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만경강 중·하류에 익옥 수리 조합이라는 몽리 면적 9,640정보, 조합원 2천여 명을 갖는 거대 수리 조합이 설립되었다. 이 수리 조합은 임익 남부 수리 조합과 임옥 수리 조합을 합병한 것이었는데, 둘 다 구역 내에 수원이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상류 지역이 개간되면서 유입되는 물이 해마다 감소했다. 이에 '조선의 수리왕'으로 불리던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의 구상에 따라 수리 조합을 합병하고, 고산천(高山川) 상류에 초대형 댐을 건설하여 수원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 최대의 공사’였던 대아 저수지의 댐 건설은 1920년 2월에 2년 예정으로 시작되었으나, 3년 4개월 뒤인 1923년 6월에야 준공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공사 비용도 당초에는 236만원으로 책정되었으나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390여 만 원으로 증액되었고, 용지 구입비도 50여 만 원이 추가되었다. 이 때문에 익옥 수리 조합은 총 440만 원의 채권을 발행하였고, 이는 조합원의 조합비 부담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