 어머니 곽낙원의 장례식(중경 토교 화상산 공동묘지, 1939. 4). 왼쪽: 김신·김인·김구·김홍서·김현구
- 어머니 묘비 앞에 선 김구(1939)
- 김구 어머니 곽낙원의 묘비 앞에서(1939). 앞줄 왼쪽: 윤기섭·김구·김홍서·유자명 / 뒷줄 왼쪽: 김신
- 임시 정부를 후원한 심영신 가족(1939. 6. 22). 심영신은 사진 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대한 부인 구제회 대표로 활동하였다. 왼쪽: 아들 요한·딸 선옥·남편 조문칠·심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