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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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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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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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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모 김기원 한정옥 스토리라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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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타악기의 역동적인 리듬과 쇄납, 나발이 만들어 내는 신명 나는 고음의 선율.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대열을 갖춰 행진하며 사물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각종 기예와 연희를 한 데 펼치는 종합예술, 농악!

농악의 역사

농악은 정월에 풍요를 기원하고, 마을 신을 위한 제사의 기능을 수행해 온 대표적인 민속예술인데요.

“농악은 우리 민족의 가장 전통적인 그리고 대단히 집단적인 문화 중에 하나이죠. 역사적으로도 참 오래된 문화이고요. 음악이면서도 또한 극이고, 무용이고, 놀이이고, 제의까지 두루두루 다 함께 포함하고 있는 우리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양진성 /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농악과 가장 가까운 모습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리 나발은 처음에 장하게 뿜어내고 행군하는 깃발은 장대하게 벌려 펄럭이네. 쌍징의 울림은 절도 있고 앙북의 소리는 깊이 울리네. 처음에는 느린 소리 지었다가 점점 번잡한 음으로 퍼져 나가네. 덩실 덩실 춤추려는 듯 빙빙 돌아 어지러이 서로 향하네” - 이정직, 『연석산방미정시고』, 〈농악〉

농악의 연행

농악은 특별한 예술가들만 참여하는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농악대의 구성원 대부분은 마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우며 연행을 전수받았습니다. 농악대는 기본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치배, 깃발을 든 기수, 그리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 잡색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주요 편성 악기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가 있으며 연행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쇄납, 나발 등의 악기를 추가로 편성합니다.

농악대의 지휘자이자 우두머리를 상쇠라고 합니다. 상쇠는 농악대 맨 앞에서 꽹과리를 연주하는데요, 가락을 바꾸거나 농악대의 대열을 바꿀 때도 상쇠의 신호에 따라 진행됩니다. 상쇠가 판의 흐름을 주도한다면 징은 가락의 박자를 잡아주고 전체 소리를 감싸주는 역할을 합니다. 장구는 보통 여러 명이 연주하는데 첫 번째 연주자를 설장구 또는 수장구라 부릅니다. 설장구놀이는 장구잽이의 기예를 보여주는 놀이입니다. 상쇠가 장구잽이를 이끌고 무대로 나오면 장구잽이가 멋진 춤사위를 더한 독주를 시작합니다. 북은 장구의 가죽 소리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장단의 강세를 강조 해주며 음악의 호흡과 흐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네 가지 악기 외에 필수적으로 편성되는 악기가 소고인데요, 소고잽이들은 악기 연주보다는 화려한 춤사위와 기예로 농악의 신명을 더하는 감초 역할을 수행합니다. 농악대의 앞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잡색입니다. 이들은 대포수와 조리중, 할미, 각시, 양반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농악에 재미를 더합니다.

농악의 이칭

농악은 연행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데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굿’ 또는 ‘굿 친다’입니다.

“원래 굿은 사회적 기능이 훨씬 강한 명칭이죠. 일을 할 때 하는 모습을 두레굿이라고 얘기를 하고,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 지을 때 치는 굿을 매굿이라고 하고, 한 해를 시작할 때 치는 굿을 마당밟이굿, 지신굿이라 하고, 또 탈을 쓰고 뭔가를 하면 탈굿이라고 이야기하고요. 악(樂,) 가(歌), 무(舞), 극(劇), 제의(祭)까지를 다 통틀어서 우리가 ‘굿’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양진성 /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

두레와 풍장은 들에서 일을 할 때 치는 농악을 말합니다.

“두레라는 것은 사실은 일하는 방식 또는 일하는 조직을 가리키던 용어인데 농악을 울리면서 두레패를 광장에 불러내고 함께 농악을 치면서 일터로 가고, 일을 하고 난 뒤에 다시 농악을 치면서 왔다는 거죠. 두레가 곧 함께 일하고 함께 농악치고 함께 농악으로 놀고 이런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 그것에서 조금 다른 이름이 바로 풍장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양옥경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보유자

농악의 분포

농악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현재 전승되는 농악은 크게 경기, 충청권의 웃다리농악, 강원권의 영동농악, 경상권의 영남농악, 그리고 호남좌도농악과 호남우도농악으로 문화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웃다리농악을 대표하는 평택농악 판굿은 두레농악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 걸립패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농악입니다. 리듬구조가 독특한 길군악칠채 가락과 무동들의 기예가 돋보입니다.

