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숭불환경과 차·채소음식·조면의 발달
가. 차의 성행과 진다례·다정
차는 신라의 선덕왕대부터 있었으나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흥덕왕 3년(828)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大廉이 돌아오면서 차의 씨앗을 가지고 온 것을 왕이 지리산에 심도록 한 것이 시초이다.1182) 이후로 차를 달여 불전에 공양하고, 왕궁·사원에서 귀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고려에서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더욱 성행하였다. 고려에서는 궁안에 茶房을 두어 다과의 일을 맡아 보게 하고, 茶村을 두어 차를 재배하여 繻茶·腦原茶를 만들었으나, 그 맛이 좋지 않아 중국으로부터 蠟茶와 龍鳳賜團을 수입해 썼다. 납차와 용봉사단은 송대에 만들어진 團餠型 고급차이다.
≪고려사≫ 권 69 禮志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팔관회, 연등회, 왕자와 왕녀의 책봉의, 공주의 혼례 등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進茶禮를 거행하였다. 또 충선왕 즉위 직후에는 백관들이 왕의 탄일을 축하하여 제각기 다과를 바쳤다.1183) 왕은 근신과 노신에게 차를 하사품으로 나눠주었다.1184) 의종대에는 왕이 상원일·연등일에 봉은사에 행차할 때 도중에 차를 달여 대접하기 위한 行爐·茶擔 군사를 4인으로 정한 바 있다.1185) 의종 13년(1159) 왕이 玄化寺에 행차하였을 때 동·서양원의 승려들이 각각 茶亭을 차려 놓고 왕의 행차를 영접하였는데, 호사를 다투었다.1186)≪고려도경≫에서는 차를 다루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무릇 연회 때면 궁중 뜰안에서 차를 끓여 가지고 은제 연꽃 모양의 작은 쟁반으로 덮어 천천히 걸어와 바친다. … 건물 안에서는 한복판에다 紅俎를 펴두어 그 가운데 茶具를 늘어 놓고 붉은 비단보자기로 다구를 덮는다(徐兢,≪高麗圖經≫ 권 32, 器皿 3, 茶俎).





