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아악기의 등장
예종 9년 고려사신 안직숭이 송을 방문했을 때, 휘종이 준 공후·박판·방향·비파·장고·쟁·적·피리 등의 신악기와 악보 및 指決圖를 가지고 귀국하였다.0806) 고려는 송의 신악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賀禮使 王字之와 文公美를 송나라에 파견했을 때, 휘종은 답례로 대성부에서 새로 만든 아악기를 하례사에게 가지고 귀국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때가 예종 11년 6월이었으므로,0807) 대성아악의 수입연대는 예종 11년이었다.
대성아악을 위한 아악기는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댓돌 위에 펼쳐 놓고서 연주하는 登歌악기였고, 다른 하나는 댓돌 아래의 뜰에 나열해서 연주하는 軒架악기였다. 등가악기는 편종·편경·일현금·삼현금·오현금·칠현금·구현금·슬·지·적·소·巢笙·和笙·훈·博拊·柷·敔 등 17종이었고, 헌가악기는 편종·편경·일현금·삼현금·오현금·칠현금·구현금·슬·지·적·소·소생·화생·우생·훈·박부·晋鼓·立鼓·축·어 등 20종이었다.0808)
대성아악의 등가악기와 헌가악기를≪악학궤범≫의 아악기와 비교하면, 특종·특경·관·절고가 대성아악기에는 없다. 그러나 여덟 가지의 악기재료로 만든 八音이 등가악기와 헌가악기에 구비되었기 때문에, 대성아악은 완전한 아악의 편제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아악의 공연에는 아악기의 구비 이외에 佾舞에 사용되는 籥과 翟, 干과 戈 등의 舞具, 또 舞衣와 樂服 같은 의관, 그리고 麾幡 같은 의물의 구비도 필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