공동체의 삶을 반영한 영동 강릉농악의 판굿은 농사짓는 전체 과정을 모사하는 농사풀이가 주를 이룹니다. 호남 좌도 임실필봉농악의 판굿은 다양한 리듬형태의 가락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춤추며 놀 수 있도록 열려있는 것이 특징이며 단체놀이를 중시합니다.

호남 우도의 이리농악 판굿은 가락이 섬세하게 변주되어 있어 리듬이 다채로우며 설장구놀이가 발달하였고, 여러 가지 형태의 진을 짜며 노는 진풀이와 오채질굿 가락이 특징입니다. 북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영남의 진주 삼천포 농악 판굿은 상쇠의 신호에 따라 빠르고 힘찬 가락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진법놀음과, 상모를 돌리며 연주하는 채상모놀이가 역동성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농악의 갈래

농악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돼 있지 않고 시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상호작용하며 계속해서 변천돼왔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농악이 마을의 결집력을 높여주고 고된 노동에 위안을 주는 역할을 했다면 근대 이후에는 공연 예술로도 발전합니다. 포장을 치고 유랑하며 공연하는 포장걸립농악과 농악대를 여성만으로 구성한 여성농악도 이때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전국민속예술대회가 생긴 이후로는 농악의 공연예술적 성격이 한층 강화됩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농악을 무대용 예술에 맞게 구성한 사물놀이가 등장합니다. 꽹과리, 징, 장구, 북, 네 가지 악기로만 편성된 사물놀이는 농악의 가락을 연주곡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음악만으로도 예술적 충족이 가능한 무대 공연을 선보입니다. 사물놀이는 이 연주곡을 기본 바탕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과 협연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농악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풍물(농악)은 지켜보는 문화가 아니고. 내가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풍물(농악)은 내가 직접 함께 해야만 신명을 느끼는 문화예요.” 양진성 /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

“농악이라는 것은 ‘우리의 그런 친밀성을 생산해 주는 중요한 기능들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이 사회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저는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양옥경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오랜 시간 동안 시대와 상호작용하며 우리 역사와 공동체 그 너머에까지 한결같으면서도 새롭게 자기 역할을 찾아 자리매김해 온 농악, 바로 이 점이 지금, 여기, 우리가 농악을 살아있는 전통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이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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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국사편찬위원회
제작 : 스튜디오 바카
자문 : 양옥경
검수 : 김혜정, 명재림, 서명원
수어통역 : 최황순
촬영·자료 협조: 국립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민속박물관, 논산전통두레풍장보존회, 문화유산채널, 원광디지털대학교, 임실필봉농악보존회, KBS바다, KTV 국민방송, 강릉농악보존회

해설

농악의 정의

농악은 전통사회로부터 현대사회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예술적 심상이자 표상이며, 상징적인 문화 전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농악을 규정하는 개념의 층위는 문화로서의 농악과 예술로서의 농악, 두 층위가 존재한다.

문화로서의 농악은 농경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형성된 공동 생활문화 양식의 일부이며, 농경사회의 세시 및 생활 주기와 같은 궤도에서 공연 주기를 형성하며 사람들의 관념 속에 공동체문화의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따라서 문화로서의 농악은 공동체의 공동문화이자 생활문화, 공동 인식과 관습, 질서 등의 사회적 규범을 집약하고 있는 집단 역사이자 집단의식의 상징체/기호이다. 즉, 이 개념의 농악은 집단 구성원 개개인에게는 특별한 사건(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인생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해당 집단-사회의 정체성, 공동성, 결집성, 집단의식 등을 읽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농악 관련 용어 중에 마을농악, 두레농악/두레풍장, 기세배와 합굿, 지신밟이/마당밟이, 정월대보름굿, 호미씻이, 백중놀이, 매굿 등이 바로 이 문화 층위에서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 대상이다. 예술로서의 농악은 사물(四物)이라고 통칭하는 꽹과리·징·북·장구, 이상의 타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바탕으로 춤·노래·놀이·연극 등의 다양한 예술적 행위 요소를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공연양식이다. 예술로서의 농악 양식은 형식과 내용, 공연 장소, 공연 문법, 예능 수준 등이 핵심 기준이 되어 가늠하게 된다. 걸립/걸궁, 고사굿, 판굿, 문굿, 장굿, 포장굿, 난장굿, 농사풀이 등의 농악 관련 용어들은 예술로서의 농악 층위에 드는 하위 유형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이다.

