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특수훈련반(미 OSS)의 훈련을 마치고 공작임무를 수행하러 적 후방을 향하여 떠나던날 대장 이범석장군을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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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사회상 사진아카이브

1920년대 사회상 - 관공서와 신사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를 위한 기반 시설들을 신축하였다.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각종 관공서와 조선신궁으로 대표되는 각지의 신사가 그것이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 대한제국 강점 직후부터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설과 조선신궁 조영을 하나의 계획으로 검토해 추진하였다. 이는 그만큼 관공서와 신사가 행정과 종교의 측면에서 일제의 핵심적인 식민통치시설이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관공서와 신사의 신축으로 조선의 경관도 변하였다. 일제는 초기에는 대한제국기의 시설을 관공서 청사로 그대로 사용했는데, 1920~30년대에 이르러 대개 웅장한 서양식 건물로 신축하였다. 반면 신사는 식민지 조선에 일본색을 더했다. 그 결과 식민지 조선에는 고유한 한국식 건축에 서양식, 일본식 건축이 병존하였는데, 신사로 대표되는 일본식 건축은 해방 이후 대부분 배제되었다.

관공서

신사

신사

신사는 천황 또는 조상 숭배를 핵심으로 하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의 신전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천황을 태양신의 후손으로 신격화하고, 신도를 국가신도라는 이름으로 국가의례의 영역으로 포섭해 천황제를 뒷받침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가는 곳마다 신사를 세워, 대내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자국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타민족을 동화, 지배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식민지 조선에도 곳곳에 신사가 조영되었다.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1925)이 가장 대표적인 국가신도 계열의 신사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서 국가의례가 거행되었다. 그외 재조선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각지에 교파신도 계열의 크고 작은 신사들을 건립했는데, 1945년 당시 약 1,000개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신궁을 정점으로 한 신사들을 통해 황민화정책을 추진했지만, 한국인들에게 신도와 신사는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해방 이후 각지의 신사들은 대부분 바로 파괴되었다.

조선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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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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