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반월형석도
半月形石刀는 형태상 반월형을 이루는 석도라는 의미이나 보다 넓은 의미로 반월형이 아닌 석도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월형석도는 농경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석기로 인식되고 있어 농경과 농경에서 비롯되는 문화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런 점에서 석도에 대하여 기존의 형식분류와 편년이 아니라 농경과 관련지어 석도의 발생과 변천을 중심으로 고찰한 성과가 제시되었다.0274)
반월형석도의 형식에 대해서는 날부분과 등부분의 형태에 의하여 長方形·櫛形·魚形·短舟形·長舟形·三角形 石刀로 구분되며 이 외에 날이 세워진 부분의 형태에 의하여 交刃石刀가 구분되고 있다.0275) 이같은 세분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한편으로 크게 석도를 둥근 날이 단인을 이루며 도신에는 2개의 구멍이 있는 형태와 직선을 이루는 날이 양인이며 도신에 하나의 구멍이 있는 형태로 다시 나누기도 한다.0276) 이같이 석도를 크게 2분하는 경우도 반월형석도를 세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석도의 형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석도의 형태를 크게 2분하는 경우든지 아니든지 간에 한반도의 석도는 크게 장방형, 즉 직선을 이루는 날을 가진 양인의 석도와 그렇지 않은 석도로 나눌 수 있다.
장방형석도는 두만강유역의 동북지방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丁字形돌괭이와 함께 출토되고 있다. 이 장방형석도는 중국 仰韶文化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漁形石刀를 기본으로 하는 龍山文化와는 계통이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용산문화계의 석도로 인식되는 석도는 扁平單刃石斧·單刃柱狀石斧·石鑿 등의 목공구를 공반하고 있으며 경작을 위한 도구는 거의 반출되지 않는다. 이같은 차이는 두 석도가 비록 한반도에서 지역적으로 배타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장방형이 요서지방의 하가점문화와 관련되며, 어형이 요동지방의 문화와 관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한반도에는 요동지방과 요서지방의 석도문화가 유입된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형에서 파생되는 형식인 즐형·장주형·단주형 석도는 요동반도에서도 출현하고 있으나 한반도에서는 지역적인 특성을 보이며 지역적으로 분화되어 완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각형토기가 집중적인 서북지방에서는 장주형석도가, 중부지방에서는 단주형이 완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 삼각형석도는 서남지방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송국리유적에서는 단주형·단주교인·직호교인·삼각교인 석도가 반출되었다. 따라서 삼각형석도의 완성이 송국리유적에서 이루어졌으며 발생 과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송국리유적에서 발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삼각형석도는 이후 송국리유형의 문화가 파급되는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월형석도의 편년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두 갈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즉 동북지방에서는 장방형석도와 어형석도, 즐형석도가 사용되었으며 후기에는 西團山文化의 장주형석도도 등장하였다. 이와 달리 어형석도는 장주형·단주형·삼각형 석도로 변화되었으며 이같은 변화과정과 달리 즐형석도가 파생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형석도에서 파생되는 석도의 형식은 지역적으로 각기 대동강유역, 중부지방, 남부지방에서 성행하고 있어 형식의 변화와 더불어 시간적 흐름,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석도의 편년에서 가장 늦은 단계에 발생된 것은 삼각형석도이며 삼각형석도 중에는 原三國土器와 공반하는 것도 있어 하한을 철기의 사용시기까지로 판단할 수 있다. 또 실제로 渭原遺蹟에서는 철제 반월도가 출토되어 석도가 철도로 대체되었음을 명확히 말해준다. 석도의 상한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의 석도가 요동 및 요서지방의 석도문화와 관련되며 이들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후기에 석도가 등장하고 있어 한반도의 경우도 신석기 후기에 석도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장방형석도를 기본으로 하는 동북지방의 경우 신석기 말기 단계인 서포항유적에서는 석도가 아니기는 하지만 어형의 패도가 출토되었고 그 뒤를 이은 청동기 초기에 장방형석도가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개시와 더불어 한반도에 석도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반월형석도의 기능이 곡식의 수확을 위한 것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러나 석도가 수확도구로서만 사용되지 않고 다른 용도, 즉 실생활에서의 칼과 같은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을 제시한 견해도 있다.0277) 이 견해에서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베거나 자르는 기능을 가진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데 실생활에서는 그같은 기능을 가진 석기가 필요하다는 점에 근거하여 석도의 기능 확대를 상정하였다. 또 석도가 만주지역에서는 잡곡농사에 주로 사용되다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벼농사에 이용되었고 석도의 형식에 따라 농경대상이 다를 것으로 상정하기도 한다. 이 추론에서는 장방형·어형·즐형 석도는 잡곡 농사에, 단주형과 삼각형은 벼농사에 이용되었으며 장주형은 처음에는 잡곡농사에 사용되다가 차츰 벼농사에 이용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석도의 형식에 따라 농경의 종류를 파악하려는 연구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고 지역적인 특성을 보이는 석도의 형식과 각 지역군 내에서 확인된 곡물의 종류와 관련하여 파악할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형식의 석도가 기능적으로 어떻게 대상이 되는 곡물의 종류와 결합되는 것인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0274) | 石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安志敏,<中國古代的石刀>(≪考古學報≫10, 1955). 崔淑卿,<韓國 摘穗石刀의 硏究>(≪歷史學報≫13, 1960). 石毛直道,<日本稻作の系譜(1), (2)>(≪史林≫51-5 및 51-6, 1968). 金元龍,<韓國 半月形石刀의 發生과 展開>(≪史學志≫6, 단국대, 1972). 西谷正,<三角形石包丁について>(≪考古學論叢≫1, 1973). 安承模,<韓國 半月形石刀의 硏究>(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85). 金相冕,<三角形 石刀의 一硏究>(영남대 석사학위논문, 1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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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5) | 交刃石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全榮來,<任實 靑雄面出土 半月形石刀의 新例>(≪全北遺蹟調査報告≫6, 1976). 崔仁善,<韓國 交刃石刀에 對한 考察>(≪全南文化≫3, 全南大, 1985). |
0276) | 석도를 크게 2분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장방형석도를 다른 형태의 석도와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와 다른 기준에 의하여 구분하는 경우도 대체로 장방형석도 분포지역의 석도를 다른 지역의 것과 구분하고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安承模, 앞의 글 참조. |
0277) | 安承模, 위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