농악의 역사

농악의 역사적 연원에 대해 그 시원을 찾는 질문이 시작된 이래, 고대사회의 제천의식과 연결하는 추론이 형성되어 농악의 역사적 계보 이론으로 활용해 온 지식 흐름이 있다. 이 이론은 사실적, 정황적 근거가 다분히 부족하지만, 농악이 벼농사를 짓는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고, 풍농을 기원하는 공동 축원 제의로서의 상징성을 띠는 점에서 고대로까지 시간을 소급하는 추론도 전혀 개연성이 없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고려시대의 경우는 민가와 궁중에서 벽사(闢邪)의 의미로 행하던 나례(儺禮)[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라고도 함] 의식 속에서 농악 연행 문화와의 친연성을 발견할 수 있고, 기록과 구전 및 경험을 통한 공동 기억을 통해 실체 확인이 가능한 조선시대는 당연히 현전하는 농악과 연결하여 연대기를 구성할 수 있으므로, 현재부터 고려시대까지로 소급하여 농악의 변천 맥락을 구성하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지만 좀 더 엄밀한 역사학문의 입장에 선다면, 조선 시대 이전을 언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농악의 문화적, 예술적 실체와 가장 가까운 양태는 지난 역사시대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농악 관련 기록 속 모습부터 현행 공연양식과 친밀성·유사성을 찾을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농악의 갈래

농악이 오직 한 갈래로만 전개되어 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현재에도 연행되고 있는농악 공연 양식 중에는 축원 제의의 목적과 의식성이 강한 당산굿, 샘굿, 노디고사굿/다리고사굿, 마당밟이/지신밟기, 매구/매굿이 있고, 농사일에 수반되는 두레굿, 연예·오락적 목적이 강하고 예술성이 집약되어 있는 판굿,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찾아가 공연하는 걸립굿/걸궁굿 등 기능과 성격 면에서 상호 대비점이 뚜렷한 다양한 양식이 있다. 또, 공연 집단의 계통에 따라서 유형 면에서 같은 판굿에 속한다고 하여도 마을굿패가 연행하는 판굿과 직업적인 걸립패가 치는 판굿은 동일한 성격으로 볼 수 없는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걸립굿/걸궁굿 역시 마을굿패가 농악을 연행하는 공연의 목적과 전문 걸립패의 목적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농악의 갈래는 공연 목적과 의미를 기준으로 볼 때 벽사(闢邪)와 진경(進慶)을 담는 축원의식 농악, 농사일에 수반하여 일의 효능과 협력을 촉진하는 기능의 노작농악/두레농악, 연예(演藝)와 오락(娛樂)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연행하는 연예농악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대로, 각 농악은 그 아래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양식화되어 있는 하위 갈래를 포괄하고 있다.

농악의 분포

농악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공연양식 면에서도 보편성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었던 배경적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문화 전통의 성립이고, 둘째는 사회적 변동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그 실체를 만나고 느끼는 농악은 시대/시간, 장소, 사람, 상황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지속적으로 변천해 왔고, 그 결과 농악의 다양성은 시간의 축적과 비례해서 확대되어 온 경향을 띤다. 따라서 우리는 농악을 볼 때 다양한 기준에 초점을 맞추어 관찰할 수 있고, 다양한 관점과 입장에서 해석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농악을 보는 지식 틀 혹은 시각에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이론 중 하나는 농악의 역사적, 공연 양식적 복합체를 지리적으로 구분하여 이른바 경기·충청 웃다리농악, 호남 우도농악, 호남 좌도농악, 영남농악, 영서농악 등의 문화권(文化圈)으로 분류하는 농악문화권 이론이다. 하지만 애초(형성기)부터 농악문화와 예술 특성을 종합한 절대적인 문화 구획이 행정지리적 단위로 존재했고, 변화없이 지속되어 왔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론적 해석이다. 현전 농악이 지역 간 문화 상대성을 띠며 전승·전파되어 온 것은 일면 사실이지만, 예술요소적 측면에서 본다면 변별성보다는 보편성이 더 큰 편이다.

농악의 시대적 변천 양상 및 유형

현재 연행되고 있는 농악의 유형 역시 두 층위에서 조명할 때 농악의 본바탕[원형]과 변천상[전형]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전통사회에서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는 동안 그 변천의 과정과 맥락을 일관되게 연결할 수 있는 농악이고, 다른 하나는 근현대 시공간 속에서 출현한 농악으로 예술적 개념에서는 전통 농악과 큰 차이가 없으나 문화적 측면에서의 존재 양상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지는 농악이 있다. 이 둘 사이는 완전히 다른 시대적 상황이 있고, 그 상황 변화가 농악의 변천에도 깊숙한 양 갈래의 길을 내었다.

전자는 주로 일과 생활이 동일시 되어 있는 사회에서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연행되었다는 점과 농사와 관련된 노동 현장에서 노동 주체에 의해 연행되고, 그들이 일군 사회의 생활 속에서 다목적 기능을 수행해 온 점이 특질이다. 또한 공동체에 의한 공동문화로서의 전통을 확립하고 있고 공연양식도 제의성(기원 심성)과 공동성을 기저에 두고서 관습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후자와 대비된다. 마을농악·두레농악(마당밟이=지신밟기, 매구/매굿, 당산굿, 샘굿, 대보름굿, 단오굿, 호미씻이굿, 장원례, 백중굿), 기세배와 합굿 등의 용어로 지칭되는 농악 유형들이 이 전자의 범위에 드는 다양한 실체이다.

후자, 즉 근현대 시공간 속에서 출현한 농악은 형태 면에서는 전자와 예술 바탕 면에서는 상호 공통점이 크다. 하지만, 공연 목적과 성격 등 문화적 관습이 전자와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다. 이에 해당하는 농악의 특질은 공연자 개인의 자율성, 예술 작품성, 상업적 전문성, 공연의 정형성 등이 전자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성향이다. 걸립농악(절걸립·포장걸립·소방걸립 등), 대회농악/대회굿, 여성농악, 문화재농악, 학생농악, 동아리농악 등으로 지칭하는 농악 유형들이 모두 후자의 범위에 드는 실체이다.

농악의 현황

이처럼 농악은 민간 생활 문화양식의 하나로 기능하면서 민속으로 존재해 온 시대로부터, 점차 현대사회로 진입해 오는 과정에서 사회 체계 및 문화변동의 흐름과 상호작용하며 전통사회와는 사뭇 다른 존재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농악은 무형의 유산으로서 한국 문화의 상징성을 띠는 전통문화의 하나이자, 공연예술의 이중적 차원에 중첩돼있는 존재로서, 무형문화재 제도와 각종 문화정책의 대상이 되어 제도적으로 관리되는 한편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거래되는 예술작품으로도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면서 새로운 관념과 인식의 대상이 보태진 상황이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단행본

  • 국립민속박물관 편, 2016, 『한국민속예술사전』, 국립민속박물관
  • 김혜정, 2022, 『전남의 농악, 다양성과 창의성을 품다』, 호남학진흥원

논문

  • 김혜정, 2014, 「농악의 지역별 음악적 특성」, 『농악』, 문화재연구소
  • 양옥경, 2013,「풍물굿 음악 용어 연구-기초 음악용어 정의 편-」, 『풍물굿 연구』 2집, 한국풍물굿학회
  • 양옥경, 2014, 「호남 우도농악 판굿의 시대적 변이에 관한 연구: 호남 우도농악 판굿 공연 자료를 중심으로」, 『무용역사기록학』34권, 무용역사기록학회
  • 양옥경, 2018,「근현대 시기 호남 우도지역 연예농악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그 역사적 의미」, 『한국음악사학보』 61집, 한국음악사학회
  • 양옥경, 2020,「1950년대 중반 이후 농림/농업고등학교에서의 농악(農樂) 교육이 한국농악 현대사에 끼친 영향과 의의」, 『공연문화연구』40, 한국공연문화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